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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월 합본 (전2권)
eBook

효월 합본 (전2권)

[ EPUB ]
이서윤 | 가하 | 2014년 05월 0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0 리뷰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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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년 05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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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6.22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30.6만자, 약 9.9만 단어, A4 약 192쪽?
ISBN13 979115682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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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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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을 따라 폭포 밖으로 향하는 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니, 뛰고 있었다. 사각사각 밟히는 풀꽃의 소리. 나무와 나무 사이, 이름 모를 붉고 푸른 풀꽃 위에 내렸던 밤이슬이 옷자락을 적셨다. 숨이 목 끝에 찰 정도로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그녀가 수령 오래된 덩치 큰 나무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헉!
누군가의 억센 손길에 어깨가 잡혀 뒤돌아섰다. 쫓아오는 줄도 모를 만큼 기척도 내지 않던 자. 홱 돌아선 율의 시야에 무정한 사내의 얼굴이 들어왔다. 그동안 자신의 기를 누르고 있었던가. 아니면 소리 없이 다가온 것인가. 상대를 알아본 율의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혼란스런 시선. 율은 그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린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언가 입을 열려던 천휘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어딜 가는 거야.”
천휘의 목소리가 낮게 흘렀다. 갑자기 나타난 천휘가 당황스러워 율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왜 울어.”
율의 어깨를 끌어당긴 천휘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저도 모르게 두 눈을 꾹 감았다 뜬 율의 눈빛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슨 소리야.”
눈동자의 물기를 순식간에 지운 율이 차갑게 물었다. 하지만 천휘는 감정을 감추는 것이 익숙한 이의 본모습을 이미 본 후이다. 율의 어깨에 놓인 손에 힘을 줘 그녀를 나무둥치로 밀었다. 어금니를 악문 율의 얼굴을 한참동안 뚫어질 듯 내려다보았다. 이내 그의 입가에 슬쩍 서글픈 미소가 서렸다.
“네 마음 너도 모르고 있지?”
천휘가 물었다.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율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의 말대로 스스로의 마음을 알 수 없다. 여인의 옷을 입었다 하여, 여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진대, 이리 불같이 이글대는 마음은…….
“강샘이라 하지.”
문득 달빛에 흐른 것은 미운 사내의 목소리. 율의 눈빛이 멈칫거렸다.
“그대도 모르는 그대의 마음.”
율의 눈에 힘이 들어가 커지는 것을 천휘는 가늘어진 눈매로 내려다보았다. 조금은 안타깝고, 그보다 더 크게는 걷잡을 수 없이 뛰는 마음으로.
“나는 여인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사내지만, 네게는 특별히 설명이라도 해야겠다. 이 둔한 아가씨, 이렇게 눈치를 못 채니.”
놀리고 있어.
율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고요히 고여 있던 그녀의 눈빛이 흔들린 순간, 어느새 스륵 뺀 검 끝이 천휘의 목을 향했다. 숨조차 멎은 순간, 천휘도 율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달빛에 젖은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날 희롱한 벌이다.”
“희롱?”
천휘의 입술이 비틀렸다. 눈빛이 날카로워지고, 어조가 분명해졌다.
“희롱한 적 없다. 차라리 네 눈앞에서 다른 여인을 희롱한 벌을 받지. 아니면, 널 잠시나마 혼자 둔 벌.”
천휘의 표정이 살짝 금이 가듯 일그러졌다. 바르르 떨고 있는 율의 검 끝을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검부터 들이미는 고슴도치 같은 성격은 어쩔 수 없군.”
천휘가 빙긋 웃었다. 율의 검 끝에 점점 더 힘이 실려 그의 살 위로 붉은 핏방울이 돋았다. 조금만 힘을 주면, 그의 목이 뚫릴지도 모른다.
“우리의 비무에 다섯 합이 남긴 했지만, 지금은 힘들어. 내가 방금 힘을 좀 써서…….”
휙, 채챙!
천휘가 말을 끝내지도 못한 때였다. 한 바퀴 몸을 돌려 그의 허리를 베어 들어온 율의 검을 천휘가 피했다. 탄력 좋은 공처럼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현강검을 뽑아 가까스로 율의 검을 막았다. 그녀의 검은 내공이 실리진 않았지만, 매섭도록 재빨랐다.
“그대가 싫다.”
“아하, 어쩌나. 나는 그대가 좋아.”
숨결이 닿을 만큼 지근거리. 검이 맞닿은 것도 모자라 이마가 마주 닿을 듯 가깝다. 되뇌듯 율이 내뱉었다. 화륵 타오른 그녀의 눈빛을 천휘는 여유를 갖고 바라보았다.
“그만하는 게 좋겠어. 오늘은 그대의 몸과 마음 모두 힘들었을 텐데, 말이지.”
“움직이지 마!”
