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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과 ‘누구’
‘상’은 ‘순번’을 따릅니다. 최고와 최악으로 양분하거나 등수를 매겨 나열하는 형식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도 1부터 시작하는 ‘순번’에 관심을 완전히 떨치기란 어렵습니다. 최근 “누가 어떤 상을 받았다더라”, “누가 어떤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더라”는, 수상 및 선정 소식을 자주 접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소식에 “정말 축하할 일이네!” 또는 “아니 왜 그 사람이?”라는, 다른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보통 수상 소식을 들으면 가장 먼저 ‘누가’에 관심이 쏠리게 되는데 사실 ‘어떤’ 상과 프로그램인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과 수상자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상은 수상자에게 명예를 안겨 주고, 수상자는 상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상의 권위를 세우는 데 일조하게 됩니다. 결국 상의 권위와 공정성은 상과 수상자의 궁합이 얼마나 잘 맞느냐에 따라 좌우되기 마련입니다. 대개는 마다할 이유 없이 수상을 영광스러워하지만 수상자가 상을 거부하는 경우도 간혹 발생하는데 상을 주관하는 측과 거절하는 수상자 모두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득 국내 사진계에 어떤 상들이 있나, 또 그 상들을 지금까지 누가 받았는지를 떠올려 봅니다. 그런데 몇 안 되는 상들에 중복되는 수상자들이 상당수입니다. 세월과 더불어 젊은 작가가 중견이 되고 원로가 되면서 농익은 작업 세계를 바탕으로 여러 종류의 상을 거머쥔 작가를 보는 것은 참 흐뭇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차별화되지 않은 상의 성격에 중복 수상의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저마다의 특성이 있는 상이라면 당연히 다양한 수상자들이 나오게 될 테니 말입니다.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춘 상들도 있지만, 다행히 최근 몇 년 사이 새로운 상이 생겨나고 기존의 상들 가운데 몇몇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한 변화인 듯하여 반가운 마음입니다. 변화의 주된 내용은 명예만큼이나 수상자에게 절실한 현실적인 수혜들입니다. 응모 조건, 심사 기준, 수상자 수, 상금의 규모, 지원 내용과 방식 등에 좀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안들을 접목하는 모습에서 일회적인 이벤트가 아닌 상과 수상자 모두 장기적인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함께 떠오르는 생각, ‘정작 판은 잘 짜 놓았는데 여기서 활보할 주체가 이 판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어떤 상’과 ‘누구’가 찰떡궁합을 이루기 위해선 상의 변화만큼이나 기존 수상자나 미래의 수상자들도 함께 변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포토넷〉 200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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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주고받을 만한 성취를 이룬 작가란 어느 시대에나 귀하게 마련이어서, 문학계에서도 굵직한 문학상을 몇몇 작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돌아가며 수상하는 세태에 대한 비난이 그치지 않는다. 하물며 훨씬 작가층이 옅은 사진계의 경우에야. 여러 해 동안 이어오던 몇몇 사진상들이 예산 등 문제로 잠정 중단되었고, 유지 중인 사진상들도 수상자 선정과 운영이 합당한지 되짚어 볼 면이 적지 않다. 상마다 각자의 성격을 명확히 세우고 공정히 운영해서 다음 번 상은 어떤 작업을 해온 어느 작가가 받게 될 지 대략 짐작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상의 권위가 바로 서고 주관자와 수상자 모두 흐뭇한 상을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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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진
지난 달, 훈훈한 봄바람을 타고 불어온 사진은 만끽하셨는지요? 〈서울 포토〉, 〈P&I〉, 〈DPG SHOW〉가 동시에 열렸던 한 주 동안 삼성동 코엑스로 출퇴근을 하면서 참 많은 사진인들을 만나고 다양한 사진 문화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이 정신없이 흘러갔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진으로 즐거워하던 모습은 분명히 기억에 남습니다. 한 주 사이 6만 명 이상이 움직였다고 하니, 앞으로 4월을 ‘사진의 달’로 삼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폭풍처럼 휘몰아쳤던 지난 행사를 차분히 돌아볼 여유 없이 〈포토넷〉 5월호 마감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이번 달 특집은 일명 ‘사진 가족’입니다. 흔히들 아무리 남이라도 두세 사람 거치면 다 아는 사이가 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두세 사람을 거쳐서 비로소 알게 되었을 때 약간의 배신감(?) 혹은 당혹감(?)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 그 둘이 부부였어요? 형제였어요?” “어쩐지…” “아니, 혹시 실수한 거 없나 모르겠네…” 대략 이런 상황입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포토넷〉이 몇몇 사진 가족을 만나 그들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진 인생을 살고 있는지, 그 궁금증을 지면을 통해 풀어 보았습니다.
문득 저와 사진의 인연을 돌아봅니다.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지만 제가 13살이 될 때까지 어린이날이면 부모님과 중고등학생, 대학생이었던 오빠, 언니가 막내 수준에 맞춰 가까운 공원이라도 나들이를 나서 가족사진을 찍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어린이날은 아버지께서 온 가족을 카메라 가게로 데리고 가시더니 ‘삼성 미놀타 X-700’을 사서 오빠에게 선물했습니다. 당시 사진 동아리 활동에 꽤 열심이었던 오빠에겐 굉장한 횡재였지요. 그때부터 오빠의 사진에 대한 열정은 더 커져 급기야 좁은 다락방 한편에 확대기를 들여 좌식(?) 암실이 만들어졌습니다. 호기심 어린 막내 동생이 이를 그냥 보아 넘길 리가 없겠지요. 밤새 붉은 암등 아래에서 인화와 씨름하는 오빠 옆에 붙어 앉아 독한 냄새 풍기는 약품 속에 담긴 인화지에 상이 맺히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습니다. 가끔 수세용 물을 다락으로 나르는 심부름도 하면서 말입니다.
세월이 흘러 저는 사진 잡지를 만들고 있고 오빠는 직장을 다니며 사진을 취미로 즐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 꼬맹이였던 여동생이 이제 사진밥 좀 먹었다고 오빠에게 사진에 대해 훈수를 둡니다. 아주 오랜만에 삼성 미놀타 X-700으로 찍은 첫 가족사진을 앨범에서 끄집어내어 봅니다.
---〈포토넷〉 200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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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글을 썼지만, 육영혜 씨는 폭풍 같은 3, 4월을 지낸 터였다. 포토넷 식구들 모두와 함께 2008, 2009, 2010년 세 번의 〈서울 포토〉를 준비하며 그는 코엑스 대서양관의 한 귀퉁이에서 쪽잠을 자며 일을 도왔다. 더 많은 사진가들에게 시장 진입의 기회를 주고 더 많은 컬렉터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작품을 소장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로 시작한 행사였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고, 포토넷은 2010년을 끝으로 행사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취미로 사진하던 오빠가 옛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주던 귀여운 여동생은 어느새 성인이 되어 사진을 전공하여 전문가 - 사진 잡지의 편집장 - 가 되었다. 그는 가족의 달 5월호의 특집 기사를 만들며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애정을 슬쩍 꺼내 놓는다. 그는 떠났고, 그 사진은 아직 남아 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