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리고를 가까이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그에게서 언제나 장애와 역경을 딛고 일어서려 노력하는 영웅의 이미지를 보았다. 동시에 그는 다른 이들에 대한 너그러운 연민의 정을 잃지 않는 성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6-7p, 들어가며 중에서
1924년 로드리고는 풀 오케스트라를 위한 〈다섯 곡의 어린이용 소품Cinco piezas infantiles〉을 작곡해 1925년에 열린 전국 음악 콩쿠르에 출품했다. 비록 우승컵을 거머쥐진 못했지만, 저명한 모 심사위원으로부터 “젊고 신선한 정신이 두드러지고, 최고 수준의 작품이 미친 영향과 독창성이 고루 겸비된 악상 발전 솜씨, 거기다 매력으로 충만한 명쾌함과 영혼의 기쁨이 엿보이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15-17p, 제1장 파리에서의 수업기 중에서
그해 크리스마스, 빅토리아의 어머니 소피아가 미리 기별도 하지 않고 덥석 딸네 집을 찾아오면서 사태는 절정에 이르고 말았다. 장모는 사위 내외의 궁핍한 살림을 영 못마땅해 했고, 특히 빅토리아가 그다지 건강한 편이 아니었기에 염려는 더욱 심했다. 1934년 1월19일 ? 공교롭게도 로드리고 부부가 결혼 1주년을 맞는 날? 장모는 사위를 스페인에 홀로 남겨둔 채 딸을 데리고 파리로 떠나버렸다.
로드리고는 남은 1934년의 대부분을 아내와 떨어져 지내야 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했고, 그나마 빅토리아와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걸 위안삼아야 했다(한 해 동안 오간 편지는 일흔 통이 넘는데, 지금은 빅토리아가 남편에게 보낸 편지만 남아 있다). 29p, 제2장 결혼과 이별 중에서
어느 날 아침 나는 라틴구중심부에 있는 생 자크 거리에 있는 내 작은 서재에 앉아 협주곡에 대해 막연한 생각을 더듬고 있었다. 기타 협주곡을 쓴다고 생각하니 꽤나 까다로운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지만, 또 그만큼 애착이 가기도 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아다지오’ 악장의 전체 주제가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지는 게 아닌가. 그 어떤 머뭇거림도 없이 단번에 착상된 이 주제는 사람들이 듣게 될 완성품과도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세 번째 악장의 주제가 온전히 머릿속으로 치고 들어왔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나는 전체 작품을 어떻게 구성하면 좋을지를 깨달았다. 37-38p, 제3장 아랑후에스 협주곡 중에서
어쩔 수 없이 외국을 이리저리 떠돈 시절에도 로드리고는 스스로가 상상 속에 그리던 스페인의 비전을 고이 간직했다. 그가 시대와 역사의 잔인함을 초월한 ‘진정한 스페인’을 그려가며 상징적인 아랑후에스를 향한 결정적인 순례를 시작했음을,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우리는 보게 된다. 아랑후에스의 정신을 스페인 민중의 삶 속으로 끌어들인 그의 여정은 모순, 역설과 타협으로 점철된 기묘한 미궁 속을 더듬어야만 했다. 그러나 호아킨 로드리고의 예술은, 거대한 물줄기를 이룬 강처럼 혹은 스페인 그 자체처럼 결국에는 모든 질곡을 헤쳐 나가게 된다. 43p, 제3장 아랑후에스 협주곡 중에서
로드리고는 타고난 품성이 그러하기도 했거니와 또한 고된 인생 경험에 의해 다져진 강인한 동력에 힘입어 슬기롭고도 좀처럼 꺾을 수 없는 의지를 지닌 예술가로 발전해 갔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련은 자기 연민이 미덕이 아님은 물론이요 어쨌거나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일러주었다. 그의 음악이 허무주의나 자기 파괴적인 내향성을 띠지 않은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51p, 제4장 세계적 명성 중에서
아랑후에스 협주곡 ‘아다지오’ 악장의 아름다운 주제 선율은 다양한 장르를 통해 그 유명세를 더욱 확산시켰다. 마일스 데이비스, 칙 코리아Chick Corea(1941- ), 모던 재즈 쿼텟Modern Jazz Quartet, MJQ 같은 재즈 뮤지션들이 ‘아다지오’ 악장을 재해석한 바 있고, 니카노르 사발레타Nicanor Zabaleta(1907-1993), 마리사 로블레스Marisa Robles(1937- )를 비롯한 여러 연주자들은 하프 편곡판을 연주 및 녹음했다. 이 외에도 노랫말을 붙인 편곡판, 다수의 기타 버전으로 편곡한 버전, 브라스밴드 편곡판, 팝 그룹의 재해석판 등 그야말로 다양한 옷을 입은 ‘아랑후에스 아다지오’가 존재한다. 50p, 제4장 세계적 명성 중에서
1952년 6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타리스트 안드레스 세고비아가 16년간의 타향살이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그라나다에서 개최된 ‘음악과 무용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이후로 세고비아는 스페인 내의 몇몇 엄선된 무대에서 연주회를 가지면서 대부분의 수익을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그러면서 로드리고와의 직업적 관계 또한 매우 긴밀해졌고, 작곡가는 조국을 대표하는 악기의 명장에게 여러 수작지어 바쳤다. 57-58p, 제5장 본격적 비상으로 중에서
로드리고는 70년 세월 동안 작곡의 펜을 꺾지 않으며 발레, 오페레타, 관현악곡, 협주곡, 영화음악, 연극 및 라디오 드라마를 위한 부수음악, 성악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가곡, 무반주 합창곡, 취주악 앙상블을 위한 음악, 피아노 반주의 가곡과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첼로, 플루트, 하프와 반도 네온을 위한 독주곡, 다양한 편곡 작품 등 200곡에 가까운 작품을 써냈다. 장르 면에서나 곡의 구조 면에서나 참으로 다양하고 폭넓은 지평에 걸친 성취였다. 91p, 제7장 로드리고를 기리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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