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은혜를 찾아서
이 시대에 위태롭게 된 은혜에 대해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쓰다 보니 한 권으로 묶인 네 권의 짧은 책을 쓴 셈이 되었다.
나는 먼저 교회가 은혜를 목말라하는 세상에 은혜를 나누어주는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는 우려를 안고 시작했다. 교회 밖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이들이 아닌 나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이라고 점점 더 생각하게 되었다. (1부 하나의 세상, 하나의 갈증)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은혜를 나누어주는 사명을 더 잘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를 보여주기 위해 나는 순례자와 운동가와 예술가를 선정했고, 그들의 본을 통해 믿음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오늘의 문화에 복음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려 한다. (2부 은혜를 나눠주는 사람들)
그런 다음 한 걸음 물러나서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 기본적인 질문 하나를 짚어볼 필요성을 느꼈다. 복음은 정말 좋은 소식인가? 그렇다면 복음이 과학과 뉴에이지와 다른 종교적 신념들의 대안 속에서 어떻게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3부 정말 좋은 소식인가)
마지막으로 나는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의 정치 참여가 그렇다. 어떻게 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교회가 또 하나의 로비 집단이라 여겨지는 사태를 피할 수 있을까??(4부 믿음과 문화)
이 네 분야는 내가 거의 20년 전에 썼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What’s So Amazing About Grace?)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은혜는 한겨울에 갑작스런 포근한 날씨처럼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그것은 우리의 발걸음을 갑자기 멈추게 하고, 숨을 멎게 하고, 마음을 누그러트린다. 만일 우리가 은혜를 조작하거나 통제하려고 애써서 얻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은혜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이 놀라운 은혜를 맛본 것도, 믿는 것도 아니다.
분열과 불화가 넘치는 이 시대, 은혜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저자는 ‘은혜’(grace)라는 단어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값없이 주시는 용서, 구원, 도움의 의미 외에도 그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보이는 호의, 친절, 선의, 관대함, 아량, 사랑 등의 의미로도 사용하고 있다 - 역자 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보이는 호의, 친절, 선의, 관대함, 아량, 사랑 등의 의미로도 사용하고 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