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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의 정님이

김용택의 정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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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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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4년 06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146쪽 | 330g | 151*210*20mm
ISBN13 9788970634180
ISBN10 897063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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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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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우승우
계명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여러 차례의 개인전,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 화랑미술제 등을 통해 120여 회 출품한 바 있는 내실 있는 동양화가로, 깊은 서정의 미와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세계를 펼치고 있다. 박완서의 『옛날의 사금파리』, 한강의 『붉은 꽃 이야기』, 김용택의 『섬진강 아이들』, 이청준의 『숭어도둑』, 이진우의 『저구마을 아침편지』에 그림을 그렸다. 현재 광릉수목원이 있는 작은 마을에서 작업에만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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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막고 눈을 맞으며 정님이에게 다가갔다. 그러면 정님이는 다시 돌아서서 도망갔다. 우리들은 학교 밖으로까지 쫓고 쫓겼다. 우리들처럼 다른 아이들도 학교를 벗어나 논밭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눈은 온 세상 가득 하얗게 내리고 있었다. 몇 발자국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고 있었다. 정님이는 자꾸 앞으로 뛰어갔다. 나도 정신없이 쫓아갔다. 그러다 보니 너무 먼 데까지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정님이라 달리던 걸음을 뚝 멈추고는 휙 돌아서서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pp. 86-88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찬샘 아래 작은 무덤이 하나 있다. 유일하게 자갈밭 응달에 있는 무덤이다. 이 이야기는 그 무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진메 마을에 봄이 왔다. 진달래가 붉게 피어나고 소쩍새가 우는 봄날 밤, 정님이란 여자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단출한 모습으로 우리 동네에 이사를 왔다. 우리는, 전쟁 후 폐허가 된 자리에 군인들이 다시 지은 학교를 먼 길을 걸어서 다녔다. 정님이는 우리보다 나이도 많고 키도 크고 공부도 아주 잘하는, 얌전한 여자아이였다. 학교 운동장에 벚꽃 잎이 눈처럼 하얗게 날리고 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다닐 때면 정님이는 혼자서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곤 했다. 나는 정님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정님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것은 우리의 첫 눈맞춤이었다…….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오후 나는 정님이와 한 우산을 쓰고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우산 속의 빗방울 소리, 부딪칠 때마다 따뜻하게 느껴지던 정님이의 어깨는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여름, 학교 가는 강변길에 열린 빨간 산딸기는 우리 둘이 처음 주고받은 선물이었다. 꼴 따먹기를 하다가 발을 다쳤을 때 나는 정님이의 따뜻한 등에 업혀 개울가를 건넜다. 계절은 지나가고, 펑펑 내리는 눈 속에서 정님이의 하얀 웃음이 나를 가득 에워싸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님이가 큰골 찬샘 아래에 있는 빨치산 무덤에 대해 물었다. 정님이와 그 빨치산은 무슨 관계일까……. 정월 대보름 마을 굿이 한바탕 지나간 후, 우리는 졸업을 맞았다. 그때부터 나는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다녔다. 가는 길, 빨치산 무덤가에 놓인 붉은 진달래꽃을 볼 때마다 정님이가 생각났다. 어느 날 정님이네 집에 불이 나고 정님이네는 다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정님이가 마지막으로 내게 남긴 작별의 편지 안엔, 빨치산에 얽힌 정님이네의 비밀 이야기와 더불어 ‘널 좋아했다’는 정님이의 고백이 담겨 있었다.

정님이가 저만큼 앞서가던 어머니를 따라 산모퉁이를 도는 순간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손을 한번 흔들었다. 그리고 깜박, 정님이의 모습이 지워졌다. 강변에 산에 들에 봄 햇살이 눈부시게 퍼지고 있었다.

“너도 날 잊지 마, 나도 널 잊지 않을 거야.
우리 더 커서 만날 수도 있잖니.
언젠가 내 생각이 나면 이 강물을 따라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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