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안 에베르(Anne Hebert, 1916~2000)
1916년 8월 1일 캐나다 퀘벡 시 근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안 에베르는 랭보, 클로델, 보들레르, 발자크, 위고 등 프랑스 작가의 작품에 대한 강독을 통해 작가 공부를 했으며, 특히 1930년대 후반에 이미 퀘벡의 현대시를 개척한 시인으로 인정받고 있던 사촌 생드니 가르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39년 4월 ≪프랑스 캐나다≫지에 <빗속에서>라는 시를 처음으로 발표함으로써 퀘벡 문단에 등단한 그녀는 1942년 1월 17일 첫 시집 ≪불안정한 꿈들≫을 상재한다. 4부로 이루어진 이 시집에는 모두 44편의 시가 담겨 있는데, 여러 잡지에 발표한 것은 6편에 불과했으며, 대부분 미발표 시편들이었다. 1950년에는 단편 소설집 ≪급류≫가 나온다. 1963년에 두 작품이 추가되어 재판본이 나온 이 소설집에는 격렬하고 폭력적인 이야기들이 있으며, 이는 향후 안 에베르 소설의 문체 그리고 내용의 독창적 성격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시기의 안 에베르는 시에 더욱 전념해 첫 시집 이후 1952년 10월까지 쓴 27편의 시를 실은 ≪왕들의 무덤≫을 1953년에 간행한다. 이 시편들은 여러 잡지에 재간행되면서 안 에베르를 생드니 가르노, 알랭 그랑부아와 함께 퀘벡의 대표적인 현대 시인의 반열에 올려놓게 된다. 1958년에 그녀의 첫 장편 소설 ≪숲 속의 방≫이 프랑스 쇠이유 출판사에서 나오고, 1954년에 쓴 <빵의 탄생>과 1957년의 <하루의 연금술>을 비롯해 뚜렷하게 산문시의 형태를 지닌 환상적 이미지와 상징주의적인 심상을 담고 있는 ≪언어의 신비≫가 ≪왕들의 무덤≫과 함께 묶여 1960년 4월 역시 쇠이유 출판사에서 발간된다. ≪시편들≫이라는 제하의 문집이 나온 다음 해인 1961년부터 여러 잡지에 안 에베르는 지속적으로 시 작품들을 기고하지만, 이들이 ≪낮은 밤 외에 비길 만한 것이 없다≫라는 제목의 시집으로 묶여 나오는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1992년의 일이다. 알랭 그랑부아 문학상을 받게 되는 이 시집은 1961년에서 1980년까지 쓴 시편들과 1987년부터 1989년 사이에 나온 것들, 총 49편의 시들을 각각 “옛 시편들”과 “새로운 시편들”이라는 제목 아래 나누어 싣고 있다.
이 시집이 발간될 때까지 안 에베르가 몰두한 것은 소설적 글쓰기였다. 안 에베르를 진정한 소설가로 인정받게 만든 ≪카무라스카≫는 1970년에 나온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미 1965년부터 4년 이상 이 소설에 매달렸던 것이다. 안 에베르의 시적 화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작가는 이 여성들을 소설의 무대에 재등장시켜, 역사와 사회로부터 운명적으로 받은 자기 존재의 소외 그리고 자아 분열이라는 실존적 비극을 독자로 하여금 체험하게 한다. 이렇게 자기 상실의 늪에 빠진 여주인공들의 자의식 분출은 격렬하고 때로는 폭력적이지만, 그 내면에는 비극적인 장엄함과 아름다움이 존재하며, 이것이 바로 안 에베르 작품의 독보적인 특징인 것이다. 안 에베르는 1967년에 <야만적 시대> 외 여러 편이 담긴 희곡집을 발표하고, 1990년에 <새장>이라는 희곡을 내기도 하지만, 역시 그녀가 집중했던 것은 소설이었다. 1975년에는 소설 ≪마녀 집회의 자식들≫이 있고, 1980년에 그녀의 네 번째 소설 ≪엘로이즈≫가 나오지만, 가브리엘 루아에 이어 퀘벡의 작가로서는 두 번째로 그녀에게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페미나상을 선사한 작품은 1982년에 나온 소설 ≪가마우지 떼≫였다. 