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미인들이 늘 찬미되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중국에서 미인은 육조시대六朝時代 이래로 두 가지 측면을 갖게 되었다. 점유와 소유의 대상으로서 끊이지 않는 사랑과 찬미를 받았던 반면, 미모는 파멸적인 힘을 내재한 악녀의 가면으로 묘사되었다. 미인은 어느덧 점유와 지위, 부유와 행운, 향락을 연상시키는 존재기도 했지만 죽음과 실각, 쇠멸과 망국, 상실과 몰락을 초래하는 원흉으로서 두려운 존재기도 했다. 그러한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어떻게 기능했던가 하는 문제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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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씬한 체형이 아름답다는 관념은 의외다 싶으리만치 그 역사가 짧다. 다이어트의 발상이나 방법 역시 서구에서 건너온 것이지만, 발상지인 유럽에서는 겨우 백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풍만한 신체를 여전히 여성미로 인식하고 있었다.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림 속 미녀들은 모두 풍만한 육체의 소유자들이다. 유럽에서 날씬한 여성들이 ‘아름다움의 화신’으로 각광을 받은 것은 19세기 말이다.
(…) 그런데 이런 주장은 서구문화와는 정확히 부합하지만, 동아시아에 불어 닥친 현상은 충분히 설명해낼 수 없다.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날씬한 여성을 아름답다고 간주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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쵸분사이 에이시의 <화하미인도>는 에도시대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미인도로서, 만개한 벚꽃 아래 뒤돌아보는 자태로 서 있는 여인을 화폭에 담고 있다. 얼굴은 다소 마르고 길며, 자그마한 입은 성적 매력의 상징으로 귀엽게 그려져 있다. 눈은 약간 치켜 올려져 있고 똑같은 선묘법線描法으로 윤곽만을 표시한 코에는 최소한의 필묵筆墨만을 화폭에 쏟고 있다. <화하미인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 같은 오관五官의 묘사방식은 다른 미인화와도 공통된 특징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체형이다. 가는 허리와 날씬한 몸매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에도시대에는 날씬한 체형과 팔등신의 장신을 선호했던 듯하다.
이에 비해 청대의 <미인영희도>에서는 완전히 이질적인 미의식이 보인다. 아사자네가오(과실안瓜實顔)를 극단적으로 강조한 결과, 턱이 뾰족해져서 얼굴 전체의 균형이 무너질 지경이다. 작은 입은 일본의 미인도와 별반 다를 게 없는데, 눈썹의 위치는 눈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다. 이런 눈썹을 미인의 은유로 보는 표현 관례는 같은 시대의 목판연화木版年畵에서 공통 요소로 나타난다. 아름다운 눈은 에도시대의 미인화와 비슷하면서 약간 가늘고, 또 쌍꺼풀이 선명하게 묘사되고 있는 점은 일본의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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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도 묶지 않은 채, 어디서고 볼 수 있는 맨얼굴과 맨발로 있고, 손톱은 약간 길고 몸매는 날씬하다. 얌전하고 살집도 적당한 자태에 시선(눈매)도 모자란 구석이 없다. 목소리도 좋거니와 피부는 백설처럼 곱고, 잠자리에도 능숙하니 희대의 호색녀인데, 손님을 황홀하게 만들어주고 술도 잘 마신다. 노래도 잘 부를 뿐 아니라, 고토와 샤미센 실력은 굳이 말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실수 없이 좌중에 들려주며, 고상한 문장을 길게 쓸 수 있고, 손님에게는 무언가를 강청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아낌없이 주며, 정도 깊고 연애를 거는 기술은 가히 명인의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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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미인은 평균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에 따라, 비로소 그 희소가치를 표시할 수 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미인으로 변신할 수 있게 된 오늘의 상황은, 미모가 지닌 충격을 현저히 감소시켰다. 현대에는 ‘경성경국’ 즉 미인으로 인해 한 나라가 멸망한다거나 사회 전체가 붕괴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일어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미모를 돈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시 중요한 변화를 낳았다. 다시 말하면 절대 미인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누구나 비슷비슷한 ‘미인’이 될 수 있다면, 제아무리 빼어난 아름다운 용모를 갖추고 있더라도 금방 싫증나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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