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난 만 열네 살이었고 유부녀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녀는 우리 관계를 연애라고 불렀다. 그리고 우리가 연인이라고 말했다. 때때로 운명적인 연인이라고도 했다. 10대 중반의 나이에 나는 이 숭고한 단어들이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단지 그녀의 두 번째 베이스캠프였을 뿐이었다.
샌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크고 펄럭거리는 검정 스커트에서 약 60도 각도로 나와 있었다. 샌들 속에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납작한 평발이 들어 있었다. 두꺼운 검정 양말로도 오래된 사마귀가 감춰지지 않았다.
왕새우 같은 커다란 분홍색 손이 닳아빠진 검정 소매 밖으로 삐죽 나와 있었다. 앙상한 목 역시 다 해진 검정 칼라 밖으로 나와 있었고 목젖은 아주 매력적으로 튀어나왔다.
살집이 두툼한 삼각형 모양의 코에는 제1차 세계대전 때의 것인 것 같은 할머니 안경이 걸쳐 있었다. 오른쪽 각도에서 보면 다소 날카로운 두개골이었다. 긴 고무 같은 입술은 바보스러운 미소로 당겨 있었다.
조지프 워릴로 신부는 만화 속 인물과 같은 모습이었다.
마침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을 이야기해야 할 때가 됐다. 모든 것을 깨뜨린 순간이자 불행했던 결말 말이다. 내 욕정에 가득 찬 눈이 다른 남자의 아내의 가슴에 머물렀고, 내 간음하는 손이 그녀의 드레스 속에 있었으며, 내 간음하는 손이 다른 남자의 아내의 성기 속으로 빨려들어갔을 때 말이다. 놀랍게도, 이 얘기를 듣고도 그는 특별히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입술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고, 눈도 계속 감고 있었다. 입술을 더 빠르게 오므락펴락 하지도 않았고, 눈을 더 빨리 깜박이지도 않았다. 나는 그가 충격을 받으리라 예상했건만 그런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 이처럼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내 짧은 인생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토로하고 싶었다.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백만 가지는 되는 것 같았다. 아니, 2백만 개도 넘을 것이다. 맙소사, 겨우 5분에서 10분 정도 함께하면서 이런 대변화가 생기다니. (나중에야 나는 그와 함께한 시간이 45분 남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만큼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신부님, 조금 더 계실 수 없나요?”
나중에야 이처럼 독실한 체하지 않는 현실적인 모습이 평범한 것들에 대한 사랑과 관대함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하는 모든 말들은 관대함의 깊은 샘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을 응시하면서 그들을 이해했고, 그들이 아무리 결함이 많고, 개인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형편없더라도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했다. 그의 부드러운 힘은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나왔다.
나는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장래가 촉망되고―야망을 가졌다가―인생에 실망을 하고―연금이나 타는 삶의 곡선을 거치는 그런 직업적인 길이 아니었다. 내가 가려는 길은 돈을 좇는 것과도 멀고 충족되지 않는 소유로부터도 자유로운 인생이었으며, 순수한 생각과 명상과 자기 개선과 신성함을 향한 인생이었다. 나는 세계적인 수준의 스승을 두고 있었고 영적으로 최고가 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열여섯째 생일을 불과 몇 주 앞두고 내 탄탄했던 우주의 바닥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어둠을 향해 내 믿음을 돌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어둠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것을 되돌려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 대한 믿음을 돌려달라고 아무것도 없는 것에 기도하는 것은 닫힌 원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갇혔다. 그 영원한 감옥에.
나는 완전히 외톨이였다. 여태껏 그런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내가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그런 감정은 나를 엄청난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내가 존재하는지 질문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런 논리적인 접근은 나를 더 깊은 심연으로 끌어내릴 뿐이었다. 나라는 존재는 내가 태어나기 전이나 죽은 뒤에도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하지만 하느님이 없다면 그런 존재는 영원한 감옥에 갇힌 존재와 다를 바 없었다.
“나는 그 말이 허, 허, 허튼소리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타인이 지옥이 될 수 있지? 하느님은 분명 타인 속에서 나타나신다. 하느님이 곧 타인이야. 우리가 멀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야. 지옥을 훨씬 더 분명히 보여주는 건 자기 자신이지. 내가 바로 지옥이다(L'enfer c'est moi).”
“사르트르의 제자들이 지옥이다(L'enfer c'est les Satres).”
“맞다, 맞아. 사르트르에게는 약, 약, 약간 불공정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갈매기들이 부서지는 파도 위를 날며 점심거리를 노리고 있었다. 갑자기 돌풍이 불더니 비를 뿌렸다. 그래도 우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잠잠하다가 웃음이 터져나왔다. 평화가 나를 가득 채웠다. 평화는 느낌이 아니었다. 평화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었고, 눈으로 확인하고 만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몸에 있는 힘처럼, 당신과 또 다른 당신 사이에 흐르는 힘이었다. 각자 ‘나’라고 불리는 두 분자 사이에 말이다. 평화가 조 신부님으로부터 나에게로, 나로부터 다시 조 신부님에게로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평화를 정의해주세요.”
