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의 해학 30』을 읽지 않고 발자크의 작품을 읽었다고 하지 말라!
발자크는 그가 사랑했던 폴란드의 귀부인 한스카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글귀를 남겼다.
‘만약 나의 작품 중에 후세에 유일하게 남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30편의 해학 단편들』 일 것이오.’
발자크는 15세기 중엽 부르고뉴 공작의 측근이 이탈리아의 『데카메론』을 모방하여 집필한『새로운 백 가지 이야기』에 자극받아 이 작품을 기획하고, 1831년부터 집필에 들어갔다. 그것은 앞서의 두 이야기들처럼 당시 프랑스, 특히 그의 고향 투레느 일대에 돌아다니던 100개의 단편들을 모아 정리하여 『백 가지 우스운 이야기』를 써보는 것이었다. 비록 그의 개인사정 때문에 30편을 모아 정리하는 선에서 집필이 끝났고, 그것이 바로 이 『발자크의 해학 30』이 되었다. 하지만, 두 편의 선례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성적 은유와 풍자가 나타남으로서 문학적 가치가 더욱 높아 가히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 하겠다. 또한, 사회의 여러 계층 출신의 남녀들을 등장시켜, 생동감 있고 현실적인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여 인간의 정열과 약점, 특히 성적 쾌락의 추구에 대한 욕망을 더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그의 문학적 특성이 대단히 잘 나타나 있다.
『인간희극』 풍의 딱딱한 이야기가 아닌, 좀더 가벼운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려한 시도.
발자크 작품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자칫 독자의 마음을 어둡게 할 수 있는 작품의 내용에 풍자와 희극적 요소를 가미하여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너무 많이 침울해지는 것을 방지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발자크의 해학 30』은 발자크가 ‘좀더 가벼운 이야기를 들고’ 독자들에게 다가가려는 의도에서 씌어진 바, 이는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전모를 고발하려는 의도가 담긴 『인간희극』에 비해,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으로서, 발자크의 원초적 창작 목적이 더 많이 구현된 글인 셈이다.
원래 『인간희극』은 ‘희극’이라는 제목과 달리‘인간과 인간사회를 집대성하여 연구한 뒤 그 결과물을 서사적으로 나타낸 무거운 내용의 글이라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발자크의 해학 30』은 무거운 내용의 글만을 계속 읽게 될 경우 작가와 독자 양쪽이 부담을 가지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여 해학과 풍자적인 요소를 좀더 많이 가미하였다. 그렇게 하여, 독자들은 그의 또 다른 대표작에서 더 재미나면서도 유익한 마음의 양식을 구할 수 있다.
30편의 단편들로 정리된 중세 프랑스 왕국의 야사野史와 비사秘史.
이 작품 속 단편들에는 프랑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이상 들어보았을 실존 인물이나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이 종종 등장한다. 물론, 그들에 관한 이 작품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교과서적인 정사正史에 기록되지 않은 야사나 비사 등을 발자크가 수집 정리하여 『발자크의 해학 30』이라는 픽션의 형식으로 세상에 공개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 속 등장인물들이나 배경들은 아마도 우리의 야사나 비사 속 등장인물들이나 배경들이 그러하듯 프랑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익히 알려진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내용들이 상당수 있느니만큼, 이를 위하여 역자는 각 인물이나 사건에 관한 부연설명을 주석의 형태로 기입해 넣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원작을 최대한 존중한 번역과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정리한 역자의 주석들.
중세 프랑스에서 북유럽 풍 르네상스의 막을 열었던 대문호 프랑수아 라블레를 존경한 발자크는 라블레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문체, 즉 16세기 프랑스 서민들이 일상적으로 쓰던 말에 바탕한 문체를 이 작품에서 종종 사용했다. 또한 의성어에 있어서도 라블레가 활약했던 중세 프랑스 시대 풍의 것을 사용하였다. 그렇기에 역자는 작가의 이러한 의도를 최대한 존중하여 가급적 원문의 의미를 해치지 않도록 노력했다. 아울러 중세 프랑스의 종교, 정치, 제도, 사회 혹은 문화적 환경에 따라 형성된 특별한 용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각 용어들에 대해 별도로 조사하고 정리하여 주석을 달았다.
현대 영화에 있어서도 보기 드문 장면의 급전, 소설이나 희곡에서도 보기 드문 탄탄한 구성! 구구절절이 가슴속을 꼭꼭 찌르는 맵고 예리한 경구警句라든지, 자연 그 자체를 보는 느낌을 갖게 하는 풍경묘사라든지, 쇼팽의 전주곡을 방불케 하는 대화라든지, 바흐의 둔주곡을 듣는 것 같은 심리묘사라든지, 곳곳에 아로새긴 아라베스크풍인 환상이라든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문장의 명암이라든지, 앙리 마티스의 색채처럼 짙고, 드뷔시의 가락처럼 섬세한 질감이라든지, 그 밖의 장단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작품은 라블레의 문장을 모방한 중세기적인 내용을 근대적이며 예술적으로 부활시켰다. 라블레의 작품이나 보카치오의 작품에 없는 두 가지 정감, 곧 감동과 감상을 발자크의 독특한 수법으로 아로새겨 놓은 저술이라 할 수 있다.
--- 역자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