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희생하는 엄마》(The Sacrificial Mother)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는 자기 자녀를 위해 자신을 고스란히 희생하는 수많은 엄마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아이들은 유명 브랜드 옷을 입히고 온갖 종류의 레슨을 받게 하면서 자신은 낡은 티셔츠 쪼가리나 걸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애써 참고 하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이런 행동은 우울증과 불만으로 이어지고, 그런 엄마들은 그저 탈출구만을 찾게 된다. 아이들을 훌륭히 키워낼 힘과 열정, 인내심을 진정으로 갖고 싶다면 우리 자신부터 먼저 돌보아야 한다. 비행기 안전 수칙이 바로 여기에도 적용된다. 비행기에 문제가 생겨 산소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어른부터 먼저 쓰고 그다음에 아이를 씌워주라고 한다. 엄마라는 칭호를 가진 여자도 사실은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있고 다른 어떤 사람만큼이나 소중하고 중요한 살아 있는 사람이다.
-20p. (제1장 아이만 낳으면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
몇 년에 걸쳐 이 모든 일을 한 번씩 다 시도해보고 결국 처참히 실패하고 만 뒤, 나는 내 머릿속 좋은 엄마의 정의를 180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즉시 바느질과 공작, 옷과 인테리어 용
품의 잦은 쇼핑, 요가(나는 이 모든 것들을 싫어하면서 마지못해 하고 있었다)를 과감히 그만두었다.
그런 다음, 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과연 우리 집이 매일 얼룩 하나,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아이의 생일에 컵케이크를 서른두 개나 직접 굽고 손으로 장식하는 게 진정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제대로 투자하는 일일까?”“훗날 아이들이 날 어떻게 기억하는 것이 좋을까? 흠잡을 데 없는 외모에 탄력 있는 근육이 잡힌 날씬한 엄마? 아니면 살이 말캉말캉하여 만지기 즐거운 엄마?”
-36p. (제1장 아이만 낳으면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
위아래로 뿜어대는 아이들의 엄마들은 꼬박 밤을 새우고 아침이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변함없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했다. 산처럼 쌓인 시리얼 설거지를 치우고, 바닥에 쏟아진 사과주스를 닦고, 아이 서너 명을 먹인 다음에야 겨우 엄마들 입으로 음식이 한 숟가락 들어간다. 그러고도 하루 종일 아이들의 다툼을 해결해주고 자기 차례가 되면 음식을 준비한다. 예전에 다짐한 대로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결코 잊지 않았다. 하지만 사소한 일들은 그 사이 잊어버렸는지, 가족들이 모두 모여 매일의 일상을 함께 하다 보니 그제야 고달팠던 예전의 나날들이 다시 떠올랐다. 함께한 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이 돌아간 뒤 나는 그 소중했던 시간을 담은 약 2천 장의 사진을 훑어보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아우성을 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쿡쿡 웃어댔다. 환한 빛과 사랑으로 가득한 순간들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새삼 떠오르며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여정인가 하고 생각했다.
-129~130p. (제2장 엄마가 뭐길래)
조금 시간을 빠르게 돌려보면 우리의 작은 천사가 하루에만 벌써 열 번째 사고를 쳐서(참으로 이상하다. 분명 하루 종일 내 발 아래에서만 논 것 같은데 말이다) 아이의 방에 새로 깐 카펫에 온통 로션이 엎질러져 있다. 정말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그런데 한 시간 뒤, 지저분한 것들이 치워지고 (어느 정도) 깨끗이 목욕을 한 아이가 보송보송한 잠옷을 입은 채로 당신의 품에 앉아 동화책을 펼쳐 들고 있다. 당신의 턱을 간질이는 보드라운 머리칼에서는 향긋한 아기 샴푸 냄새가 솔솔 올라오고, 아이는 통통한 손가락으로 동화책 속 그림 이것저것을 가리키며 앳된 목소리로 그것이 무엇인지 더듬더듬 이야기한다. 한 차례 작지만 거친 파도를 이겨낸 것이다.
-138p. (제2장 엄마가 뭐길래)
엄마들은 아이들이 둥지를 떠나 큰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딛을 때까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그 큰 세상이 엄마처럼 관대하고, 자상하고, 상냥하지 않을 때, 아이들의 삶은 특히 힘겨워진다. 그렇다. 안타깝게도 엄마의 따뜻한 날개 아래에서 보내는 삶은 그 기간이 너무 짧다. 아이가 어린 시절은 아이에게나 부모에게나 그야말로 쏜 살처럼 빠르게 흘러간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는 아이들이 더욱 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그 시기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이런 온갖 생각이 머리 뒤편 어딘가에서 흘러가는 와중에도 (엄마의 생각은 한시도 쉴 틈이 없다)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만들어주고,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주로 아이가 말을 하고 나는 들어주었다), 그런 다음에는 내일이면 나아질 거라고 희망적인 말을 들려주었다. 내일 아이와 함께 등교해서 괴로운 매 분, 매 초를 함께해줄 수는 없어도 내 안에 숨겨진 엄마만의 힘이나 영향력 같은 게 존재한다면 그거라도 발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간식, 포옹, 몇 마디 격려의 말 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좋든 싫든 아이는 혼자 힘으로 날아야 할 터였다.
-208p. (제3장 나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