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소득공제 EPUB
[합본] 청호 (개정판) (전2권/완결)
eBook

[합본] 청호 (개정판) (전2권/완결)

[ EPUB ]
김신형 | 가하 | 2014년 02월 18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7.5 리뷰 43건 | 판매지수 24
정가
7,000
판매가
6,300 (10% 할인)
추가혜택
쿠폰받기
구매 시 참고사항
  • 2020.4.1 이후 구매 도서 크레마터치에서 이용 불가
{ Html.RenderPartial("Sections/BaseInfoSection/DeliveryInfo", Model); }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2월 18일
이용안내 ?
  •  배송 없이 구매 후 바로 읽기
  •  이용기간 제한없음
  •  TTS 불가능
  •  저작권 보호를 위해 인쇄 기능 제공 안함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4.00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36만자, 약 11.8만 단어, A4 약 226쪽?
ISBN13 9788966479948
KC인증

이 상품의 태그

보스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보스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1,000 (0%)

'보스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상세페이지 이동

노 모럴 트라이앵글

노 모럴 트라이앵글

3,200 (0%)

'노 모럴 트라이앵글' 상세페이지 이동

[세트] 더스티 멜로(Dusty Melo) (총2권/완결)

[세트] 더스티 멜로(Dusty Melo) (총2권/완결)

9,000 (0%)

'[세트] 더스티 멜로(Dusty Melo) (총2권/완결)' 상세페이지 이동

이제 와 후회해 봤자

이제 와 후회해 봤자

3,100 (0%)

'이제 와 후회해 봤자' 상세페이지 이동

[세트] 남편의 X집 암캐 (총2권/완결)

[세트] 남편의 X집 암캐 (총2권/완결)

2,300 (0%)

'[세트] 남편의 X집 암캐 (총2권/완결)' 상세페이지 이동

쓰레기들 공용 변기

쓰레기들 공용 변기

1,200 (0%)

'쓰레기들 공용 변기' 상세페이지 이동

남편의 X집 암캐

남편의 X집 암캐

1,000 (0%)

'남편의 X집 암캐' 상세페이지 이동

윈터 로망스

윈터 로망스

1,200 (0%)

'윈터 로망스' 상세페이지 이동

더스티 멜로(Dusty Melo)

더스티 멜로(Dusty Melo)

4,500 (0%)

'더스티 멜로(Dusty Melo)' 상세페이지 이동

덮밥중독

덮밥중독

2,970 (10%)

'덮밥중독' 상세페이지 이동

북부 대공

북부 대공

4,000 (0%)

'북부 대공' 상세페이지 이동

야외 노출 중에 전남친의 형을 만나면

야외 노출 중에 전남친의 형을 만나면

1,000 (0%)

'야외 노출 중에 전남친의 형을 만나면' 상세페이지 이동

하와이 모텔

하와이 모텔

3,900 (0%)

'하와이 모텔' 상세페이지 이동

강압적 플레이: 치한

강압적 플레이: 치한

1,000 (0%)

'강압적 플레이: 치한' 상세페이지 이동

페일 블루 아이즈

페일 블루 아이즈

3,150 (0%)

'페일 블루 아이즈' 상세페이지 이동

셰이크 봄봄

셰이크 봄봄

3,800 (0%)

'셰이크 봄봄' 상세페이지 이동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1,000 (0%)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상세페이지 이동

적의 계절

적의 계절

2,800 (0%)

'적의 계절' 상세페이지 이동

[세트] 골든 애로우 (외전 포함) (총5권/완결)

[세트] 골든 애로우 (외전 포함) (총5권/완결)

16,200 (0%)

'[세트] 골든 애로우 (외전 포함) (총5권/완결)' 상세페이지 이동

남편의 X집 암캐 2권 (완결)

남편의 X집 암캐 2권 (완결)

1,000 (0%)

