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이대로 보낼 수 없어!’
태민은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그녀의 여린 손목을 잡고 확 잡아당겼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기 바로 직전, 와락 당겨진 여진의 얼굴이 그의 가슴에 묻혔다.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히자 그에게 밀착된 그녀의 몸에서 은은한 아카시아 향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진해서 역겹지도 않고, 너무 흐려서 느끼지 못할 정도도 아닌 그녀만의 독특한 체향이 그를 감쌌다. 마치 목욕하기에 딱 알맞은 온도의 물처럼 서서히 태민의 모든 것을 쓰다듬고 있었다.
은근한 밀착감이 부담스럽다는 듯 여진이 두 손을 들어 그의 단단한 가슴을 밀어냈다. 하지만 그 정도의 가냘픈 손놀림에 쉽게 밀려날 그가 아니었다.
태민은 여진의 허리와 등을 감고 있는 손으로 더욱 단단히 그녀의 몸을 조였다. 그러자 여진이 고개를 들고 그를 올려보았다. 당혹스러움과 민망함을 담은 그녀의 눈빛이 커다란 파동을 일으키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몸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자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난생처음 여자를 안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태민은 갑작스레 머릿속을 강타한 충동적인 감정에 당황했다.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안고 싶다?’
태민은 스스로를 미쳤다고 생각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욕구가 생길 리가 없었다.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에게서 성욕을 느끼는 것도, 안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그의 금기를 깨는 것이었다. 결코 깨서는 안 될 금기였다.
의지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굳은 그였지만, 태민은 이미 자신의 욕망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경지에 다다른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금기는 깨라고 있는 거야. 뭐가 두려워? 몸을 섞는다고 다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니잖아. 그냥 본능에 충실해. 사랑한다고 해서 그 여자를 꼭 안아야 할 의무가 없듯이, 안는다고 해서 반드시 사랑해야 한다는 법도 없어. 남들처럼 즐겨. 즐기라고.’
유혹의 속삭임이 그를 부추겼다.
‘그래, 사랑만 하지 않으면 돼. 내 탓이 아냐. 내 앞에 다시 나타나지 말라고 난 경고했었어. 그런데 이 여자가 나타난 거잖아.’
사탄의 유혹은 달콤했다.
‘그래, 이건 이 여자가 원한 거야!’
달콤한 유혹을 꿀꺽 삼킴과 동시에 태민의 얼굴이 빠르게 여진의 얼굴로 다가갔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그의 얼굴을 쳐다보던 여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랐는지 분홍색 립스틱을 바른 그녀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태민은 벌어진 그녀의 입술이 자신을 초대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놀라움과 혼란스러움으로 떨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여진의 의도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전신을 빠르게 오가며 그를 괴롭히고 있는 뜨거운 욕망. 빌어먹게도 그 욕망이란 놈이 바다와 마주 선 거대한 도시를 삼키는 해일처럼 그의 이성을 한순간에 잠식해버렸다. 전투 의지를 상실한 이성의 항복 선언에 그의 양심도 눈을 질끈 감았다.
가까스로 붙들고 있던 이성마저도 사라진 지금, 오로지 그녀에 대한 갈증을 채워야 한다는 갈급함만이 냉소로 가득 차 있던 그의 가슴을 태우고 있었다.
태민은 항변을 위해, 그의 접근을 저지하기 위한 말을 하기 위해 달싹거리는 그녀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덮었다. 서로 다른 극끼리 만난 자석처럼 두 사람의 입술이 찰싹 달라붙었다.
이처럼 아귀가 딱 맞는 톱니바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빈틈없이 맞붙은 두 사람의 입술. 그 빈틈없이 붙은 입술을 통로 삼아 서로 다른 매혹적인 체향과 뜨거운 열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이러지 마…….”
그녀의 말이 그의 입 안으로 들어가 삼켜졌다. 여진의 부드러운 입술에 정신이 몽롱해짐을 느끼고 있을 때, 그녀가 도리질을 하며 그의 입술에서 벗어나려 했다. 거부하는 여진의 움직임에 태민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여자가 싫다고 하잖아. 싫다는 여자한테 이럴 수는 없어. 김태민, 하지…… 마.’
양심이란 놈이 잔뜩 주눅이 든 음성으로 그의 가슴을 두드려댔다. 그러나 양심보다는 유혹이 훨씬 더 달콤했다. 쌉싸름한 양심은 이내 유혹의 달콤함에 녹아버렸다.
그가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 여진이 입술을 떼려 하자 태민은 잽싸게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받쳐 들고 똑바로 응시했다.
‘그래, 당신은 이런 눈빛이 더 어울려. 무대 위에서처럼 말을 해봐. 안아달라고, 외롭다고, 내가 필요했다고 말을 해봐.’
태민은 혀로 여진의 입술을 살짝 핥았다. 그러자 그녀의 눈동자에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버거웠을까? 아니면, 욕망으로 뒤덮인 그의 눈동자가 부담스러웠을까? 여진이 그를 외면했다.
태민은 이제 와서 발을 빼려는 그녀를 순순히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다시 그녀의 얼굴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잠시 맛본 여진의 입술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보다도 부드러웠고 향기로웠다. 생전 처음 느낀 욕망에 대한 호기심과 성적 흥분을 단념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 않은가.
양심의 가책? 하, 개소리다.
흔들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었다. 그러니 유혹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본 그녀의 잘못이다.
이런 상황을 거부할 의사가 눈곱만큼이라도 있었다면, 적어도 그의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를 성적인 충동에 휩싸이도록 도발적으로 유도했다.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태민은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다시 포갰다. 그러자 여진이 마지막 저항을 하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 행동이 그의 투지에 더욱 불을 지폈다.
태민은 자꾸만 자신의 입술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그녀의 입술을 깨물었다.
‘감히 날 뒤흔들어놓고 빠져나가겠다고? 그런 짓은 하면 안 되지!’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