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한 쪽이 정당하지 않게 제 이익만을 추구할 경우 그에 대해 당당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진실을 외면하거나 가리려는 한 쪽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던지는 것은 동맹관계의 당사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이자 의무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5o18광주민주화운동에서부터 장갑차에 치여 죽은 효순과 미선의 일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미국에 대한 이의 제기와 비판을 반미 감정의 표출이라고 말한다면, 앞으로도 한참 동안, 우리의 반미감정은 오히려 한층 더 그리고 제대로 성숙해야 한다고 아빠는 믿는다.
*** 통일이 된들 좋을 게 없으니 차라리 통일 안 하고 이대로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라면, 더 고민을 할 것도 없다. 통일독일을 예로 들면서, 통일 이후에 양쪽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얼마나 나빠지고 있는지, 그리고 일부이기는 하지만, 차라리 통일 이전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좋다는 쪽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통일이 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네 생각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는 후진국으로 전락한다, 성장 없는 분배란 있을 수 없다, 지금 우리 상황에서는 성장이 우선이다, 분배는 조금 뒤에 해도 괜찮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은 왜 그렇게 말하는 걸까? 과거 고도 성장 시절의 영광과 자랑스런 수치들을 들먹이면서 정부와 기업과 온 국민이 다시 한번 허리띠를 졸라매고 분발해야 한다며 전에 없이 목청을 높이는 이들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갑자기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건 무슨 이유일까?
*** 네가 가진 종교에 대한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네 스스로 한없이 편협한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적어도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종교의 자유가 가장 광범위하게 허용된 나라이고, 그 자유는 누구에게나 똑 같이 주어져 있으며, 이 땅에 들어와 있는 모든 종교의 신들은 자기를 믿는 대한민국의 신자들을 무조건 사랑하기 때문이다.
*** 네가 진심으로 남을 돕겠다면, 다시는 '시간이 없어서, 여유가 없어서' 못하겠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남을 돕는 일은 네가 쓰고 남은 시간에 하는 게 아니라 네가 써야 할 시간을 쪼개서 해야 하는 일이고, 네가 쓰고 남은 것을 주는 게 아니라 지금 갖고 있는 것부터 같이 나누는 일이기 때문이다.
*** 네가 꼭 써야 할 것을 처음 고를 때는 나중에 그걸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먼저 걱정해야 하고, 그래도 꼭 버려야 할 것을 고를 때는 나중에 다시 쓸 일이 없을까를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버리는 걸 얼마든지 줄일 수 있고, 버리려고 해도 사실은 버릴 게 그다지 많지 않으며, 꼭 버려야 할 것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시 쓸 게 꽤 많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 전에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인데 네가 느닷없이 인사를 하면, '쟤가 누군데 나한테 인사를 하지?' 하며 놀라거나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중에는 네가 보내는 미소에 똑같이 부드러운 미소로 답하는 이들도 나타날지 모른다. 그렇게 몇 번만 해 보자. 네 인사에 미소로 답하는 얼굴들이 점점 더 많아지다 보면, 네 기분은 물론 네가 사는 우리 동네도 그만큼 밝아지지 않을까?
*** 내 것이 아닌 것을 주인 허락 없이 가져 오면 절도죄가 성립되고, 그걸 가져다가 제멋대로 쓰면 횡령죄에 걸리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여기저기서 훔쳐 오거나 주인 허락 없이 가져온 프로그램들이 깔린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 세상을 헤집고 다니는 2000만의 대한민국 네티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중 삼중의 처벌을 받아 마땅한 정보 통신 관련 범죄자들인 셈이다.
*** 천천히 가는 게 왜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 될까? 네가 지금부터 살아가야 할 네 인생은 분명 장거리 경주와 비슷하다. 장거리 경주에서는 누가 뭐래도, 빨리 달리는 것보다 쉬지 않고 끝까지 잘 달리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러니 달리기는 달리되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야 한다. 옆 사람과 이야기도 나누고 콧노래도 부르면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다 보면, 너처럼 천천히 달리는 걸 좋아하는 이들도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달리는 일 자체를 즐기면서 모든 사람이 끝까지 함께 가는 세상도 머지않아 올 수 있을 테니까.
***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네가 태극기를 그리기 위해 물감이나 크레파스를 아무리 뒤져 봐도 태극기를 그리는 데 써야 할 진홍색과 아청색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을 뿐더러, 이런 저런 물감을 섞더라도 태극의 두 가지 색상을 정확하게 만들어 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학용품을 만드는 회사나 태극기를 그려 오라고 숙제를 내 주는 선생님 모두 태극의 색상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엄연히 정해진 색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라의 상징물인 태극기를 네가 알아서 대충 그리라고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재미 있는 것은, 사람들이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전혀 쓰지 않은 유기농 작물을 찾으면서도 채소나 과일에 벌레 먹은 자리가 있거나 색깔이 안 좋으면 어떻게 이런 걸 갖다 놓고 파느냐며 큰소리로 항의를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유기농을 이야기하거나 유기농 농작물을 먹을 자격이 없는 이들이니까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 일제 강점기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온갖 설움과 고난을 이기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지켜 온 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을 온 국민과 함께 국경일로 기념하지 않는 나라. 광복군의 자랑스런 후예인 우리 국군이 정작 광복군 창설기념일을 국군의 날로 기념하지 않는 나라. 조국의 광복과 독립을 위해 자신들의 한 몸을 초개같이 던졌던 대한 독립과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대한민국은 아직도 그렇게 부끄러운 나라이다.
***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의 영웅들을 모신 동작동 한쪽 구석에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절대로 그 이름이 밝혀질 리 없는 6000명 이상의 무명 용사들이 말없이 잠들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죽음까지 잊어서는 안 된다. 네가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이들, 너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너 또한 목숨을 바쳐 네가 사랑하는 나라를 지켜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을 모신 봉안관 위패 앞에서, 너는 특별히 정중하고도 긴 묵념을 올려야 한다.
*** 네가 사랑하는 나라가 너를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너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네가 이 땅에 없던 시절에 그 참혹한 죽임이 일어났다고 해서, '나는 아무 책임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네가 눈과 귀를 막고 있던 사이에 그들의 피 맺힌 절규와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고 해서, '나는 보도 듣도 못한 일이니 더 이상 내게 아무 얘기도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네 몸의 세포 속에도 그 야만과 폭력의 유전자가 여전히 살아 남아 있을지 모른다고 말하면, 너는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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