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강원도 태백에서 굽이쳐 온 낙동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강 하구에 위치한 도시이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제 1의 국제 무역항, 산업, 관광, 교육의 중심 도시 등 부산의 특징을 표현하는 말은 여러 가지다. 현재 부산의 인구는 390만 명으로, 낙동강을 끼고 있는 도시 가운데 가장 크다. 부산에는 약 1만 5천 년 전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이 살았고, 삼국시대에는 가야와 신라의 찬란한 문화가 꽃을 피웠다. 임진왜란 때 부산은 왜군이 쳐들어오는 통로였고, 6.25전쟁 때는 우리나라의 임시 수도가 들어서기도 했다. 낙동강은 부산 사람들의 생명줄로서 부산의 서쪽 지역인 북구, 사상구, 사하구, 강서구를 끼고 흐르다가 남해바다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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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역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사실에 놀란다. 하나는 역의 건물이 너무 작다는 것. 역 구내라고 해 봐야 10평 남짓 정도이니 도시의 웬만한 아파트 경비실만한 규모이다. 역 건물 바로 옆에 붙은 화장실 건물이 오히려 역사보다 더 커서 우스운 느낌을 준다. 이렇게 역의 건물은 작지만 누구나 '깜찍하고 예쁘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이 작디작은 역의 나이이다. 일제시대 때인 1906년에 처음 지었다고 하니, 사람으로 치면 95살이 되는 셈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이 역은 강산이 10번쯤 변할 때까지 지금의 자리를 지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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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끼 노래’의 고향을 찾아서
‘산토끼’노래는 누구나 부를 줄 안다. 하지만 이 노래의 고향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산토끼’의 고향은 바로 창녕이다. 창녕군 이방면 안리에 있는 이방초등학교가 바로 ‘산토끼’ 노래가 태어난 곳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19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이방초등학교에는 이일래라는 젊은 선생님이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날 수업을 마친 그는 학교 뒷산인 고장산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산토끼가 겁 없이 깡총깡총 뛰노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일래 선생은 그 자리에서 연필을 꺼내 ‘산토끼’ 노래를 지었다.
이 노래가 만들어지던 당시는 일제가 우리 민족을 교묘한 방법으로 괴롭히고 있을 때였다. 이일래 선생은 산토끼가 뛰노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민족도 하루빨리 해방이 되어 저 산토끼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담아 ‘산토끼’ 노래를 만든 것이다. 이방초등학교 교정에는 1978년 이 학교를 졸업한 몇몇 분들이 뜻을 모아 세운‘산토끼’ 노래비가 있다.
“동요 속의 산토끼는 일제 식민지 치하의 우리나라를 상징하였고, 어린이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티 없이 곱게 자라도록 바라는 마음에서 이일래 선생이 지은 노래지요. ‘산토끼’노래의 산실이 이방초등학교라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 노래비가 세워질 당시부터 계속 이방초등학교에 근무해 온 하증홍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다. 교장선생님은 또 많은 어린이들이 이곳을 찾아와 노래에 담긴 참뜻을 새겼으면 한다고 했다.
‘산토끼’ 노래가 태어난 곳인 이방초등학교는 1906년에 개교해 지금까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학교이다. 이 학교는 시골학교 특유의 운치가 살아 있다. 학교 주변에는 수령 300년의 느티나무를 비롯해 여섯 그루의 플라타너스가 자라고 있고, 교정에는 서어나무, 수양버들 등 우람한 몸집의 거목들이 늘어서 있다. 학교 뒤편에는 낙동강이 흐른다. 교정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작은 산 하나만 넘으면 상류에서 쉼없이 흘러내리는 낙동강의 넉넉한 물굽이를 구경할 수 있다.
--- pp.188∼P191---본문중에서
‘산토끼 노래’의 고향을 찾아서
‘산토끼’노래는 누구나 부를 줄 안다. 하지만 이 노래의 고향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산토끼’의 고향은 바로 창녕이다. 창녕군 이방면 안리에 있는 이방초등학교가 바로 ‘산토끼’ 노래가 태어난 곳이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19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이방초등학교에는 이일래라는 젊은 선생님이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날 수업을 마친 그는 학교 뒷산인 고장산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산토끼가 겁 없이 깡총깡총 뛰노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일래 선생은 그 자리에서 연필을 꺼내 ‘산토끼’ 노래를 지었다.
이 노래가 만들어지던 당시는 일제가 우리 민족을 교묘한 방법으로 괴롭히고 있을 때였다. 이일래 선생은 산토끼가 뛰노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민족도 하루빨리 해방이 되어 저 산토끼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담아 ‘산토끼’ 노래를 만든 것이다. 이방초등학교 교정에는 1978년 이 학교를 졸업한 몇몇 분들이 뜻을 모아 세운‘산토끼’ 노래비가 있다.
“동요 속의 산토끼는 일제 식민지 치하의 우리나라를 상징하였고, 어린이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티 없이 곱게 자라도록 바라는 마음에서 이일래 선생이 지은 노래지요. ‘산토끼’노래의 산실이 이방초등학교라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 노래비가 세워질 당시부터 계속 이방초등학교에 근무해 온 하증홍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다. 교장선생님은 또 많은 어린이들이 이곳을 찾아와 노래에 담긴 참뜻을 새겼으면 한다고 했다.
‘산토끼’ 노래가 태어난 곳인 이방초등학교는 1906년에 개교해 지금까지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학교이다. 이 학교는 시골학교 특유의 운치가 살아 있다. 학교 주변에는 수령 300년의 느티나무를 비롯해 여섯 그루의 플라타너스가 자라고 있고, 교정에는 서어나무, 수양버들 등 우람한 몸집의 거목들이 늘어서 있다. 학교 뒤편에는 낙동강이 흐른다. 교정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작은 산 하나만 넘으면 상류에서 쉼없이 흘러내리는 낙동강의 넉넉한 물굽이를 구경할 수 있다.
--- pp.188∼P191---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