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자가 주도하던 시장이 구매자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바뀌면서 생산보다 마케팅이 우위에 서게 되었고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의 정보 기술은 고객과 평생에 걸친 상업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마케팅 관점이 전위로 떠오르고 생산이 마케팅 과정의 한 기능으로 전락한 것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생산 공정에서 일어난 기술 변화 덕분이었다.
고객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한 새로운 주문 생산 능력을 갖게 되면서 사업은 고객에서 시작하여 공장으로 돌아가는 활동이 되었다. 공급자가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이것을 팔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 기존의 방식이었다면 이제 소비자는 개인적 욕구를 공급자에게 알려주어 자신의 입맛에 맞는 개성화된 제품을 제공받는 추세로 나아간다.
대량 생산이 소량 맞춤 생산으로 바뀌는 조짐은 1980년대부터 나타났다. 소비자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대량 생산에 의존하던 많은 공급자는 시설 과잉과 재고 누적으로 몸살을 앓았다. 한 분야에 너무 많은 공급자가 있었고 이 회사 제품과 저 회사 제품을 구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가격을 떨어뜨려 이윤을 줄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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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혁명과 미래의 네트워크 세계에 대한 대담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보면 세계 인구의 65퍼센트가 평생 전화를 걸어본 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들이고 40퍼센트는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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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헨리 포드가 50년 뒤에 자동차 생산에 도입한 방법처럼 표준화와 대형화를 통해 관광을 중산층과 서민층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었다. 그가 문화 체험을 생산하면서 도입한 틀은 현대 관광 여행산업의 초석이 되었고 지금도 실효성을 의심받지 않고 있다. 죽은 체험을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품이나 단순한 서비스의 판매와는 전혀 다른 발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일찍부터 판매자 구매자 관계를 공급자 사용자 서버 클라이언트의 관계로 탈바꿈시켜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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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종류의 관계가 우리의 생활의 한가운데로 온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나는 접속한다.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새로운 명제로 바뀌었다.
경계선이 모호해지고 활동이 연결되는 네트워크와 상품화된 관계로 이루어진 이런 탈근대 세계에서 자립적이고 자율적인 의식은 서서히 시대에 뒤진 것으로 낙인찍힌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 하는 것은 무수히 연결된 관계망 안에 있는 하나의 접속점처럼 행동하는 새로운 개인이다. <이 탈근대 세계의 최종 단계에 이르면 자아는 관계의 단계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자신이 파묻혀 있는 관계망에 독립된 자아가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서양 역사에서 지난 수백년 동안 한복판을 차지해 온 자아는 밀려나고 그 빈 자리로 관계가 밀고 들어온다.> ---
(자신은 연극배우로 그리고) 세계를 연극 무대로 보는 데 익숙한 새로운 시대(탈근대)의 남녀에게는 상업세계가 제공하는 대본, 무대, 다른 배우, 청중에 접속할 수 권리를 끊임없이 사는 것이 자신들이 거느리고 살아가는 다양한 인격을 살찌우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연기를 할 수 있고 변신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변화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변화뿐인 세상에서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퇴물이 된다.....소유는 모든 것이 휙휙 바뀌는 풍토에 적응하기에는 너무 느려터진 생각이다.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경제활동이 어지러울 만큼 빠르게 진행되는 세상에서 소유에 집착하는 것은 곧 자멸하는 길이다.
<현실의 수효는 관점의 수효> 탈근대적인 사유방식을
<나는 나와 주변상황의 합>이라 요약---오르테가
강한 공동체는 건강한 경제의 전제조건이다. 강한 공동체 만이 사회적 신뢰를 낳기 때문이다. 시장이라는 제 1부문과 정부라고 하는 제 2부문을 중심으로 공공 정책을 운용하면서 문화라는 제 3부문은 당연시 한다.사회자본을 수립하고 시장과 교역을 가능하게 만드는 막중한 역할이 문화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____ 교회, 세속기관.민간단체, 상조회, 스포츠 클럽, 예술 집단, 비정부 기구--는 시회적 신뢰의 샘물이다..
