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울적한 저녁, 다시 기운을 차려야겠다는 반사적인 생각으로 내 주변에 널려 있던 상뻬의 모든 책들을 찾아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그리고 그 책들을 마치 단 한 권의 책처럼 모두 읽었다. 페이지만 넘기거나 대충 읽거나 건성으로 본 게 아니라, 글이 있건 없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말 그대로 꼼꼼히 읽었다. 그건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구원해 준 유익한 훈련이었다. 고마워요, 상뻬 씨! 그리고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이런 느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우선 그것은 상뻬의 펜은, 손가락으로 콕 찔러 보여 주지 않으면서도 우리를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되돌아가게 한다는 데서 기인한다. 모든 사람의 모습인 자신의 모습에 웃게 되며 그것이 그다지 대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감동적이 된다. 우리의 절망, 분노, 흥분, 두려움, 황홀, 결점, 식욕, 경탄, 반항, 단호함, 포기, 유희, 작은 기쁨과 커다란 슬픔, 우리라는 떼거지와 우리의 고독, 우리의 토론이나 침묵, 우리의 나이와 성별, 상뻬의 그림은 이 모든 걸 하나의 관점 안에 들어앉히고 그에 대한 정확한 크기를 판단해 낸다. 지극히 미세한 것이라는. 우리들 각자 속에는 랑베르 같은 구석이 있고, 랑베르 주변에서는 모든 게 거창하다. 그것이 우리에게 랑베르를 귀하게 만드는 점이다. 비록 그가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인 양 착각하고 과대망상에 빠져 버릴지라도 말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상뻬의 책을 시작하는 것은 두 개의 그림이다. 우선 대번에 제목에서 드러나는 코믹한 불균형이 눈에 띈다. 라니! 어마어마한 것 속에 감싸인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책을 펼치자마자 우리는 즐기게 된다. 아이들처럼 바로 그 하찮은 것들을 찾아나가는 거다. 잎사귀 무성한 나무 사이에서 여우 한 마리를 찾아내는 놀이처럼 말이다. 그런데 상뻬의 책에서 찾아야 하는 여우는 곳곳에 있다. 그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것들이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무 잎사귀들은 하나하나 세심하게 그려져 있다. 언제나 좀 더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결코 찾아내지 못할 것들로 가득한 그림들이다. 예컨대 103명의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있는 식당의 장면이 그렇다. 하지만 사실 그건 식당이 아니라 24×33센티미터 크기의 종이다! 103명의 사람들(안쪽 창을 통해 보이는 바깥의 35명은 제외하고)이 먹고 마시고 떠들고 책을 읽고 일을 하고 서로 불러 대고 있다. 그리고 그들 모두의 얼굴 표정이 하나하나 읽혀진다. 이들 중에 포도주에서 코르크 마개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는 남자가 하나 있는데, 한번 찾아보시라! 이 그림책은 파리의 낮과 밤을, 비 오는 날과 햇살 가득한 날을, 해 뜰 때부터 해 질 녘까지를, 새벽의 첫 청소부와 한밤중의 마지막 청소부를 그려 내고 있다. 물자 수송 차량들이 지나가는 시간, 아페리티프를 마시는 시간, 러시아워가 그려지고 있다. 시위대의 물결, 빨간 불이 채 꺼지지 않았는데도 건널목으로 돌진하는 한 무리의 통행자들, 광장에서 조그만 기쁨을 누리는 어느 아주머니, 장엄한 일몰에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어느 노신사……. 아마 여러분도 이들 중에 섞여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물밀듯 몰려드는 인라이너스케이터들의 행렬 속에, 혹은 잔돈을 거슬러 주느라 꾸물대는 운전사 때문에 빚어진 정체 현상으로 어느 구닥다리 택시 뒤에 늘어서 있던 차들 안에 말이다.
가장 좋아하는 그림을 꼽으라면, 나는 발코니 난간 위에서 목숨을 내걸고 무심하게 놀고 있는 고양이를 선택할 것이다. 모든 고양이들이 그런 식으로 어슬렁대다 결국에는 떨어져 죽었다는 걸 모른 채 말이다. 인간들 역시도……. 그리고 아마도 상뻬의 작품에서는 바로 이 확신이 그 선을 그토록 가볍게 표현하고 있는 것일 거다. 매 페이지마다 상뻬가 우리에게 소곤거린다. 거기다 뭘 덧붙이지 말라고, 마지막은 피할 수 없는 거라고 하지만 그 순간은 아름답다고 말이다.
유머, 시, 흘겨보는 시선……. 상뻬의 정겹고 정확하고 재미있는 스케치로 그려진 파리. 말은 한마디도 없지만 모든 이야기가 다 있다. 이 책은 일상적인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지루해하지 않으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여기에서 파리 사람들의 고독은 작은 터치로 걸러져 나온다. 또한 자동차가 지배하는 규율과 도시 생활의 무게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읽고 또 읽어도 좋은 책이다.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우리의 시각, 우리의 한계, 온화한 비판의 관점 아래 드러난 우리의 나쁜 습관에 대해 알려 주는 대형 안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