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의 위험성과 비윤리성을 고발한 글을 모은《파우스트의 선택》을 독자들 앞에 부끄럽게 내놓은 지 벌써 4년이 다 되어간다. 생명공학의 본질을, 젊은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 교수의 선택에 빗댄 것이다. 하지만 자본과 국가에서 부가가치 창조를 위해 제공하는 막대한 연구자금을 밑 빠진 독처럼 삼켜대는 생명공학은 4년 전보다 훨씬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분칠하고 우리 앞에 성큼 다가서고 있다. 유전자조작 기술은 이제 유전자조작 식품을 넘어 기능성 약품과 식품을 예고하고 동물복제의 충격은 인간복제 소문을 넘어 인공장기의 가능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한해 100억원씩 10년간 정부에서 제공하는 대형 연구기금은 이미 한두가지가 아니다. 2003년 4천억원대로 지불했던 연구비는 2004년에는 5천억원대 예산으로 국회에 신청되었다 하고, 조만간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낙관하는 가운데, 생물학과에서 개명한 전국의 생명공학 관련학과뿐 아니라 의학, 농학, 식품공학들같이 생명공학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전공자들은 거대한 연구 분야에 경쟁적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한결같이 부가가치를 약속하고서 말이다. 이끼 낀 상아탑이었던 대학이 벤처기업 양성소로 화려하게 변신한 요즘, 연구자들은 생명을 이해?보전하기보다 생명을 이용하여 치부하는 요령을 터득한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다.
기술의 진보가 눈부시게 빠를지언정 생명공학의 본질은 조금도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초판의 글의 맥락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1998년부터 허겁지겁 써왔던 글들은 다급한 마음이 앞섰을 뿐 아니라 중복되는 내용이 많아 독자들에게 민망했고, 4년이 경과한 요즘, 현기증 나게 진행되는 생명공학의 최근 문제를 독자들과 다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겠다고 여겨졌다. 아울러 최근 휴먼게놈 프로젝트 완성 이후 배아복제와 관련된 기술이 국내외적으로 속속 연구개발되는 마당에 생명윤리의 정의와 생명윤리와 안전을 담보하려는 국내외 시민단체의 노력과 그 현황을 독자들과 새롭게 공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느꼈다. 차제에 진부하게 느낄 만하고 중복된 내용이 많은 초판의 글들은 제외시켰다. 또한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꼭 필요하지 않다면 각주를 생략하였고 시제를 요즘에 맞추었다. 자료 출처가 필요한 독자는 필자에게 연락해줄 것을 부탁한다.
소문만 무성했던 생명공학육성법 개정안은 무능한 15대 국회가 문을 닫으면서 자동 폐기되었고, 오명을 다한 16대 국회에서 통과시킨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시행령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총선을 막 치른 여당이나 야당, 시민?종교단체에서, 생명윤리 문제로 골치 아픈 법을 다시 심도있게 검토하려 할지 확신하기 어렵다. 보건복지부 주도로 과학기술부와 절충한 그 법률에 부정적인 시민단체는 그간 이 땅에 생명윤리의 허술한 토대라도 구축되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관심없어 하는 국회의원들에게 힘겨운 로비를 감당해왔으나, 겨우 정비된 제도는 실망의 정도가 심했다. 그와 관련한 내용의 글도 새롭게 실었다. 또한 일방적인 논리에 따라 추진되는 장기이식용 동물의 치명적인 위험성을 새롭게 조명해 보았다.
용어가 고의적으로 복잡하기로 타 학문의 추종을 불허하는 생명공학이 어느 정도의 까다로움으로 우리를 성가시게 하든, 생명공학의 제 문제는 전문가들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초판이 나오고 4년이 경과한 지금도 확인할 수 있다. 유전자조작이든 생명복제든, 생명공학이 필연적으로 몰고올 생명에 대한 위험성과 비윤리성은 자식을 키우는 시민의 행동만이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뼈저리게 느낀다.
초판에 실었던 제레미 리프킨의《바이오테크 시대》서평〈파우스트의 선택〉을 이번 개정판에서 제외했다.《바이오테크 시대》가 출간된 지 5년이 지났고 이미 많은 독자들이 내용을 잘 알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은 그대로 ‘파우스트의 선택’으로 붙이기로 했다.
녹색평론사에 거듭 감사드린다. 개정판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녹색평론사의 권유 덕분에 준비할 수 있었고, 덕분에 많은 평자로부터 ‘현실을 무시하는 근본주의자’로 낙인찍힌 화상답게, 분노에 찬 안타까운 시선으로 생명공학의 문제를 되새겨 정리할 수 있었다. 개정판의 논조가 초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미리 독자와 평자에게 밝히고자 하며, 다시 4년 후가 될지, 그보다 빠를지 느릴지, 재개정판을 기획하게 된다면, 그때에는 지금보다 희망적인 이야기가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개정판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