'남편의 X집 암캐 2권 (완결)' 상세페이지 이동

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2008년 12월 모스크바.
붉은 색깔의 부활의 문을 통해 들어서자 붉은 광장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붉은 광장에서부터 보이는 크램린, 바실리 성당, 굼 백화점 등을 무심하게 훑어보던 검은 눈동자가 잠시 회상에 잠겼다. 3년 전 처음 모스크바에 왔을 때도 이런 날씨였다. 그때는 그저 자신이 꿈꿔오던 나라에 왔다는 것만으로 흥분해서 이런 추위를 느낄 새도 없었다. 그때 보았던 풍경을 그대로 곱씹듯 보고 있자니 어느새 3년 전의 남수아가 된 것만 같아 쓴웃음이 나왔다.
한국을 떠나면서 가지고 온 것은 목에 두르고 있는 목도리와 집에서 대충 걸치고 나온 낡은 코트, 베이지색 면바지, 흰 니트 스웨터, 그리고 물 빠진 스니커즈 운동화가 다였다. 러시아가 왜 혹한의 나라라고 불리는지 알고 있었으면서 무작정 떠나면서 여행준비를 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던 한국에서의 자신이 생각나자 수아가 상념을 집어던지고 코트를 단단히 여몄다.
12월 모스크바의 바람은 살인적일 정도로 추워서 캐리어를 끌고 가던 수아는 몇 번이나 멈춰 서서 새빨갛게 터진 손등을 쓸어야 했다.
살을 한 점 한 점 날카로운 칼로 저미는 것 같은 바람에 넓은 붉은 광장 안에도 돌아다니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가끔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크램린의 망루가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만이 보였으나 그것이 사람의 형상인지 거대한 옷이라는 포대기에 쌓인 눈사람인지 알 수 없을 정도라 자신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지금 이 상황에도 웃음이 나오는 걸 보면 아직은 살 만한가 보다, 남수아.
더 이상 지체하기에는 몸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캐리어를 다시 잡는 손은 이미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였다. 수아는 오는 길에 봐두었던 메트로 폴 호텔로 지체 없이 걸음을 옮겼다. 돌돌돌 굴러가는 캐리어의 바퀴소리를 얼어버린 귀로 들으며 얼마를 걸었을까. 눈앞에 보이는 모스크바에서 몇 개 안된다고 알려진 아르누보 양식의 거대한 건축물을 보면서 목적지에 다 왔다는 생각에 기나긴 한숨이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Excuse me.”
어깨를 부드럽게 잡는 손과 나직한 바리톤의 목소리에 호텔을 올려다보고 있던 수아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Sorry.”
곧 눈이라도 한바탕 쏟아부을 것 같은 잿빛 하늘에 어울리지 않는 남자의 연한 하늘빛 눈동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자리에서 비키지 않는 수아의 시선을 사로잡은 남자는 그녀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장신의 유럽인이었다. 햇빛이 나는 날이 얼마 없는 우중충한 모스크바와는 전혀 거리가 동떨어진 사람처럼 허리까지 내려오는 블론드의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리해 뒤로 묶은 남자의 머리가 불어오는 겨울바람에 잠시 휘날렸다가 이내 제자리를 찾았다.
수아의 시선이 눈에서 머리카락으로 옮겨가는 것을 그가 느릿한 눈길로 바라보자 그제야 자신이 이곳이 어딘지, 이 남자가 왜 앞에 서 있는지 깨달은 그녀가 서둘러 캐리어와 함께 호텔 로비의 정문에서 벗어났다.
“The winter in Russia is really cold. (러시아의 겨울은 아주 많이 추워요.)”
호텔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수아의 행동거지를 지켜 본 남자가 수아에게 다가와 자신의 손에 낀 가죽 장갑을 벗어 그녀에게 건넸다. 남자의 나른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면서 지금 바로 눈을 감는다면 잠이 쏟아질 것만 같아 그것을 받을 생각도 못한 채 수아가 머뭇거리자 남자가 새빨갛게 부어오른 그녀의 손등을 잡았다.
그 순간 남자의 목소리로 나른해진 수아의 감각이 감전된 것마냥 살아났다.
지금 체감하는 추위는 장난이라고 느낄 만큼 소름끼칠 정도로 서늘한 느낌. 마치 칼날보다 더 잘 벼려진 육식 동물의 날카로운 이빨이 목덜미에 닿아 있는 것만 같아 수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몸의 솜털 하나까지도 바르르 떨릴 정도로 온몸이 수아에게 외쳤다.
이 남자에게서 당장 떨어지라고!
타악!
손에 쥐어진 장갑과 함께 남자의 손을 쳐내며 수아가 뒤로 물러났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남자도 놀란 듯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는 모습이 마치 잘 조각된 조각이 움직이는 것 같아 수아는 한 발 더 물러섰다.
모스크바의 혹한의 겨울은 남자에게서 느낀 그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위험한 것과 위험하지 않은 것은 재빠르게 알아차렸던 수아에게 눈앞의 남자는 ‘위험한 것’으로 단번에 분류되었다.
