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연애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 사내연애라뇨? 갑자기 사내연애는 왜요?”
“질문은 제가 합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별다른 거부 반응은 없어요. 그런데 왜 그런 질문을?”
“됐습니다. 사내연애에 별다른 거부 반응이 없다면 우리 이참에 진지하게 사귑시다.”
그의 말에 한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내연애라니…….
“사내연애요?”
“같은 직장에 근무하잖습니까? 전 J Convergence의 사장이고, 한지 씬 직원이니까요.”
“…….”
말문이 막힌 한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묵비권은 긍정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혼란스러워하는 한지를 바라보던 지후가 쐐기를 박듯 말했다.
“갑자기 왜 그런 제의를 하세요?”
“왜라뇨? 당연히 관심이 가니 제의를 하는 거죠. 한지 씨는 뭐랄까…… 그래요. 좀 신경이 많이 쓰이는 타입입니다. 본인이 더 잘 알겠지만, 여러모로 이율배반적인 존재이기도 하고요.”
“이율배반적이라뇨. 제가요?”
“당신은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따뜻하고 열려 있는 사람이면서도 자신을 감추는 방어기제가 강한 존잽니다. 얼핏 보면 모두에게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것 같지만, 우습게도 자신을 오픈하진 않아요.”
거만하게 결론을 내리는 지후의 모습이 새삼스레 낯설어 보였다.
“방어기제라뇨? 그게 무슨 뜻이죠?”
“두렵거나 불쾌한 일에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하여 자동으로 취하는 행위죠. 한마디로 상처받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감추고 도피하려는 성향이죠.”
지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쓰며 말했다.
“게다가 주는 건 잘하는데 받진 않아요. 받는 부분. 그 부분을 꽁꽁 잠가놓은 채, 그렇게 산단 말입니다. 그래서 좀 골치가 아프긴 하지만, 뭐…… 나름 그 부분도 맘에 듭니다.”
“그, 그러니까, 제가 그 방어기제가 강하고, 게다가 줄 줄만 알고 받을 줄은 몰라서, 그래서 신경이 쓰이고 맘에 든다, 그 말씀인 거예요? 이것 보세요. 그건 이성에 대한 호감이 아니라 호기심이죠. 이상한 사람에 대한 호기심.”
천재가 내린 멍청한 결론에 한지는 기가 막혔다.
“호기심일 수도 있죠.”
순순히 동의하는 지후의 모습에 한지는 실망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호기심만으로 간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오진 못합니다.”
“간이라뇨? 정말 간이 안 좋아진 거예요?”
“아마도요. 당신이 다른 사람 앞에서 그 고약한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면 엄청난 피로가 밀려옵니다. 간이 나빠진 것처럼…… 아, 한지 씨 덕분에 신장에도 이상이 생긴 것 같습니다. 현기증이 핑핑 도는 것이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달팽이관도 이상이 생긴 것 같고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정작 현기증을 느끼는 것은 그가 아니라 한지였다. 그의 말이 계속될수록 맥박은 주체할 수 없이 빨라지고 핑글, 현기증까지 돌았다.
“심장도 이상합니다.”
“시, 심장은 왜요?”
“조그만 올챙이가 한 마리 크는 것 같습니다. 그 조그만 놈이 심장 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닙니다. 그놈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으면 걱정이 되고, 또 어느 때처럼 쉴 틈 없이 꼬무락대고 다니면 간지럽고 아픕니다. 그래서…….”
“그래서?”
“여러 가지 증상을 종합해볼 때, 제가 내린 결론은 결코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란 겁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 겪는 감정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누군가를 사랑하면 나타나는 증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후의 고백에 한지의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설레다 못해 숨을 쉴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것일까?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버렸다. 강한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멍해졌다.
“마, 말이 안 돼요. 이건, 아니에요.”
한지가 멍하게 중얼거렸다. 정지후와 자신이라니……. 굳이 끝을 보지 않아도 뻔한 결과가 예상되는 사이였다. 한지는 잠시 숨을 고르며 시간을 벌었다. 뜨거운 지후의 시선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안 들은 걸로 할게요.”
냉정한 한지의 말에 지후의 눈빛이 흔들렸다. 마치 상처를 받은 사람처럼.
“하아…… 올챙이가 또 헤엄을 치는가 봅니다. 그래서 한지 씨의 대답은 그게 답니까?”
“네.”
한지는 심장에 올챙이를 키우듯 자신에 대한 관심을 키워온 바보 같은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쉽지 않게 내린 결론을 무참히 무시한 자신의 처지가 서글펐다. 이대로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하지만 더 나가다간 그에게 바닥을 보이며 무너질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순 없었다.
“…….”
“…….”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아슬아슬한 긴장감도 더해졌다. 한참을 이어진 긴장감을 깬 것은 깊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쓸어 넘기는 지후였다.
“한숨 쉬는 거…… 그거 전엔 하지 않던 버릇인데, 당신에게 물들었습니다. 좋습니다. 한지 씨의 마음은 잘 알았습니다만, 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일단 오늘부터 일주일간 제가 자릴 비울 겁니다. 테마파크 부지 승인이 연기되었거든요. 누군가가 개입을 해서 차질이 생겨버렸습니다. 서울에 가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올 테니까 당신은 그동안 마음을 추스르십시오. 다녀와서 다시 얘기합시다. 장담하건대 저를 떼어내기가 쉽진 않을 겁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