문화영역의 순수한 놀이는 인간적 결속의 숭고한 표현이다. 우리는 남과 어울리고 싶어서 놀이를 한다. 성숙한 놀이는 수동적 오락과는 달리 언제나 문화 영역에서 일어난다. 사람들이 친목, 시민 활동, 교회, 예술, 운동, 사회 저의, 환경 조직 같은 다양한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때 그들은 성숙한 놀이의 진수를 맛본다. 그들의 사회적 교류는 사회적신뢰의 섬울 곳곳에 만들고 풍성한 사회 자본을 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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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게 사들이고 비싸게 팔아치우는 것을 금과옥조로 삼아 우리의 생활을 끊임없이 담금질한다. 재산을 모으는 것은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커가면서 배운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운다. 이 세상은 상품을 교환하고 남부럽지 않을만큼 재산을 누려보겠다는 원초적 충동에 의해서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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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 관계와 시장 교환의 시대를 풍미했던 다양한 철학은 그 시대의 의미를 정의하는데 이바지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통신 기술과 이 기술을 가지고 우리가 만들어 내는 네트워크 자체가 우리가 접속을 추구하는 목적은 아니다. 네트워크는 새로운 시대에 펼쳐질 인간의 행로를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이요, 입구일 뿐이다. 접속 관계의 사회학적, 정치적 의미를 정의하는 작업은 여전히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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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간형이 탄생하고 있다. 그는 사이버스페이스의 가상 세계 안에서 자기 몫의 인생을 즐기고 네트워크 경제가 돌아가는 이치를 잘 알고 물건을 쌓아두는 데는 관심이 없지만 흥미롭고 신나는 체험에는 관심이 많고 온라인 세계와 오프라인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고 가짜든 진짜든 눈앞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현실에 자신의 인격을 재빨리 적응시킬 수 있다. 21세기의 주역으로 등장할 이 새로운 인간은 산업 시대를 살았던 부모와 조부모 세대의 부르주아 인간형과는 종자부터 완전히 다르다.
이들은 공동 관심 단지 안에서 성장했고 의료보험 회사를 통해 의료 서비스를 받으며 자동차를 임대한다. 물건은 온라인으로 구입하고 소프트웨어는 으레 공짜려니 여기지만 추가 서비스와 업그레드에는 당연히 돈을 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7초 안에 할 말을 모두 해야 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정보에 즉각 접속하여 인출하는 데 익숙하고 하나에 오래 집중하지 못하며 성찰적이기보다는 찰나적이다. 자신은 노동자가 아니라 경기자라고 생각하고 근면하다는 말보다는 창조적이라는 말을 들을 때 더 뿌듯해한다.
임시직에 익숙하고 과제 해결을 중심으로 편성된 조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부모 세대처럼 단단히 뿌리 박은 삶보다는 아주 유연하고 순간적인 삶을 추구한다. 이념적이기보다는 심리적이고 글자보다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쪽이다. 작문 실력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전자 데이터를 처리하는 실력은 한 수 위다. 분석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사이버스페이스에 나오는 허구적 인물과 어울리는 데 쏟아 붓는다. 세계는 하나의 무대이며 삶은 공연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단계단계마다 새로운 생활 양식을 과감히 받아들이면서 자기를 끊임없이 바꾸어나간다.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혁신을 도모한다.
이들에게 접속은 생명이다. 접속이 끊긴다는 것은 곧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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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화된 문화 체험에 점점 무게 중심이 높이는 지구 네트워크 경제에서 문명의 생명수라 할 수 있는 풍요로운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고 끌어올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이 새로운 세기의 으뜸가는 정치적 숙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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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권에서 아이디어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으로는 불길한 생각도 든다. 인간의 생각이 그렇게 중요한 상품으로 거래될 수 있다면, 중요하지만 상업성은 없는 사유는 어떻게 되는가? 자기 인생의 길잡이가 될만한 생각을 상업의 영역에서 가져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문명에서,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관점, 의견, 관념, 개념이 존립할 수 있는 여지가 과연 있을까? 온갖 유형의 아이디어가 거대 기업들이 관리하는 지적 재산권의 형태로 얽히고 설켜 있는 사회에서 우리의 집단 무의식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미래의 사회적 담론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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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부분의 관계가 상업적 관계로 변하고 모든 개인의 삶이 24시간 내내 상품의 틀에 갇혀 있을 때, 비상업적 관계, 다시 말해서 혈연, 이웃, 문화적 취향의 공유, 종교적 결사, 민족의식, 형제애, 시민의식에 바탕을 둔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시간 그 자체를 사고 팔고, 삶이라는 것이 한낱 계약과 금전적 도구에 의해서 결합된 상업적 거래의 연속에 불과한 것으로 변질될 때, 애정, 사랑, 헌신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전통적 상호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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