허리를 숙여 자신의 장갑을 주워 드는 남자의 행동은 모두 느릿해 보였으나 수아는 그것이 겁먹은 자신이 지나치게 남자를 의식해 그렇게 보이고 있는 것임을 알았다. 새하얗고 긴 손가락이 장갑을 주워 들면서 친절하던 남자의 눈이 날카로움을 담고 탐색하듯 수아의 전신을 훑어왔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당장 이 자리를 떠나라고 온몸의 감각이 외치고 있었는데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남자와 자신 사이의 시간만이 멈춰버린 듯, 그의 뒤로 바쁘게 로비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건만 도움을 요청하려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You do know me. (나를 아는군요.)”
남자는 물음도 아닌 확신을 가지고 수아에게 말했다. 맹세코 수아는 이 남자를 모른다고 말할 수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입술 대신 고개를 저어 아니라 의사표현을 하려 했으나 남자의 눈빛에 사로잡혀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누가 좀 제발 도와줘요. 그렇게 자기 갈 길들만 가지 말고 누가 도와달란 말야!
“Амур, не оставается немного назначенном временём. (아무르, 약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막 수아에게 다가오려던 남자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의 존재감이 워낙 강해 그에게 일행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수아는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자마자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잠깐 자신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본 남자의 눈빛이 다시 수아를 향했을 때 겁에 질린 그녀의 눈동자를 보고 남자가 비틀어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Talk to you later. (다시 뵙도록 하죠.)”
뒤따르는 이들과 함께 호텔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멍청하게 바라보며 수아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멍하게 서 있었다.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수아에게 호텔의 도어맨이 다가와 어색한 영어로 들어가지 않을 거냐고 물을 때까지 넋을 놓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옮길까 생각했지만, 이내 그저 잠깐 대화만 나누었던 남자를 피한다는 것도 우스워 수아는 호텔 로비로 들어갔다. 어차피 자신은 체크인을 하고 방 밖으로 나갈 생각은 체크아웃 후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자 약간의 자신감이 붙은 것은 사실이었다.
위험한 남자.
그리고 살아오면서 보았던 어떤 남자보다 아름답고 강해 보였던 남자였다. 그것이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웠던 것이 탈이었지만.
프런트에서 싱글룸의 키를 받아 든 수아의 짐을 직원이 옮겨주려 다가왔으나 그녀는 손을 내밀어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로비에만 들어왔을 뿐인데 바깥과의 천지차인 기온이 몸 안에 있는 피를 빠르게 돌게 하자 언 몸이 녹으며 온통 저릿저릿한 느낌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이라 쓰여 있는 버튼을 누르고 멍하게 거울 속에 보이는 자신을 마주하고 서 있었다. 그녀의 기억은 그것이 끝이었다.
눈을 떴을 때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는 몰라도 방 안에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캐리어만을 던져두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았던 것밖에 생각나지 않자 문단속까지 했나 싶어 방문으로 다가가 살펴보니 문단속까지 완벽히 되어 있었다.
“피곤하긴 피곤했나 보구나.”
수아는 아직도 수마에 빠져 있는 정신을 깨우기 위해 침대 옆에 놓인 컵을 들고 욕실로 가서 찬물을 틀어 한 컵 가득 따라 모두 마셨다. 그제야 머리가 좀 맑아지자 거울 안의 자신의 모습이 뚜렷이 보였다.
햇빛이라고는 한 점 받지도 못한 듯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은 푸르스름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한땐 쌍꺼풀 없는 큰 눈이 그녀의 자랑이었을 때도 있었지만, 가끔 거울을 들여다보면 자신이 아닌 생판 모르는 누군가와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아 싫었다.
적당히 보기 좋게 솟아 있는 코를 지나 도톰하고 작은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새하얗게 버짐이 일어나 군데군데 터져 붉은 핏기를 보이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쓸자 까끌한 촉감과 함께 아릿함이 느껴졌다.
