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유적지와 거기서 우리가 얻어낸 지식은 어느 한 나라나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류 역사라는 공동 건물의 한 부분이며, 차츰 혼잡해지고 위기에 처해가는 세계 속에서 다양하면서도 공통된 시각을 우리에게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나간 과거의 유물과 유적지들을 미래를 위해 보존해 두어야 한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자손들도 죽은 사람들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고고학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며, 다양한 인류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고고학, 과거로 들어가는 문 p. 18
--- 고고학, 과거로 들어가는 문 p.18
크로마뇽인들은 왜 동굴 벽을 그림으로 장식하려 했을까? 그저 즐거움만을 위한 순수 예술이었을까? 하지만 초기의 연구자들은 선사 시대 사람들이 인간보다는 동물에 더 가까웠다는 이유 때문에 그런 이론을 거부한다. 그들은 그 예술을 이른바 ‘감정 이입의 사냥 주술’ 형식이라고 여긴다. 곧 동물 사냥을 쉽게 하려는 의도로 그런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 1장 원시 시대의 생활 방식(선사 시대의 예술가들) p.50
오래 전에 내가 잠베지 강둑을 따라가면서 초기 농경 마을들을 찾고 있을 때, 실수로 평화로이 풀을 뜯는 코끼리 떼 한가운데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숲이 처음인 데다가 코끼리들이 있다는 징후, 이를테면 나뭇가지들이 꺾여 있다든가, 오래되지 않은 똥무더기가 있다든가, 코끼리 배에서 들리는 부드럽게 부글거리는 소리 따위에도 익숙하지 않은 상태였다. 코끼리들을 본 나는 그만 얼어붙어 버렸다. 그러나 코끼리들은 나를 아랑곳하지도 않고 계속 풀을 뜯고 있었다. 나는 살그머니 뒷걸음쳐서 그곳을 빠져 나왔다. 내가 잘 보이는 곳에 있었고 천천히 움직였으며 위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코끼리들은 나의 출현에 놀라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여기에 보스 프리미제니우스를 길들일 수 있었던 열쇠가 있다.
--- 1장 원시 시대의 생활 방식(들소 길들이기) p.74
고대 이집트가 번영을 누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부가 농업 경제에 깊이 개입해 합리적인 행정 방식으로 곡물의 공급량과 가격을 오랫동안 안정된 수준으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국가 기구는 왕과 신들의 영광을 위한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했으므로 세련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국가 조직이 차츰 느슨해지고 결국 붕괴하자 통치자들은 주춤거리다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남았다. 그들은 촌락과 농촌에 든든히 뿌리 내리고 있었으며, 일시적인 신보다는 가족과 대지에 충성을 바쳤던 것이다.
--- 2장 서민과 낙타와 왕(이집트의 서민들) p.107
산타바바라 회의는 마야 금석학자들이나 고고학자들이 제각기 다른 길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지난 15년 동안 마야 금석학에서는 조용한 혁명이 이루어졌다. 이제 와서야 우리 고고학자들은 금석학자들의 탁월한 업적이 어느 정도였는지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나중에라도 결코 헤어지지 않을 ‘결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2장 서민과 낙타와 왕(마야를 읽는 사람들) p.121
성에 대한 연구는 고고학에서 비교적 늦게 시작된 편이며, 다른 분야 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연구도 별로 없다. 김부타스가 과도하게 일반화시킨 내용은 기독교와 유대 교의 가부장 제도를 연구하는 페미니스트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어머니 여신 숭배에서 염원하는 다산·모성·대지 사이의 밀접한 관계는, 생태학과 환경학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을 연구하는 에코페미니스트들에게 중요한 관심거리가 된다.
--- 3장 현대 고고학의 쟁점들(선사 시대의 성차별) p.177
자기 잇속도 챙길 줄 모르고 엉뚱한 행동만을 일삼는 괴짜 고고학자들은 이제 만화나 전설 속에서나 등장할 뿐이다. 이따금 고고학 연구 계획이 대중의 관심을 끌어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영화 감독 데밀(Cecil B. De Mille)이 1920년대에 만든 영화 <십계>의 세트가 최근 캘리포니아 중부에 있는 과달루페(Guadalupe) 사막에서 발굴되었다. 이 사건은 1922년에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한 것만큼이나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고대 이집트의 유물이나 할리우드 최초의 서사시 영화, 이 모두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이다. 그래도 조사의 목적은 아주 진지했으며 최신 기술을 사용해 섬세하게 예비 발굴까지 거쳤다. 고고학이 언제나 ‘머나먼 과거’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 동시대 세계와도 관련이 있음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이 글은 이 책을 마무리 짓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 4장 사회속의 고고학 p.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