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 멜빌의 명작 모비 딕에는 몇 사람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간부선원으로서 선장 에이허브, 일등항해사 스타벅, 이등항해사 스터브, 삼등항해사 플라스크가 있다. 3등 항해사 플라스크는 간부 선원인 말단 항해사로 승진한 후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오! 그대들이여. 승진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그의 고백을 들어보자.
“항해사라는 권위 있는 지위로 승진한 그 순간부터 다소라도 배가 고프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먹은 것은 시장기를 달래주기는커녕 오히려 허기를 나의 몸속에 영원히 붙잡아 둘 뿐이다. 평화와 만족은 영원히 내 뱃속에서 떠나가 버렸다. 나는 이제 간부 선원이지만, 평선원일 때 그랬던 것처럼 앞 갑판에서 오래된 고기일망정 손으로 집어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이 승진한 보람이란 말인가. 영광은 덧없고 인생은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이렇게 그는 3등 항해사라는 간부 선원으로 승진했지만 선장 앞에서 얌전히 앉아 있어야 하고, 심지어 선장을 포함하여 상사인 항해사 간부 직원들과 함께 식사할 때 자신은 아직 식사를 마치기도 이전에 식욕이 없는 선장이 숟가락을 놓으면 자신도 식사를 마쳐야 하는 괴로운 신세를 한탄했다. 하지만 승진을 해야 항해사가 되고 마지막에는 선장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뱃사람들의 최고 영예인 선장되었다고 해서 영광만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천만에. 아니다! 선장이 되면 또 다른 자가 선장을 통제하고 지휘한다. 다시 말하면 거친 폭풍과 수시로 돌변하는 변화무쌍의 바다가 선장을 지휘한다. 선장도 자기 위에 상사가 있는 것이다. 선원은 선장의 부하 직원이지만 선장도 바다의 부하 직원일 뿐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승진을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그것도 지나고 나면 덧없는 인생의 스쳐 가는 바람에 불과할 뿐이다. 정말 별것 아니다. 흐르는 눈물과 피나는 노력과 쓰라린 고통으로 여기에서 목표하던 저기에 도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또 저기에 도달하는 순간 저기가 여기가 될 뿐이다. 또다시 여기에서 힘겹게 또 다른 저기에 도달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또다시 저기가 여기가 되어버린다. 여기가 저기가 되고, 저기가 여기가 됨을 반복하면서 결국 여기에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아! 친구들이여. 인생은 그저 허탈하고 허무할뿐이다.
오! 평선원들이여. 오. 무심한 인생이여. 슬퍼하지 말라.
일반 선원은 간부 선원의 부하요, 간부 선원은 선장의 부하요, 선장은 바다의 부하 직원일 뿐이다. 거대한 전쟁에서 병졸들은 장군의 부하요, 장군은 황제의 부하요, 황제는 승리의 부하이다. 농노(農奴)는 영주의 노예요, 영주는 황제의 노예요, 황제는 역사의 노예인 것이다.
오! 그대들이여. 이 세상에 부하가 아닌 자가 누가 있느냐? 이 세상에 노예가 아닌 자가 누가 있는가?
은행의 일선 지점장 또한 마찬가지다. 지점 위에는 시도 단위의 본부가 있고 그 위에는 또 본부가 있다. 지점장은 본부장의 지시를 받음은 물론 업적의 노예가 아닌가. 지점장은 다만 업적의 부하 직원, 고객의 신하, 고객의 심부름꾼일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승진을 바라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오! 인생이란 진정 무엇인가. 오! 인생이여. 오! 그대들이여. 부하 직원이 아닌 자가 누구란 말인가. 우리 모두는 삶의 노예요, 인생의 부하 직원이 아닌가. 마케팅의 심부름꾼이 아닌가. 정말 괴로운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인생의 주인은 인간 자신이 아니다. 톨스토이는 그의 명작 ‘부활’에서 인간은 각자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고 착각하고 살아간다고 했다. 그는 온갖 쾌락을 즐기는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포도밭 농부들을 비유하면서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주인을 위해 일하라고 보낸 포도밭 농부들이 그 포도밭이 자기네들 것인 양 착각했다. 그리고 포도밭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자기들을위해 준비해 놓은 것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포도밭 주인의 존재를 망각했고, 누구든 주인의 존재를 상기시키거나 주인에 대한 그
들의 의무를 상기시키면 모두 죽여 버리고, 포도밭에서 인생을 즐기는 것이 오로지 자기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면서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우리 인생의 주인이라든가, 생명이 우리의 쾌락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는 불합리한 확신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런데 그것은 완전히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보내진 존재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 어떤 의지에 의한 것이고 또 그 어
떤 목적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직 우리의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기로 정해버렸다. 그리고 주인의 의지를 실행하지 않는 일꾼이 비참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비참해질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이하 생략).”
그렇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어떤 알 수 없는 힘과 질서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에게는 살아갈 권리도 있지만 해야만 하는 의무도 있는 것이다. 그 의무라는 것이 우리는 알 수 없는 인생의 주인을 위해서 우리의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
리 모두는 삶의 노예인 것이다. 오! 불쌍한 인간들이여.
---「제2부 승진이란 무엇인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