중국과 타이완은 상대방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공식적인 대화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규모의 무역 거래, 투자, 통신, 인적 교류가 일어나고 있다. 반면에 남북한은 상대적으로 많은 공식적 대화, 협정, 공동선언, 정상회담이 있었고, 1991년에 UN에 동시 가입하면서 사실상 상대방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 인적 교류, 방문, 교환은 급속히 늘어나지 않았고, 남북한 간의 대화와 교류가 기능주의적 ‘파급효과’를 일으켜 경제적 교환이 정치적 협력과 화해로 확산되기보다는, 오히려 ‘역류 효과’를 초래해 남북한 간에 불신, 증오, 적대가 심화되고, 심지어는 군사적 대결까지 치닫고 있다. _54쪽
한국에 대한 미국의 헤게모니는 더 이상 자비롭지 않게 되었다. 탈냉전 이후 미국은 한국에 특별한 대우를 제공하지 않았다.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한 재정 위기가 한국에 상륙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은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별 지원과 처리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클린턴은 한국에 특별 원조를 제공하는 것을 거부하고 대신 김영삼으로 하여금 구제금융을 위한 국제통화기금IMF의 융자 조건을 수용할 것을 권고했다. 국가 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김영삼 정부는 위기 탈출을 위해 IMF에 대규모 긴급 구제 기금을 요청했다. 1997년 12월 3일, 김영삼 대통령은 IMF로부터 550억 달러의 막대한 긴급 자금을 받는 대가로 가혹한 조건을 수용해야만 했다. _109쪽
일본과 중국 간의 역사적 적대와 경쟁을 고려하면 미일 동맹 대 중국 구조가 가까운 미래에 출현할 것이며, 한국은 미일 동맹이나 중국 중 한쪽 편에 설 것을 강요받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에 가장 바람직한 전략은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다. 강화된 한미 동맹은 지역 헤게모니로서 중국의 위협을 억제하고 동시에 일본의 재무장을 억제하는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의 강력한 국방력은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미국의 안보 우산에 편승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한미 동맹 강화를 통한 자기방어는 한국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_126쪽
남북의 절대적 다수의 사람들이 통일이 현재 상태보다 더 나은 물질적 이익을 실현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더라도, 통일 과정에서 나타나는 전환 비용을 인지하게 되면 다수의 사람들은 통일을 선택하기보다는 현상 유지를 택할 것이다. 또한 개인들은 통일로 실현될 장기적인 미래 이익을 믿고 있다 하더라도 통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단기적 손실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통일의 공공재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통일 과정에 참여하는 합리적 행위자(개인)들은 무임승차자의 길을 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_200쪽
남남 갈등이 심화된 데는 김대중 정부도 한몫을 했다. 역대 정권에서 말의 성찬으로 끝났던 남북 화해와 협력을 행동으로 실천한 것은 김대중 정부의 최대 업적이다. 이 업적 덕분에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도 수상하게 되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 ‘영광의 공유’에 소홀했다. 남북 화해와 평화 달성은 한민족이 공유해야 할 공공재이다. 김대중 정부가 남북 화해와 협력을 연 업적의 영광을 국민들뿐만 아니라 반대 세력과도 공유하려 했다면 야당과 그를 반대해온 보수적인 국민들로부터 지지와 협력을 얻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_222~223쪽
마하티르와 같은 지도자는 오직 지리적으로 동아시아의 경계 안에 있는 나라들만이 동아시아 지역 기구의 회원국이 될 자격이 있고 따라서 미국, 캐나다, 러시아는 동아시아 지역주의로부터 배제해야 한다는 ‘동아시아인들의 동아시아’, ‘아시아 가치’를 내걸고 지리적 개념으로서의 동아시아인 소동아시아론을 주장하면서 미국을 동아시아 공동체, 지역 기구에서 배제하려 해왔다. 반면 미국, 특히 빌 클린턴 행정부는 동아시아를 지리적 차원에서 배타적으로 개념화해서는 안 되며, 좀 더 포괄적 방식으로, 즉 정치적ㆍ경제적ㆍ문화적 차원에서 동아시아를 정의함으로써 호주, 뉴질랜드, 미국, 캐나다, 멕시코, 칠레, 페루, 러시아의 극동 지방까지 동아시아의 경계에 포함하는, ‘대동아시아’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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