예쁘다 했다. 그녀가 지냈던 한국에서는 수아의 모든 것이 신비롭고 아름답다며 수많은 남자들이 따랐었다. 그것에 기고만장했던 때가 있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허여멀건한, 매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인형의 모습. 이곳에서는 어떠한 남자도 자신을 장식장 안에 모셔둔 인형처럼 쳐다보며 따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자 또다시 호텔 앞에서 만났던 남자가 생각났다.
쾅!
수아는 있는 힘을 다해 주먹으로 거울을 쳤다. 하지만 깨지지 않았고 두 번, 세 번, 다섯 번째가 되었을 때에서야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그녀의 주먹에 유리조각이 박혀 기어이 피를 보았다. 그것으로 성이 차지 않는지 연신 손을 내려치는 수아의 눈에서는 어느새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피와 뒤섞여 세면대 위로 후두둑 흘렀다.
“돌려줘, 제발!”
한국에서는 죄인이 되어 차마 입에 담지도 못했던 그 말이 참으로 쉽게도 터져 나왔다. 그때 그 자식이 자신의 옆을 지나가며 사랑한다고 외쳤을 때도 겁에 질려 한마디도 못 했던 주제에 이제야 가장 하고 싶었던 그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뚜르르르르르.
받지 않는 전화는 곧 끊어졌다. 수아가 반쯤 광기(狂氣)에 찬 자신을 추스르며 타월로 손을 감싸고 나왔을 때 다시 전화가 울렸다.
“네.”
- 남수아! 괜찮은 거야!?
그리운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귓가에 울리자 수아는 그 상대방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아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 수아야.
“어떻게 알았어?”
그제야 테이블 옆에 놓인 정수기가 눈에 들어왔다. 정수기를 발견하지도 못하고 욕실에 가서 수돗물을 마실 정도로 목이 말랐나 싶었다.
- …….
잠시 수화기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그가 자신을 찾기 위해 모스크바에 있는 모든 호텔에 전화를 걸었을 거라 짐작한 수아가 먼저 말했다.
“왜? 자살이라도 했을까 봐?”
- 수아야.
“괜찮아, 오빠. 나 의외로 괜찮아.”
자신에게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하려 애쓰는 상대방은 수아의 이름을 부르는 것 외의 말은 섣불리 하지 못했다.
- 정말……, 괜찮은 거지?
상처가 깊이 났는지 수건에 배어나오는 붉은 피를 무심히 바라보며 수아가 ‘그래.’ 하고 대답했다. 러시아로 올 준비를 하던 내내 여자 혼자 위험할거라며 따라나서겠다던 자신의 사촌은 아직도 여전히 걱정을 놓지 못했다.
“자주 연락 못 할 거야. 죽었다는 소리 안 들리면 그냥 살아 있구나 해줘.”
- 한국에는 언제 들어올 거니?
“……, 지금은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진심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이곳 러시아에서 살고 싶었다. 러시아가 안 된다면 다른 나라 어디이든, 한국만 아니라면 좋았다.
전화를 받으며 창밖에 시선을 주자 어슴푸레 밝아오는 하늘이 보였다. 하루를 꼬박 잤다 생각하자 배가 고파왔다. 수아는 사촌과의 전화를 끊은 뒤 룸서비스를 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
- 돌아올 때는 꼭 연락해. 알았지?
“응.”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작게 중얼거린 것을 사촌은 다행히 듣지 못했다.
- 그래, 그럼 쉬어. 연락 자주 하고.
“응.”
뭔가 더 할 말이 남아 있는 듯했지만, 수아는 매정하게 수화기를 놓았다. 친척들이 자신을 얼마나 끔찍하게 아끼는 줄 알면서도 지금은 그 어떤 호의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룸서비스를 시키겠다고 마음먹은 것을 잊고 침대 위에 다시 드러누웠다. 손바닥에 박혀 있는 유리 조각을 빼고 지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그냥 놔둔다고 죽기야 하겠는가.
정적이 찾아온 방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누워 있자, 희미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하루도 그 추위는 여전하다는 것을 예고라도 하는지 점점 커지는 바람소리는 이내 창문을 열어달라는 듯 덜컹덜컹 손에 쥐고 흔들었다.
차라리 이대로 피가 멎지 않아 몸속의 모든 피가 빠져나갔으면 싶었다. 빼지 않은 유리조각이 살을 파고들어 혈관을 타고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상상을 하자 온몸에 짜릿한 전율과 공포가 찾아왔다. 차마 한국에서 못 했던 그 일을 이깟 유리조각이 대신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 것을 보니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싶어 허허로운 웃음이 나왔다.

