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삼득(權三得)은 조선조 정조 때 태어난 사람으로 본명은 사인이다. 삼득은 훗날 그가 세 가지 소리를 얻었다고 하여 별호처럼 붙여진 이름이다. 권삼득은 처음에 사람의 소리를 얻었고, 두 번째는 쇠의 소리를, 세 번째는 짐승의 소리를 얻었다고 하여 후세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 높이 받드는 사람들 중에는 삼득이 처음은 사람, 두 번째는 귀신, 세 번째는 하늘의 소리를 얻었다고 하여 그가 도달한 소리의 경지를 말하기도 한다.
……
권삼득은 이처럼 어릴 때부터 부친이 근심을 할 정도로 공부는 하지 않고 소리에 빠져 있었다. 그는 마을에 소리꾼이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찾아가 귀를 기울이고 밤중에 몰래 들은 소리를 기억하여 따라 부르고는 했다. 특히 그는 흥보가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나는 반드시 소리의 명인이 될 거야.’
권삼득은 틈만 나면 흥보가를 흥얼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남도의 유명한 소리꾼이 마을에 온다는 소문을 들었다. 마을에 행세께나 한다는 양반의 회갑연이 벌어져 근동의 양반들을 모두 초대했다는 것이었다. 권삼득은 소리꾼이 온다는 날 밤중에 몰래 집을 나와 회갑연이 벌어진 양반의 집으로 달려갔다.
--- p.17 '신분을 넘어선 소리의 명인'
금사 김성기는 조선조 영?정조 때 활약한 인물이다. 그의 출생에 대해서 자세한 기록이 없는 바 중인이나 천민 출신이 분명하고 스스로 호를 조은(釣隱)이라고 지었으므로 천민 출신의 여항인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김성기는 상의원(尙衣院) 소속의 궁장(弓匠)이었다. 궁장은 활과 화살을 만드는 사람으로 장인의 부류에 속했다. 활과 화살을 잘 만들었기 때문에 거문고나 가야금도 만들고 퉁소나 피리도 깎았을 것이다.
필자가 목공일을 배울 때 목공소 주인이 손수 기타를 만드는 것을 본 일이 있었다. 이처럼 목공일을 하는 사람들은 나무로 된 악기도 제작할 줄 알았다 쇠를 이용한 악기를 제외한 목제 악기는 이처럼 목공들의 손에서 태어난다.
활장이 김성기는 어느 날 한 인물로부터 거문고를 제작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활만 만들던 김성기는 그 사람의 부탁을 받아 거문고를 만들어 주고 거문고를 탄주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사람의 지시에 의해 거문고를 만들었으나 그가 거문고를 탄주하는 것을 보자 그 오묘하고 신비한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매료되고 말았다.
‘아아,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김성기는 손수 거문고를 하나 만들어서 소리를 내보았다. 그러나 그의 소리는 줄을 퉁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스승이 있어야지 안 되겠어.’
권삼득은 활 만드는 궁장의 일을 팽개치고 거문고를 배우기 시작했다.
--- p.38 '활을 놓고 거문고의 달인이 되다'
아전의 말에 이광덕은 소녀를 쏘아보았다. 소녀는 눈빛이 초롱초롱하고 입매가 야무졌다.
“이 아이는 강보에 있는 어린애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이냐? 네가 어사가 온 소문을 퍼트렸느냐?”
이광덕이 가련을 노려보면서 추궁했다.
“그러하옵니다.”
“당치 않다. 네가 어찌 내가 암행어사로 왔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이냐? 분명히 누군가에게 들은 바가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 들었느냐?”
“들은 일이 없고 소녀가 스스로 깨쳤습니다.”
“어떻게 내가 암행어사라는 것을 알았느냐?”
