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 월궁(月宮)의 항아(姮娥)가 고운 옷자락을 날리며 서 있었다. 연지를 바른 입술이 나풀거리며 면전에 다가온 잘난 사내를 부른다. “전하, 다른 분들은?” 다른 사람을 찾는 여인의 모습이 사내는 눈에 거슬리는 모양이다. “그들이 오기를 바랐는가?” 밖으로 나오는 말투가 너무 담담하고 차가워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둘 법도 한데, 바람에 사락거리는 녹의(綠衣)를 걸친 여인은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다. 사내는 그것이 더 못마땅하다는 듯 앉기를 권하기도 전에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러나 부루퉁한 사내의 반응은 여인의 영롱한 목소리가 노래하는 내용에 금방 돌아서더니 얼굴 가득 경계심을 품었다. 여인은 찰랑이는 물결 소리가 들려오는 정자 난간 너머의 강가 쪽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한가하시어 저를 찾으신 것은 아니시지요. 진실로 한갓 기녀에 불과한 저와의 약속 탓에 이리 오신 겁니까?” “기루에 있으니 기녀가 아니냐고 한 이는 너였다. 게다가 날 오게끔 만든 이는 네가 아니더냐? 날 부른 이유가 뭐냐?” 강바람이 살랑이더니 두 사람 주변을 한 바퀴 돌아 스쳐 지나갔다. “답보 상태이신 전하와 거래를 했으면 합니다.” “답보라……. 내 상황을 네가 어찌 안다는 말이냐?” 설핏 여인의 눈이 반달로 휘어지더니 목소리에도 웃음기가 담뿍 담겨 맑은 옥처럼 귓가를 울렸다. “그 정도도 모르고서 감히 전하께 이렇게 거래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겠습니까?” “뭘 거래하고자 하느냐?” 사내는 관심이 없는 듯 툭툭 던져 묻기만 했다. “제가 가진 정보를 전하께 팔고자 합니다.” “그 대가로 내가 줘야 하는 것은?” “이곳에 미쳐 있는 전하의 영향력이지요. 제게는 그 힘이 필요합니다.” 특이한 거래 품목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를 줄 테니, 힘을 빌려달라. 색다른 요구 품목에 사내는 흥미가 동한 듯했다. “그 힘으로 뭘 할 생각이지?” 여인은 꽃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정확한 대답을 회피했다. 그러다가 아직은 말해줄 수 없다는 듯 말을 돌려 이렇게 말했다. “전하께 득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필요치 않다고 내가 뿌리치면 어찌할 테냐?” 그러자 그런 경우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 듯 여인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러나 여인은 금세 그런 기색을 지우고서 상관없다는 듯 사근사근 웃으며 답했다. “다음에 전하를 뵐 때는 서로 마음 편히 볼 수는 없겠지요.” 그러고서 덧붙이길……. “전하께서는 꽤 힘겨운 적이 되실 게 분명하니까요.” 적이라는 말에 담겨 있는 냉기를 느낀 듯 사내의 굵고 단정한 눈썹이 위로 올라가는가 싶더니, 입술 꼬리 또한 슬쩍 옆으로 밀어 올려졌다. “하하하하!” 연신 터지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조용한 밤공기를 쩌렁쩌렁 울리다 강물과 함께 흘러갔다. 웃음을 멈춘 사내는 강렬한 눈빛을 빛내며 난간에 기대 있는 여인을 응시했다. 여인의 눈빛도 사내만큼 차가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서로를 재어보는 눈빛. 그 순간 사내는 말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