어두운 방 안의 모든 창문에는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어 모스크바의 흐린 하늘빛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긴 마호가니 원목 책상 위에는 여러 가지 서류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그 양옆에는 분명 마호가니 책상과 한 세트임이 분명한 책장이 일렬로 죽 나열되어 있었다. 흔하디흔한 부자의 서재로 보이는 곳이었지만, 일을 하기 위한 컴퓨터도 없었고 손님을 맞기 위한 테이블이나 소파도 없었다.
오로지 책을 읽기 위해, 혹은 생각할 것이 필요할 때마다 틀어박히는 그곳의 주인인 이안은 책상에 걸터앉아 방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골치 아픈 서류를 가지고 들어왔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자 그것을 처리하기를 포기한 지는 오래였다.
긴 다섯 개의 손가락이 의미 없이 책상을 두드렸다. 몸의 근육 모두가 긴장한 채 한나절을 보낸 탓인지 뒷목이 뻐근해져 왔다. 호텔 로비에서 처음 그 동양 여자를 보았을 때 설마 하는 마음이었지만, 본능적으로는 거의 확신에 가까웠다. 그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잠들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이안은 최대한 자신의 참을성을 시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의 룸 문을 따고 들어가 본인 입으로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강제로 구금하고 싶었으나, 로비에서 만난 그녀는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은으로 세공된 담배 케이스를 열어 가지런히 정돈된 담배 중 하나를 들어 불을 붙였다. 어두운 방 안에 지포라이터의 불빛이 잠시 비췄다가 이내 타들어가는 담배의 불빛 흔적만이 남았다.
“들어가겠습니다.”
눈을 감고 알싸하고 달큼한 담배 향을 음미하던 이안이 이내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문을 열고 들어온 노아는 서재에서 풍기는 담배 냄새에 의아한 눈으로 이안을 바라보았으나, 이내 자신의 임무를 깨닫고 그에게 들고 왔던 서류를 건넸다.
“한국인이군.”
“어제 입국했다 합니다. 여권으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입니다. 한국에 사람을 보냈으니 곧 보고서를 올리겠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얼마 없는 정보에 이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한 손으로는 서류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담배를 입가로 가져가던 그가 자신의 담배에 시선이 꽂혀 있는 노아를 보고 피식 웃었다.
“신기한가?”
“아닙니다.”
지독한 담배 애호가였지만 서재에서만큼은 책에 담배 냄새가 배는 것이 싫다는 이유로 본의 아닌 금연을 하던 이안이었다. 어제 잠깐 보았던 동양인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도 모자라 뒷조사까지 시키는 것은 확실히 아무르의 호랑이라 불리는 이안이 할 짓이 아니었다.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차올랐으나 애써 시선을 돌리는 그를 이안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쳐다보며 필터만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러시아 입국 신청서와 그녀가 신청한 러시아 초청장 사본을 본 뒤, 한 장을 더 넘기자 여권 사진이 나왔다. 어제 본 여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발랄한 모습에 잠시 기억을 떠올려 최근의 모습과 비교했으나 영 다른 사람 같았다.
