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층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거리는 여느날과 다르지 않았다. 차도엔 무수한 자동차들이 넘쳐나고 사람들은 어디론지 바쁘게들 움직이고 있었다. 나를 빼곤 모두들 일상의 안온함을 누리는 것 같았다. 돌이켜보니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저 길을 오가면서 참 열심히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어째서…… 지금 나는 이 지경이 되어 있는 것일까? 억울했다. 나는 수모를 당할 만큼 나태하지도, 탐욕스럽지도 않았다. 주어진 일에 충실했고, 누구에게 내놓아도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았다. --- p.19~20
되는 일도 없이 하루 종일 속만 태우다가 집에 들어오면 육체 노동을 한 것보다 더 심하게 피곤이 몰려오곤 했다. 그날도 저녁을 먹고 신문을 뒤적이다가 나도 모르게 스르륵 선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얼마 동안을 자다가 언뜻 눈이 떠졌는데, 안방으로 들어오는 아내가 보였다.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아이들 잠자리를 봐주고 나서 들어오는 참이었던 모양이다. 헌데 다른 때와 달리 유달리 사뿐사뿐 조심스레 움직이는 아내의 태도가 이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내가 내 지갑을 집어 들더니 슬며시 1천 원짜리 몇 장을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는 체를 하지 못하고 돌아누워 베개를 적셨다. --- p.24~25
온 집안에 빨간딱지가 들러붙은 1982년 겨울,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나는 한밤중에 눈보라치는 들판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두려웠고, 온몸이 마비가 된 듯 몇 날 며칠을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사업 파트너들에 대한 분노와 앞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거의 공항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 p.57
그리고 얼마 후, 피자 헛의 미국 법인인 펩시코 인터내셔널 회장과의 면담 일정이 잡혔다. 후일 전해들은 얘기지만 펩시코 인터내셔널 회장은, 나를 지칭하면서 ‘그 친구 젊은 사람이 참 대단하다’라고 했더란다. 왜 아니겠는가. 이미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한국에서 피자 헛을 운영해보겠노라고 신청서를 제출해놓고 있는 상황에서 소규모 무역업체를 경영하는 영세 사업자에 불과한 내가 도전장을 내밀었으니 말이다. --- p.80
며칠 동안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겨우 계약을 성사시킨 데다가 서울까지 운전을 하면서 올라왔고, 그것도 모자라 18홀 라운드까지 마친 피곤한 몸에 사우나를 했으니, 얼마나 노곤했을지 상상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결국 아우는 피곤한 몸을 이기지 못하고, 안양 못미처 어딘가에서 버스와 정면충돌하는 대형사고를 당해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1990년 4월 21일, 그때 아우의 나이 고작 서른아홉이었다. --- p.97~98
나는 근 1년여 동안 국세청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여나갔다. 그들은 국가 권력의 엄청난 위세를 등에 업고 나를 찍어 누르려 했지만, 결코 그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 결과 국세청에서 지적한 많은 위법사항에 대해 국세 심판소의 오심 판정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끝까지 당당함을 주장한 끝에 많은 부분에 있어 억울함이 해소되기는 했지만, 세무조사에 의한 추징세액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알았건 몰랐건 간에 내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 나는 깨끗이 승복하기로 했다. --- p.119~120
고백하건대,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맨주먹으로 일어서 한때는 50여 개의 피자 헛 매장을 거느리기도 했던 내가, 부도 직전까지 수십여 억원에 달하는 규모의 케니로저스 로스터스 매장 여덟 곳을 보유하고 있던 내가, 고작 5천만 원 짜리 어음 한 장 때문에 맥없이 무너졌다는 현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어둠이 짙게 깔린 사무실에 홀로 앉아 모든 상황이 제발 꿈이기를 바랐다. --- p.150
귀국할 날짜는 다가오고, 도우 개발에는 전혀 진척이 없는 날들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었다. 초조해진 나는 결국 그들의 기술을 훔치기로 작정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밤중에 주방으로 잠입해 도우 제조 비법을 적어놓은 노트를 훔친다거나, 탁월한 실력을 지닌 주방장을 납치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튿날부터 이탈리아 피자를 전문으로 하는 비벌리 힐스의 유명 레스토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 p.189~190
그때 카운터 앞의 전화기가 눈에 띄었다. 그것도 두 대씩이나. 마치 길바닥에서 금덩이라도 주운 양 금세 얼굴이 밝아져서 전화기 앞으로 달려갔다. 왜 아니겠는가. 전화 가입을 해지하면 족히 몇십만 원의 보증금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니, 밀가루를 사고도 얼마간의 돈을 아내에게 가져다줄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전화를 해지하고 오라는 말에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볼멘소리를 했다. --- p.198
나는 성신제 피자라는 브랜드를 놓고 고객을 상대로 애국심에 호소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공정한 상태에서 맛으로 평가받고 싶을 뿐이다. 그러데 그 공정한 기회마저 박탈된다면 어떻게 경쟁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구슬을 꿰어봤자, 그것을 선보일 공간조차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이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다. 성신제 피자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만이 국산 브랜드를 하찮게 여기는 그들의 편견에 맞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아무리 말로 떠들어대며 그들에게 호소한들 먹힐 리가 없었다. --- p.234
내가 그토록 중요시여기는 ‘장인정신’은 곧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다. 그리고 최고가 되려면 미치는 수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일에 미친 사람은 결코 눈앞의 작은 이윤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오로지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만이 있을 뿐이다. 이윤이란, 돈이란, 쫓아가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붙지 않는다. 자석의 같은 극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처럼 쫓아가면 쫓아갈수록 멀어지는 것이 바로 돈이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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