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소득공제
한국 고대사 연구의 자료와 해석

한국 고대사 연구의 자료와 해석

: 노태돈 교수 정년기념논총 2

[ 양장 ]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베스트
역사학 이론/비평 top20 12주
정가
45,000
판매가
42,750 (5% 할인)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지역변경
  • 배송비 : 무료 ?
eBook이 출간되면 알려드립니다. eBook 출간 알림 신청
  •  해외배송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9월 18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800쪽 | 1256g | 168*230*43mm
ISBN13 9788958287889
ISBN10 895828788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노태돈
1949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하버드대학교 옌칭연구소 객원 연구원, 한국고대사학회 회장,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방문 교수, 연변대학교 겸임 교수, 한국사연구회 회장,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이며, 국사편찬위원회 국사편찬위원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사를 통해 본 우리와 세계에 대한 인식』, 『고구려사 연구』, 『예빈도에 보인 고구려』, 『한국고대사의 이론과 쟁점』, 『삼국통일전쟁사』, 『한국 고대사』 등이 있다.

저자 : 노태돈 교수 정년기념논총 간행위원회
| 필자 | (본문 수록순)


-2권-

나희라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설화와 의례의 해석과 역사 읽기」

이강래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
「고구려 멸망론의 설화적 파생」

이상훈 경북대학교 역사교육과 강사
「검모잠의 최초 거병지 검토」

전덕재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삼국사기』 신라본기 초기 기록의 원전原典과 활용」

이노우에 나오키(井上直樹) 교토부립대학교 문학부 역사학과 교수
「6세기 후반 신라의 대외 관계와 대왜(對倭) 교섭」
(6世紀後半の新羅の?外?係と?倭外交)

정병삼 숙명여자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구법승과 신라 불교」

남동신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혜초(慧超)와 『왕오천축국전』의 연구」
신동하 동덕여자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해동고승전』-사료의 활용 현황」

마크 바잉턴(Mark E. Byington)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상임연구원
「기원전 45년의 낙랑군 호구부와 패수의 위치 비정」
(The Lelang Census of 45 BC and the Identification of the P’ae River)

임기환 서울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광개토왕비의 건립 과정 및 비문 구성에 대한 재검토」

조나단 베스트(Jonathan W. Best) 웨즐리언대학교 미술 및 미술사학과 명예교수
「왕자 복호(卜好)와 「광개토왕릉비」 명문(銘文): 초기 고구려-신라 관계에 대한 약간의 해석」
(Prince Pokho and the Kwanggaet’o Stele Inscription: A Small Elucidation of Early Kogury-Silla Relations)

김수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강사
「당으로 이주한 고구려 포로와 지배층에 대한 문헌과 묘지명의 기록」

윤용구 인천도시공사 문화재 담당
「『진서』 동이(東夷) 조공 기사(朝貢記事)의 재검토」

강종훈 대구가톨릭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양직공도의 사료적 가치와 독법」

주보돈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백제사 관련 신출토(新出土) 자료의 음미」

이문기 경북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여신라왕김중희서(與新羅王金重熙書)」로 본 헌덕왕의 즉위 사정」

강현숙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환런 왕장러우(望江樓) 적석총으로 본 주몽설화」

강진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강사
「평양도읍기 고구려 왕릉의 선정과 묘주(墓主) 비정」

조영현 대동문화재연구원 원장
「지안(集安) 장군총의 분구에 관한 몇 가지 검토」

박찬규·정경일 연변대학교 역사학부 교수·연변대학교 역사학부 강사
「새롭게 발굴된 호남리 18호 벽화무덤에 대하여」

전호태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고구려 유적·유물로 본 한국 문화의 원형」

최종택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5~6세기 고구려 남진 경영의 고고학적 증거」

이한상 대전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발굴에서 해석까지: 정지산 유적의 사례」

이병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6세기 백제 기와를 보는 시각」

김세기 대구한의대학교 관광레저학과 교수
「가야 제국(諸國)의 존재 형태와 부산 연산동 고분군의 정치적 성격: 묘제와 출토 유물을 중 심으로」

김복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국사학과 교수
「신라 왕릉과 경주 괘릉(掛陵)」