음울하고 어딘지 반쯤 넋이 나가 있던 남수아라는 여자의 모습이 떠오르자, 여권 안에서 생기 있게 빛나고 있는 그녀의 과거 사진이 다시 눈길을 붙잡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네?”
“아니다. 네게 한 말이 아니야.”
이안이 낮게 중얼거린 것을 듣고 노아가 대답하자 고개를 흔들었다. 그거야 차차 알아내면 될 일이었다. 한국에서 올 보고서에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이 있을 테니,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것 외에 문제라고는 없었다.
“수고했다. 나가봐.”
마지막 장에는 지금 묵고 있는 호텔과 룸 넘버가 나와 있었지만, 그것은 이미 이안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노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그녀의 여권 사진을 바라보는 이안의 입가가 굳어졌다.
“검은 눈동자라…….”
그의 몸속에 돌고 있는 진한 청호의 피가 그녀를 원했다. 눈이 마주치고 손끝이 스친 순간 이안은 그녀에게서 나는 냄새를 확실하게 각인했다. 구역질이 치밀어 오를 만큼 역하고, 또한 참을 수 없는 매혹의 향기. 그 자리에서 당장 그 암컷을 품고 그의 씨를 뿌려 영역을 표시하고 싶은 짐승의 충동.
낯선 감정은 아니었다.
청호 일족은 필연적으로 마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호텔 밖에서 멍하니 서 있던 그녀의 뒷모습을 본 순간 등줄기를 훑고 지나치는 짜릿한 격통을 느꼈다. 일족의 수장으로서 그녀가 정말 마녀인지 확인해야 했다. 그들의 아이를 낳을 소모품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때, 검은 눈을 하고 나타난 이국의 마녀.
이안에게 보인 행동은 공포와 두려움에서 우러나온 것이지, 보통의 마녀들이 그들에게 보이는 경멸은 찾아볼 수 없었다. 스스로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가장 매력적인 사냥감.
이안의 의미 없는 눈동자가 무심히 자신의 다섯 손가락을 주시했다. 마녀의 저주대로 마녀들과 몸을 섞고 태어난 잔여물인 자신들은 더 이상 이제 청호의 본모습인 호랑이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저주는 아직도 그의 일족을 지배하고 있었다. 저주가 풀린다 해도 인간으로 살아온 그들이 더 이상 러시아의 설원을 박차고 달릴 수 없다는 것을 이안은 이미 깨닫고 있었다.
“부질없군.”
그저 일족의 대를 잇기 위해 살아가야 하는 삶에서 그는 아직 의미를 찾지 못했다.
--- 본문 중에서

회원리뷰 (12건) 회원리뷰 이동

한줄평 (31건) 한줄평 이동

총 평점 7.5점 7.5 / 10.0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배송 구분 구매후 즉시 다운로드 가능
  •  배송비 : 무료배송
반품/교환 안내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반품/교환 방법
  •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