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동화 「우리는 한편이야」의 그림을 그렸으며, 그린 책으로 『나와 조금 다를 뿐이야』, 『쓸 만한 아이』, 『사람이 아름답다』, 『아주 작은 학교』, 『이젠 비밀이 아니야』, 『다리가 되렴』, 『동생 잃어버린 날』, 『루이 브라이, 손끝으로 세상을 읽다』, 『김구, 통일 조국을 소원하다』 등이 있습니다.
얼굴 좋은 것은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은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그 순간, 창암은 눈이 번쩍 뜨였다. 그제야 창암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맞아! 얼굴 좋은 사람이나 몸 좋은 사람, 또는 양반이나 부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은 마음이 바른 사람이지. 그래, 마음 좋은 사람이 되자! 이제부터는 마음을 닦는 데 힘쓸 거야.’ 어느새 창암의 가슴속에 작은 등불 하나가 켜졌다. --- p.16
주요 인사들이 서 있는 단상을 향해 힘차게 폭탄을 던졌다. 꽝! 폭발음과 함께 커다란 불꽃이 일었다. 경축식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일본 중요 인사들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미처 자결하지 못한 윤봉길에게 일본 헌병들이 몰려들었다. 젊디젊은 스물다섯 살의 청년 윤봉길은 현장에서 체포된 뒤 일본으로 무자비하게 끌려갔다. --- p.85
“일본이 항복한답니다!” 꿈에도 그리던 소식이었다! 일본의 항복은 곧 대한의 독립을 뜻했다. 36년 동안 일제의 탄압에 시달리며 살던 우리 겨레가 자유를 찾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김구는 마음 놓고 기뻐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우리 힘으로 나라를 되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 p.96
“남과 북이 맞서고 있는데 공산주의자들과 협상하겠다니요? 절대로 안 됩니다.” 우익 청년들의 아우성에 김구는 경교장 이 층 베란다로 나갔다. “통일을 위해서라면 나는 공산주의자뿐 아니라 그 누구든 만나겠소. 가서 그들을 설득하겠소. 단독 정부를 세우는 것은 절대로 안 되오. 지금 남과 북으로 갈라지면 이 땅은 영원히 둘로 나뉠 것이고 남북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피를 흘릴 것이오."
가난한 상민 집안에서 태어난 소년 창암은 부패한 조정과 불공평한 신분 제도에 맞서 동학 농민 운동을 이끌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맹렬히 저항한 창암은 ‘김구’로 이름을 바꾸고 민족의 자주독립에 일생을 바치기로 작정한다. 일본의 거센 탄압에도 독립의 꿈을 접지 않은 김구는 상해 임시 정부의 수장이 되어 독립운동에 더욱 열을 올린다. 그는 한인 애국단을 구성해 이봉창, 윤봉길과 함께 무력 항쟁을 이어 가며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독립 정신을 알렸고, 독립 후에는 분열된 겨레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온 힘을 바쳤다. 하지만 김구는 1948년 조국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안두희의 흉탄에 숨을 거두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