정영진 연변대학교 발해사연구소 교수
「부거리 동경용원부설에 대한 재검토」

김종일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독일 바이에른 지역 신석기 말기 벨 비이커 문화의 어린이 무덤과 사회적 정체성」

| 정년기념논총 간행위원회 | (가나다순)

위원장
신동하(동덕여대)

간행위원
강봉룡(목포대), 강종훈(대구가톨릭대), 고경석(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 권오영(한신대),
김기흥(건국대), 김영심(가천대), 김영하(성균관대), 김재홍(국민대), 김종일(서울대),
김창석(강원대), 김태식(홍익대), 나희라(경남과학기술대), 남동신(서울대), 서영대(인하대),
서의식(서울대), 송기호(서울대), 송호정(한국교원대), 여호규(한국외국어대), 오영찬(이화여대),
윤선태(동국대), 이우태(서울시립대), 이한상(대전대), 임기환(서울교대), 전덕재(단국대),
전호태(울산대), 주보돈(경북대), 하일식(연세대)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사금갑 설화에는 왕의 외유(外遊)와 동물들의 예지적 행동, 까마귀 내지 물에서 등장한 노인의 암시, 화살 쏘기, 왕의 목숨 구하기 등 많은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 있는데,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의미를 이해하기가 무척 어려운 설화다. 그런데 이 설화는 그 기원이나 유래를 설명하면서 ‘오기일(烏忌
日)’이라는 의례와 연관을 시키고 있다. 이 의례의 의미를 여러 사회의 민족지와 민속자료들과 비교 검토해보면, 이것이 정월 대보름에 세계의 창조와 생명력의 갱신을 통해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_ ‘설화와 의례의 해석과 역사 읽기’ 29~30쪽

구법승들은 신라의 불교가 발전하는 데 기여했다. 신라 불교는 전래 초기에 주술적인 요소를 많이 가졌지만, 불교가 보편적인 신앙으로 인식되고 불교 사상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자 불교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이해가 필요했다. 이에 신라 왕실은 정책적으로 구법승을 중국에 보내 선진 불교를 배워 오게 했는데, 이들 구법승이 본국에 돌아올 때는 경전, 불상, 불사리 등을 가져와 신라 문화의 진전에 기여했다. 무엇보다 구법승들이 기여한 분야는 불교 사상의 발전이다. 구법승들이 익혀 온 새로운 사상의 흐름과 새로 소개된 불전(佛典)의 전수는 신라 승려들이 중국에 가지 않고도 가장 높은 수준의 불교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고, 이 바탕 위에서 독자적인 신라 불교 사상을 전개할 수 있었다. _ ‘구법승과 신라 불교’ 161~162쪽

역사 지리의 유용성은 아마도 한반도 최초의 정치체로 알려진 고조선과 한(漢) 무제(武帝)가 기원전 108년 고조선을 정복하고 설치한 낙랑군(樂浪郡)의 사례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남아 있는 사료 중에는 고조선과 낙랑군의 특정한 장소들과 지형적 특징들에 관한 문헌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한(前漢) 초의 고조선과 낙랑군의 경계를 형성한 패수(浿水)에 관한 문헌들이다. 이 패수가 지금의 어떤 강을 가리키는지 밝히는 것은 고조선과 랴오둥(遼東)의 크기를 결정하는 데 확실히 유용할지도 모른다. _ ‘기원전 45년의 낙랑군 호구부와 패수의 위치 비정’ 226쪽

12세기에 편찬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신라의 나물왕(奈勿王, 재위 356~402)은 392년에 김씨 왕족의 방계에 속한 젊은 왕자인 실성(實聖)을 고구려 조정에 인질로 보냈다. 그러나 인질로 선택된 인물의 이름(실성) 및 인질을 보낸 시점(392)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사에 오류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인접 시기의 자료인 414년에 건립된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의 명문 및 13세기의 문헌인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서 확인한 정보?이 존재한다. _ ‘왕자 복호(卜好)와
「광개토왕릉비」 명문(銘文)’ 270쪽