율이 짧은 비명처럼 지른 소리와 상관없이 천휘는 검지와 중지로 그녀의 검신을 잡았다. 여전히 율의 검 끝이 닿은 곳에서는 가느다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곳을 통해 저릿하게 전해오는 뜨거운 열기는 어쩌면 실체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네가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
불꽃처럼 일렁이는 열망을 담은 눈빛. 하지만 그와 달리 천휘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검을 든 율의 손에서는 점점 더 힘이 빠져나가 그가 검신을 살짝 걷어내자 그의 힘대로 밀려나갔다. 점차 차오르는 거친 숨결로 인해, 율의 어깨가 잔잔히 흔들리는 것을 천휘는 비교적 냉정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넌 내가 누군지 모르잖아.”
“그건 그대도 마찬가지겠지.”
“쫓기는 몸이야. 내게 여유 따위 없어.”
목소리의 힘은 빠졌어도 여전히 눈빛이 살아 있었다. 흥미로운 눈빛으로 천휘가 싱긋 웃었다.
“좋아. 네 생각은 알았지만, 나는 상관없어. 이리 누군가에게 집중해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그대는 쫓기고 있으니 태원으로 가는 길이 험난한 건 명약관화. 날 잘 이용해봐. 그대라면 충분히 이용당해줄 수 있어.”
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마음을 흔들고, 그의 제안 아닌 제안에 마음이 흔들린다. 율은 이런 일에 흔들리고 있는 자신이 싫었다.
“나는 네가 이러는 것이 싫다.”
또 다른 의미로 그녀를 미치게 만들고 있다.
달빛을 받은 율의 눈망울이 바람 앞 촛불처럼 흔들린 순간, 그녀는 툭 검을 내렸다. 휙, 몸을 돌리려는 것을 거의 동시에 천휘가 그녀의 어깨를 돌려세웠다. 땅 위에 검을 던져놓고, 그녀의 허리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흡! 율이 숨을 들이켤 틈도 없이, 단번에 제 품 안에 쓸어 넣고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움켜쥐었다. 돌리려 하는 시선을 허락지 않았다. 장난기가 사라진 천휘의 눈빛이 밤하늘처럼 짙어졌다.
“네가 두려운 것은 내가 아닌 네 자신이지?”
율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속을 들여다보듯 서늘한 천휘의 시선을 견딜 수 없었다.
“두려운 게 아니야. 싫다고 했어.”
“아니.”
천휘가 설핏 웃었다.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율의 생각이 틀리다고 꼬집어 말했다.
“나만 믿고 따라와.”
“주제넘은 소리 하지 마.”
“말해봐. 나, 기다렸지? 혼자 두어 야속했지?”
천휘의 입술이 빙긋 호선을 그렸다. 율의 심장이 쿵 내려앉고 낯빛이 질려갔다.
“그런 적 없어.”
끝이 보이는 부인. 이마와 이마가 닿아 천휘의 숨결은 이미 그녀의 코끝까지 와 닿았고, 맞닿은 가슴에서 들리는 심장소리는 당장이라도 터질 듯 크게 울렸다.
“고집쟁이.”
그의 손바닥이 천천히 율의 몸을 쓸었다. 조심스레 전해진 기운이 점차 차가워지고 있는 율의 몸을 녹였다. 그녀의 심장까지 슬그머니 닿아 표정이 흔들렸다.
“천향군주한테나 가봐.”
무심히 말하려 했는데, 그 말에 사심이 섞였나 보다. 불쑥 터진 그 말에 천휘가 쿡 웃었다. 귀엽고 예쁘다는 듯 그녀의 볼을 살짝 잡았다. 당황한 율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지금껏 의식하고 있었군.”
“누, 누가!”
버럭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에 천휘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사내의 마음을 진정 모르는군. 하지 말라면 더욱 하고 싶은 것이 사내지만, 하기 싫은 것은 지금 죽는다 해도 하고 싶진 않아. 가라 하지만 가고 싶지 않단 말이지.”
천휘의 두 눈이 웃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 위에 올린 손끝으로 보드라운 볼을 슬쩍 쓸었다. 솜털이 오스스 일어설 만큼 감각적이고 달콤한 전율. 한없이 스스로를 내맡기고 싶은 그런 나약함. 등줄기가 저릿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순간 율의 몸이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었다.
“그, 그만해!”
율이 움찔거릴수록 천휘의 손길은 깊어졌다. 눈썹을, 차라리 감은 두 눈을, 애탄 숨결이 희미하게 쏟아지는 입술을 쓰다듬었다. 조금씩 율이 호흡을 놓치기 시작했다. 숨결이 가빠져갔다.
“아휘!”
“천휘.”
천휘가 그제껏 그녀가 알고 있던 자신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그게 내 완전한 이름이다.”
천휘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율을 더욱 힘껏 안아주었다. 그럴수록 빠져나가려 하는 그녀를 두 팔로 옭아맸다.