안 에베르의 대표적인 작품인 ≪카무라스카≫와 함께 이 ≪가마우지 떼≫는 에베르 자신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영화로 만들어져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어 누벨프랑스를 세운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최초의 정원≫은 1988년에 그리고 ≪꿈에 찬 아이≫는 1992년에 출판된다. 1993년에는 ≪시 작품(1950∼1990)≫으로 ≪왕들의 무덤≫, ≪언어의 신비≫, ≪낮은 밤 외에 비길 만한 것이 없다≫라는 기존의 세 시집을 묶어 놓고 있으며, 1997년에는 마지막 시집 ≪왼손을 위한 시편들≫을, 1999년에는 마지막 소설 ≪빛의 옷≫을 남겨 놓고, 2000년 1월 22일 몬트리올의 한 병원에서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한대균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투르의 프랑수아 라블레 대학교에서 랭보 작품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청주대학교 불어불문학 전공 교수로 재직하면서 위고, 보들레르, 랭보, 본푸아 등 프랑스 시인에 대한 강의 및 연구, 번역에 매진하고 있다. 시 번역본으로 위고 시 선집 ≪어느 영혼의 기억들≫, 랭보의 운문 시집 ≪나의 방랑≫, 본푸아의 대표 시집 ≪빛 없이 있던 것≫을 출판했으며, 이들의 시학에 관한 대표적인 글로 <위고의 ≪관조 시집≫ 연구>, <예술의 효용성과 자율성: 보들레르와 고티에의 미학>, <랭보와 파리 코뮌: 1871년 5월의 시 분석>, <이브 본푸아 연구: 단순성과 주현의 시학>, <‘진보’냐 ‘예술’이냐: 1859년도의 위고와 보들레르> 등이 있으며, 번역론으로는 <번역시의 운명>, <운문 번역의 문제들: 랭보를 중심으로>, <시 번역의 몇 가지 쟁점들: 이브 본푸아의 번역론을 중심으로>, <번역가의 고통: 서정시와 서사시의 경계에서> 등이 있다.
한국 시의 불역에도 관심이 있어서 지속적으로 번역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고은의 첫 시집 ≪피안감성≫을 포함해 1960년대 초기 시집 몇 권에서 발췌한 ≪돌배나무 밑에서≫와 조정권의 ≪산정묘지≫ 불역본을 프랑스에서, 구상과 김춘수부터 기형도와 송찬호에 이르는 ≪한국 현대 시인 12인의 시 선집≫을 캐나다에서 출간했다. ≪산정묘지≫ 불역으로 2001년에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수여하는 제5회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으며,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한국 시에 관한 초청 강연을 하기도 했다.
연구 영역을 프랑스어권으로 확장해 2006년에 한국퀘벡학회를 창설, 캐나다의 프랑스어권 문학의 연구 및 국내 소개에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의 학술 대회를 통해 캐나다 퀘벡, 일본, 중국의 저명한 학자를 초빙해 강연을 듣고 발표와 토론에 참가했다. 2008년에는 캐나다 퀘벡 시 건립 400주년을 기념하는 학회에 참가해 <한국에서의 퀘벡학 연구 현황>을 발표했다. 세계적인 프랑스어권 학회인 CIEF 총회에 여러 차례 참가했는데, 2010년 여름 캐나다 퀘벡의 몬트리올 총회에서는 <안 에베르의 ≪왕들의 무덤≫에 대한 한국어 번역>이란 주제로, 2013년 여름 인도양 모리셔스 섬에서 열린 총회에서는 <번역의 실패: ≪꿰맨 인간≫의 ‘시퀀스’의 경우>란 주제로 발표했다. 퀘벡 문학에 관한 연구로는 <가스통 미롱과 탈식민주의>, <퀘벡의 저널리즘과 문학> 등 다수가 있으며, 가스통 미롱의 유일한 시집 번역본 ≪꿰맨 인간≫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