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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연애 복수기 1

사내연애 복수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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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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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년 09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450g | 128*188*19mm
ISBN13 9788969761248
ISBN10 896976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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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천지원수!’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취업 경쟁률을 뚫고 이번에 이곳 코리아 로펌에 업무 비서로 합격한 은설이었다. 그 소식도 꽤나 임팩트가 강했는데 파트너 변호사가 하필이면!
콰콰쾅 히로시마 급 핵폭탄 투하, 이리 쿵, 저리 쿵, 고공 롤러코스터를 탄 듯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통에 은설은 정신적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꿈을 꾸는 것도 아닌데…….”
“꿈은 아니지.”
은설이 입속으로 중얼거리자 건섭이 얄밉게 톡 잡아끊는다.
은설은 눈을 깜박거렸다. 분명히 지금 이곳은 코리아 로펌의 사무실로 분명 지금 자신은 제정신이고 말짱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생긴다.
사실 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니다. 방년 26세로 그녀는 무려 30대 1이라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코리아 로펌에 합격, 장장 한 달간에 걸친 연수를 마치자마자 코리아 로펌의 사무실로 첫 출근하여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될 파트너 변호사와 대면식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곳으로 이동하기 전에 자신의 파트너가 될 변호사에 대해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원래는 서초동 법조거리에서 개인 사무실을 개업하고 있었는데, 승소율 100%로 소문이 자자하여 코리아 로펌에서 삼고초려 끝에 겨우 모시고 왔다는.
그런데 그것이 바로 한건섭, 그냥 이름만 같은 동명이인이 아니라 그녀가 알고 있는 바로 그 ‘한건섭’이라니.
건섭이 그냥 옆집에 살던 오빠였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반갑고 기쁜 일이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문제의 한건섭이 바로 열넷 은설의 첫사랑이었고 바야흐로 12년 전, 은설이 힘겹게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한 돈 거금 100만원을 빌려 서울로 줄행랑친 전 남친이라는 점이다!
‘대학 등록금 필요하다며! 그래서 죽도록 아이스크림 가게 알바 뛰어서 빌려 줬잖아! 어른인 척 원판 못 알아볼 만큼 두꺼운 화장에 변장까지 해서 일했는데! 석 달 치 미리 선불로 땡겨 받은 그 피 같은 돈을! 그런데 그 돈 들고 연락을 뚝 끊어? 그 돈 가지고 대학 잘 나와 사시 패스하고 번듯하게 변호사 되어서 그래, 니는 살림살이 좀 나아졌냐!’
겨우 다섯 살 차이인데도 누구는 잘 나가는 코리아 로펌의 연봉 10억을 훌쩍 넘는 변호사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연봉이 그 1/30도 안 되는 비서라니, 세상 참 불공평하다.
‘위축될 필요는 없어.’
은설은 도도하게 턱을 위로 치켜들었다.
“밥 묵었나?”
걸쭉한 포항 사투리. 그게 12년 만에 만난 그들의 첫인사였다. 은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얼굴은 똥 씹은 표정이었다.
“네 이름이 뭐였더라? 김은설?”
건섭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듯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12년이 지났다고 고새 내 성도 잊어버렸나?’
은설은 아니꼬운 마음에 그를 노려보았다. 한건섭, 그에 대해서라면 넉넉잡고 2박 3일, 아니 10박 11일은 족히 혼자 씹어댈 수 있는데!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나, 고은설이거든요?”
“아, 그래? 이게 얼마만이야? 딱 12년 만이군?”
그녀의 성을 잊어버린 실수는 징검다리마냥 훌쩍 건너뛰고 건섭은 옅은 미소를 지은 얼굴로 반말지거리를 하며 덥석 그녀의 손부터 잡았다. 갑자기 멍해졌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은설은 은근 슬쩍 스킨십을 유도하는 그의 작태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 네.”
은설은 차갑게 대꾸하며 단호하게 뿌리치듯 손을 빼냈다.
은설은 요것 봐라? 하는 것 같은 표정의 건섭을 똑바로 쳐다보며 속으로 빠드득 이를 갈았다. 그 사이 건섭에게 인사하기 위해 몰려든 옆 사무실 변호사들이 밀려와 은설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열네 살에 시작한 실연의 역사만도 장장 11번째에 이른 그녀였다. 되짚어 보면 연애주기가 평균적으로 딱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년밖에 안 된다는 말이 되지만 그때마다 마음을 추스르고 계속해 도전하길 거듭한 그녀다.
14+12=26세. 나이? 먹을 만큼 먹었다. 그 동안 아픔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순진하게 눈에 하트 뿅뿅이나 그리던 열넷의 바보 쪼다 말미잘 바보 같은 고은설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하는 족족 연애는 1년도 안 되어 초전 박살나고, 번번이 꼭 결혼식장까지 팔짱 끼고 갈 것이라고 예상했던 상대들마저 무슨 사정인지 죽도록 사랑한다더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결별을 선언하고 떠나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첫 번째 단추를 잘못 꿰어서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바로 당신 때문에 꼬이기 시작한 거야!’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무경험자에서 유경험자, 다(多)경험자가 되어 버렸다. 끝까지 몸을 불사르며 뒹구는 화끈하고 애틋한 사랑을 해보기라도 했으면 분하지나 않지, 적금 붓듯이 돈과 시간만 투자하고 얻은 것은 없고 남은 것은 나이뿐.
최초 원인 너! 이제 내 손에 죽는다.
은설의 눈에서 화르륵 불길이 솟구쳤다.
‘이건 하늘이 나를 도우심이다.’
은설은 유유자적 옆 사무실 변호사들과 악수를 하며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고 있는 건섭의 널찍한 등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리고 주먹을 힘주어 꼭 그러쥐었다. 지금 은설은 비서의 품격에 맞추어 가슴에 하얀 리본이 달린 블라우스에 회색 바지 정장 차림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마치 킬 빌의 우마 서먼처럼 노란색 이소룡 추리닝을 걸치고 등에는 시퍼런 사무라이 칼을 찬 외로운 검객이었다.
‘아뵤오, 내 너를 단칼에 베어주마.’
그러나 초장에 초칠 일 있는가?
은설은 구겨진 종잇장처럼 일그러지는 표정을 애써 프로페셔널한 비서의 모습으로 추스르며 그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훤칠해진 키에 떡 벌어진 어깨가 남자답다. 12년 전, 그에게 반해 정신 줄 놓고 헤벌레 했던 자신의 모습이 얼핏 눈앞에 어른거리자 은설은 못내 마음이 불편했다.
작고 까무잡잡했던 10여 년 전, 촌년 꼬마 여자애와 세련되고 멋진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인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아무리 천양지차라고 해도.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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