“다가오지 마! 이름 따위 알고 싶지 않아! 난 네게 줄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단 말이다! 네게……. 흡!”
그때였다. 천휘의 입술이 율의 것을 거칠게 막았다.
강렬히 뺏긴 것은 입술이 아닌 마음. 한꺼번에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날것처럼 생생한 이 사내. 심장을 뛰게 한다. 그리고 숨 쉬게 한다. 숨기고 있던 본능을 자꾸만 일깨운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처지도 잊은 채 욕심내고 싶은 것이다.
주륵. 율의 눈물이 흘렀다.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거세게 몰아치던 천휘의 입맞춤이 조금씩 부드러워질 때, 뜨거운 기운이 맞닿은 입술 새로 달싹거리며 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 마. 나는……, 내 힘으로 내 나라로……, 돌아가야 해.”
물기 묻은 볼을 어루만지고, 시선이 닿은 곳마다 천휘의 입술이 닿았다. 이런 곳에 이런 감각이 숨어 있던가. 밤공기에 식은 살갗 위로 그의 뜨겁고도 부드러운 입술이 닿을 때마다, 율의 몸은 경련이라도 하듯 파닥거렸다. 자꾸만 그를 당겨 안고 싶었다. 입 맞추고 싶었다. 털끝만 하게 시작된 욕심이 이제는 그녀의 전부를 채웠다.
“같이 가. 그럼 되지?”
군더더기 없는 한마디. 그는 그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세력가의 딸로 태어나 가난(家難)을 당한 거라 이 사내는 믿고 있다. 그가 앞장서 데려다 주마, 그리 말한다.
“하…….”
천휘는 대답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그녀의 얼굴을 다정히 어루만지다 또다시 입맞춤했다. 다정하게도, 참을 수 없을 만큼 격렬하게도.
깊게 들어온 강인한 혀가 그녀의 모든 것을 제게로 끌어당기듯 빨아들였다. 서툴고 수줍어 주저하는 율을 단숨에 휘어잡았다. 천휘의 단단한 팔이, 가슴이 굳게 안고 있음에도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아 율은 저도 모르게 그의 목을 그러안았다.
후. 호흡을 위해 살짝 떨어진 입술. 다디단 당과를 주었다 뺏긴 것처럼, 천휘는 율의 마음을 조급하게 했다. 어느새 깊숙이 들어와 마음까지 휘젓고 있다.
넌 날 평범한 여인으로 만들고 있어. 이래도 되는 걸까. 아니다. 이러고 싶다. 아주 잠시만……, 잠시 동안이라도…….
두려움은 잠시. 유혹은 강했다. 자꾸만 스스로를 잊고 있다. 고된 몸 기대고 싶어진다. 이 사내는, 천휘라 스스로 이름을 밝힌 사내는 두려운 자신의 마음을 점점 더 백지로 만든다.
“율아…….”
달빛 아래, 뒤로 밀리다 갈 곳 없는 그녀의 몸이 나무에 닿았다. 피가 뜨거워지고 어쩔 수 없이 거칠어질 것 같아 천휘는 천천히 입맞춤을 멈춰갔다.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던 손길도 차츰 잦아들었다. 아쉬움에, 안타까움에 깊은 한숨이 넘어올 것 같다. 힘이 든 인내, 사내의 욕심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치솟았지만, 어느새 그에게 매달린 그녀의 뜻도 알고 있지만, 이런 곳에서 안고 싶지는 않다. 온전히 소유하고 싶은 화염 같은 욕망과 달리 또한 아껴주고 싶다. 귀애하고 싶다. 애타는 손끝이 여인의 몸을 쓸어내렸다.
“넌…….”
천휘는 오래도록 품 안의 여인을 바라봤다.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몸을 따라 흘러내렸다. 자태가 자신의 모후를 닮은 듯, 여리면서도 또 다르다. 이 여인의 무엇이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지, 규정할 수 없다.
태원으로 가면……, 나를 머뭇거리게 하던 모든 것을 훌훌 놓을 거다. 그대의 시름을 함께할 수 있으니, 이제 홀로 고통 받지 마.
“살벌하고 고통스럽던 치료 중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기에 독한 여인인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울보였다. 눈물이 모두 어디에 담겼었나.”
천휘의 입술이 또다시 호선을 그렸다.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길고 깊게 입술을 맞췄다. 달콤함과 저릿함에 취해 한참동안 기다려도 마르지 않는 율의 눈물을 제 손길로 닦아내고 천휘는 그녀를 품에 안아 등을 쓰다듬었다.
그대의 마음에는 무엇이 쌓인 것이니.
어리고 귀한 막냇동생 대하듯 천휘가 율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가에 매달린 이슬을 지우고 입술 위에 가볍게 입맞춤했다. 심장이 오랜만에 제자리를 찾은 듯 편안해지고 있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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