“평화는 사랑이란다. 그리고 사랑은 평화지. 평화는 네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야.”
“하느님은 너에게 끔찍한 밤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주셨단다. 그가 너에게 지옥을 보여주신 거야. 지옥은 불과 용암이 있는 그런 곳이 아니야. 진정한 지옥은 영원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만 갇혀 있는 거란다. 네가 말한 것처럼, 출구가 없는 감, 감, 감옥이야.”
“그럼 섹스에 아무런 죄가 없나요?”
“물론이야. 어떤 경우엔 죄가 될 수도 있지. 하지만 섹스는 우리가 믿는 것보다 죄가 아닌 경우가 훨씬 많단다. 모두 상황에 달린 문제거든. 만약 타인을 해치거나 이용하기 위해서, 연인에게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섹스를 한다면 그건 죄가 되는 거야. 우리 수도사들은 하느님과 수도회에 독신으로 살 것을 맹세하지. 그러니까 만약 섹스를 한다면 그건 하느님과 형제들을 배신하는 것이 되지. 맹세를 어기는 건 죄야. 결혼의 서약을 깨뜨려서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섹스보다 더 큰 죄란다. 사회에서 성범죄를 가장 나쁜 죄로 정해놓은 건, 섹스가 그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사람들이 섹스를 두려워하는 거지. 하지만 섹스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도 필요한 일이야.”
성을 둘러싼 교회의 규칙과 구속이 여전히 가혹하고 반동적이었던 1958년에 신부님의 그러한 관점은 매우 예외적이었다.
하느님을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 타인을 알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귀 기울이는 것이다. 귀 기울임은 미지의 타인에게까지 이르며 그들과 자신의 벽을 타고 넘는다. 그것은 이해의 시작이며 사랑을 최초로 실천하는 일이다.
충분히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렇지 토니? 우리는 상대방이 하는 말의 일부만 들을 뿐이지. 하지만 듣는 것은 정말 유용한 일이야. 항상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듣게 되니까.
자신이 확신하는 것이 틀릴 때가 많으므로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런 선입견이나 준비 없이 완전하게 열린 마음으로 귀 기울이는 것이다.
25년의 세월 동안 두 번의 결혼을 하였고 두 아이를 얻었다. 나는 마침내 이것을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운명은 나를 남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아버지라고.
그곳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손자가 앉아 있었다. 와인이 바닥을 드러내었고 그의 성한 눈꺼풀이 조금씩 감기기 시작했다.---------나는 일어섰다. 조 신부님을 가까이 다가오도록 하여 떨리는 엄지로 그의 이마에 작은 성호를 그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성호를 그어주는 그의 손이 내 이마까지 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너무나 약해서 새의 날갯짓에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나는 오래, 아주 오래도록 내 두 팔로 그를 감싸안았다.----------그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머리가 약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시력을 잃은 눈에도 눈물이 가득 찬 것 같았다. 내 눈에 가득 찬 눈물 때문에 마치 그가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 얼굴에 마지막으로 작은 미소가 번졌다.
“잘 가거라, 토니야.”
“안녕히 계세요, 신부님.”
진정한 친구는 자아의 바다를 건너는 항해를 함께 한다. 상식적으로 한 사람이 일생 동안 그런 우정을 여러 개 이상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시간, 에너지, 인내, 집중이 필요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혹사당하게 되고 정신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으며 감정적으로도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인에게 바치는 찬사가 이어질수록, 조 신부님은 몇 명이나 수십 명이 아니라 수백 명과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항해를 해왔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한 특별한 친구는 그가 ‘방앗간 소녀’라고 불렀던 영국 북부 도시에서 온 여자였다. 그녀는 30대에 미혼모가 되었고, 그 끔찍하고 고된 일이 생겼을 때 어찌어찌하여 조 신부님과 알게 되었다. 둘은 그녀가 80이 될 때까지 좋은 친구였다. 그녀는 그의 곁에 있기 위해 매년 여름 휴가를 와이트 섬에서 보냈다. 방앗간 소녀와는 정반대로 90년대 중반에는 다이애나 황태자비와 예의 바른 전화 통화나 서신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곳에 일렬로 늘어선 돌십자가들 사이에서, 그의 십자가를 보았다. 그것은 정확히 2대 4 각도로 못질된 나무 십자가였다. 아직 돌십자가를 만들지 않은 것이다. 벌써 빛이 바랜 플라스틱 판자가 그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D. (돔) 조지프 워릴로.’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그에게 오려고 노력했다. 그는 그의 모습이 생생했던 바다에서보다 이곳에선 생생하지 않았다. 거의 6개월 전에 죽음을 맞고, 우리가 마지막으로 걸었을 때보다 나에게서 더 멀리 떨어져 걸을 수 없이, 지금 내 앞에 이렇게 있지만 나는 땅 속에 묻혀 있는 그를, 마음속에 선명하게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그 귀한 모습은 희미해지고 암으로 상한 눈은 썩어가고 확실히 신이 살고 있던 두개골은 죽은 사람의 창백한 머리로 변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는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그는 다른 곳에 있었으며 그는 또한 어느 곳에나 있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