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체도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이경혁(http:://blog.yes24.com/redder)
기생충 하면 우리가 먼저 떠올리는 것들은 징그러움이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이 몸 안에서 꿈틀거릴 거라는 생각을 하면 누군들 징그럽지 않을 수 없다. 기생충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 이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생충에 대해 무언가 아는 이는 있을까?
우리가 배우는 정규 교과과정 속의 과학, 생물학에는 놀랍게도 기생충이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편형동물, 원생동물 등의 분류 속에서 간신히 그 생김새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인 것이 우리의 기생충 지식이지만, 실상 기생충의 기억은 어릴 적 채변검사의 구릿함이라는 대한민국 구성원 모두가 겪는 동일한 코드로 자리잡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으나 모두가 모르는 바로 그 생물학의 어두운 분야에 빛을 비춰주는 책이 칼 짐머의 ‘기생충 제국Parasite Rex'이다. 저자는 수조 안의 개구리 한 마리를 바라보며 ’개구리 한 마리‘ 라고 생각하는 방식을 ’개구리 숙주와, 그 안에 기생하는 수십 종의 기생충 꾸러미‘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다. 미처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 속의 그들은 실상 세계의 지배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저자는 끊임없는 가능성 제시를 통해 납득시키고 있다.
'Rex'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기생충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기생충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 드물다. 매년 제때 구충제를 챙겨 먹는 인간 개체에도 대장균이 기생하며, 개구리 한 마리를 해부하면 때로는 수십 마리의 촌충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단순히 개체수만 많을 뿐 아니라, 그 생활 패턴도 다채로운 것이 기생충이다. 어떤 녀석은 개미의 뇌 속에 기생하면서 소의 위장에 들어가기 위해 개미를 조종해 저녁마다 소가 뜯는 풀 꼭대기에 올라가게 한다. 물고기에 기생하는 어느 종류는 물고기의 혀를 다 잘라먹은 뒤, 자기가 그 혀의 위치에 박혀서 물고기가 음식을 먹을 때 혀의 노릇을 하는 뻔뻔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기생충 제국’이라는 말은 이처럼 다양한 삶의 모습으로 다른 개체들의 삶과 생태계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기생충의 보이지 않는 위상을 제대로 살려주기 위한 말이다.
비록 기생충은 숙주라는 하나의 개체를 자신의 세계로 삼는 작은 종에 지나지 않지만, 그 영향력은 절대 숙주 하나에만 미치지 않는다. 숙주와 기생충은 상호 변증법적인 영향을 보이며 끊임없이 발전해 나간다. 기생충은 살기 위해 숙주에 기생하지만, 숙주를 죽일 정도의 약탈을 하지는 않는다. 숙주의 죽음은 곧 기생충에겐 세계의 멸망이기 때문이다. 제한된 범위 내에서 끊임없이 수탈을 시도하는 기생충에 대항해 숙주 또한 끝없는 대응책을 개발해 낸다. 동성생식으로 번식을 하는 어느 달팽이는 심지어 촌충의 번식이 극도에 이르면 양성생식으로 체계를 바꾸어 기생충에 대항하고, 포유류에 기생하는 흡충류는 끊임없이 자신을 공격하는 면역계를 각종 화학물질과 세포껍질 등으로 위장하면서 피해다닌다.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항하는 진화가 사슴의 뿔, 가젤의 달리기를 만들었지만 내부로부터의 위협은 생물들의 면역계와 생식계 등의 방면에서 또다른 진화의 힘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곧 생태계 전체의 조화와 안정, 그리고 진화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시각이 그저 기생충에만 그쳤다면 이 책은 교양과학 서적이겠지만, ‘기생충 제국’은 사회과학 교양서로의 가능성까지도 내포한 책이다. 저자의 사유는 기생충의 생활 방식을 제대로 조명하고, 그 위상을 높임으로서 다른 생물들의 생활 방식을 바라보는 것 또한 바꿔놓는다. 예컨대 인간이 그것이다. 지구라는 거대한 존재에 기생하는 인간은 다른 기생충과 마찬가지로 숙주인 지구를 끊임없이 발전시키며, 그 속에서 양분을 섭취하며 자란다. 그러나 숙주가 죽으면 기생충도 죽는다는 생명의 대원칙은 여기서도 적용되며, 지구 또한 지나친 인간 기생충의 수탈에 대해 각종 자연재해로 화답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논리가 아닌 우주의 섭리라고까지 저자는 말하고 있다. 기생충이라는 작은 단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인간 스스로에 대한 시각까지도 새롭게 교정할 수 있으며, 어찌 보면 생물학계의 미셸 푸코와 같다는 생각마저도 들게 한다.
어느 독자라도 검은 바탕에 전자현미경으로 찍은 초파리의 얼굴이 박힌 표지부터 긴장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고, 책장 간간이 나타나는 끔찍한(?) 기생충들의 사진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고 넘기면서 저자의 기생충에 대한 애정어린 묘사와, 인간의 삶과도 유사한 그들의 생활과, 마지막의 대결론을 제대로 따라가다보면 식사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어나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조금 과장을 섞어보자면 그렇다. ‘지금 내가 먹는 밥은 나혼자가 아니라, 나와 함께 사는 또다른 종들과 함께 나눌 양분인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