〈양직공도(梁職貢圖)〉는 중국 남조의 양나라(502~557)에 조공을 한 주변 국가 사신들의 모습을 그리고, 그 나라에 관한 설명을 제기(題記)의 형식으로 덧붙인 두루마리 그림이다. 양 무제의 아들로 훗날 황제(원제元帝)의 자리에 오르는 소역(蕭繹)이 형주자사(荊州刺史)로 재임 중이던 520~530년대에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남아 전해지는 것은 소역이 직접 그린 원본은 아니고 북송 시기인 1077년경에 모사된 것으로, 1960년대 초에 중국의 난징박물원에서 발견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_ ‘양직공도의 사료적 가치와 독법’ 352~353쪽

환런(桓仁) 왕장러우(望江樓) 적석총에서 착장용 개인 장신구인 금제 귀걸이나 수레 부속구의 하나인 차관이 출토되었고, 그 유물이 푸예의 위수 라오허선 중층 분묘에서 출토된 것과 특징을 같이한다는 점은 고구려와 부여의 관련을 보여주는 중요한 물질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부여에서 출자한 주몽 집단이 환런 일대의 선주 집단의 묘제를 채용했다고 해도 당시의 위신재로 볼 수 있는 착장용 개인 금공 장신구나 수레 부속구의 부장으로부터 주몽설화가 갖는 사실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고구려와 부여의 관련은 이후의 물질문화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관찰된다. _ ‘환런 왕장러우 적석총(望江樓)으로 본 주몽설화’ 471쪽

기왕에 평양도읍기의 고구려 왕릉으로 여겨졌던 고분들 중에 실제 왕릉으로 여겨지는 개체들은 전동명왕릉, 경신리 1호분, 호남리 사신총, 토포리 대총, 강서대묘, 강서중묘 등이다. 각 고분들의 묘주를 비정하자면 전동명왕릉은 장수왕, 경신리 1호분은 문자명왕, 토포리 대총은 안원왕, 호남리 사신총은 양원왕, 강서대묘는 평원왕, 강서중묘는 영양왕으로 추정된다. 진파리 7호분과 강서소묘의 경우 각기 고추대가 조다와 보장왕의 부친 대양왕이 묻혔을 것이다. _ ‘평양도읍기 고구려 왕릉의 선정과 묘주(墓主) 비정’ 493~494쪽

호남리 18호 벽화무덤은 안길과 주검칸으로 이루어진 지상식 외칸 석실봉토분이며, 무덤에는 사신 그림과 함께 넝쿨무늬, 둥근무늬, 별 그림, 고리무늬, 인동무늬, 꽃모양무늬 등이 그려져 있다. _ ‘새롭게 발굴된 호남리 18호 벽화무덤에 대하여’ 547쪽

백제는 무령왕 대와 성왕 대에 양 무제의 지원과 협력 속에 적극적으로 문물을 수입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치적 안정과 문화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백제는 이렇게 습득한 선진 문물을 주변의 신라나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고 그들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한 자산으로 활용했다. 그런 점에서 6세기 대 신라와 일본의 불교 수용 및 정착 과정에서 백제가 수행한 역할은 매우 주체적이며, 백제적인 불교문화를 주변 국가에 전수했다는 측면에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백제는 단순히 중국 문화의 전달자나 경유지가 아니라 신라나 일본의 초기 사원을 건설하는 데 기술자를 파견해 지원하는 등 동아시아 불교문화의 확산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_ ‘6세기 백제 기와를 보는 시각’ 637쪽

괘릉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동경잡기(東京雜記)』에 나오는 “신증(新增) 괘릉은 부의 동쪽 35리에 있다. 어떤 왕의 능인지 알 수 없다. 세속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수중(水中)에서 장례를 지냈기 때문에 돌 위에 관을 걸어놓은 다음, 여기에 흙을 쌓아서 능을 만들었고, 그것으로 인해 괘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석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라는 기록이다. 즉 괘릉은 부 동쪽 35리에 있는데, 어느 왕릉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속설에 전하기를, 물속에 장사를 치르게 되자 돌 위에다 관을 걸어놓고 흙을 쌓아 능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생겼다면서 석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괘릉이라는 명칭은 나오는데 누구의 능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한 것이다. _ ‘신라 왕릉과 경주 괘릉(掛陵)’ 705쪽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회원리뷰 (0건) 회원리뷰 이동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0건) 한줄평 이동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배송 구분 예스24 배송
  •  배송비 : 무료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반품/교환 안내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반품/교환 방법
  •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42,75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