“소녀가 살고 있는 권번이 길가에 있는데 며칠 전에 날이 따뜻하여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행색이 남루한 비렁뱅이 두 사람이 길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의복과 신이 다 헤어졌으나 손이 희었습니다. 소녀가 헐벗고 굶주린 걸인이 어찌 손이 흴까 의아하게 생각하는데 걸인 한 사람이 옷을 벗어 이를 잡은 뒤에 손이 흰 걸인에게 공손히 건네주자 손이 흰 걸인이 옷을 벗어 처음의 걸인에게 주고 손이 흰 걸인은 그 옷을 입었습니다. 두 사람은 마치 존비(尊卑)인 것 같았습니다. 소녀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주종이 분명한 사람들이 변장한 것은 암행을 하는 어사밖에 없었습니다. 손이 흰 사람은 어사인 것 같았고 예를 다해 섬기는 걸인은 사령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생 어미 월향에게 말했더니 소문이 퍼진 것입니다.”
소녀는 군노사령들이 빽빽하게 도열해 있는 선화당 앞에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함흥 감영의 판관과 종사관들이 일제히 탄복을 했다. 이광덕도 소녀의 총명에 감탄했다.
--- p.81 '맑고 깨끗한 사랑을 노래한 가인'
“짐이 들으니 신라에서 쇠뇌를 만들어 쏘면 1천 보를 나간다고 하는데 지금은 겨우 30보밖에 나가지 않으니 어찌된 일이냐?”
당고종이 은은하게 노기를 띠고 구진천에게 물었다.
“쇠뇌를 만드는 재료가 좋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만약 신라에서 나무를 가져온다면 충분히 1천 보를 나갈 수 있는 쇠뇌를 만들 수 있습니다.”
구진천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구진천이 워낙 태연스럽게 대답을 하자 당고종은 의심을 하지 않고 신라에 사신을 보내 구진천이 원하는 재료를 구해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당나라 대신 복한(福漢)이 신라에 가서 쇠뇌를 만드는 나무를 구해왔다. 구진천은 다시 쇠뇌를 만들었으나 이번에는 60보밖에 나가지 않았다.
“신라에서 활 만드는 재료를 구해왔는데 60보밖에 나가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당고종이 노기를 띠고 물었다.
“신도 까닭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이 곰곰이 생각건대 바다를 건너는 동안 나무에 습기가 스며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구진천이 말했다. 당고종은 비로소 구진천이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대노했다.
“네가 감히 만승의 천자를 속이느냐? 당장 1천 보를 나가는 활을 만들지 않는다면 너희 가족까지 모두 도륙할 것이다.”
“천자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외신도 솔직하게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희는 동방에 있는 작은 나라지만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을 하라고 배웠습니다. 외신이 쇠뇌를 만들어 천자께 바치면 천자는 분명코 이 쇠뇌를 앞세워 신라를 침공할 것인데 신라의 신하된 자로 어찌 쇠뇌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천자를 속인 죄는 벌을 받아 마땅하니 속히 벌을 내리소서.”
--- p.185 '나라를 위해 활을 만든 장인'
고궁에 가면 마치 고색이 완연한 수묵화처럼 풍상에 삭고 빛이 바랜 잿빛 기와의 전(殿)이나 각(閣), 당(堂)의 묵직한 위용을 발견하게 된다. 경복궁의 근정전이 그렇고 창경궁의 인정전과 대조전을 비롯하여 춘추천, 사정전, 희정당, 중희당 등 조선시대의 건축물들이 대부분 잿빛 기와로 되어 있어 고색의 위엄을 자랑한다. 어디 대궐뿐이랴. 조계사, 불국사, 해인사를 비롯한 천 년 사찰도 잿빛의 기와로 덮여 있고 전통 한옥의 지붕을 덮은 기와도 잿빛이다.
고건축들이 모두 잿빛 기와로 되어 있어 우리의 기와 장인들이 잿빛 기와만을 생산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광해군 때에 많은 대궐의 기와들이 청색 기와나 황색 기와로 이루어져 있었다. 특히 청기와는 대궐의 내전에 쓰였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 있고 연산조 때에는 인정전과 선정전, 광해군조에는 영은문의 청기와가 파손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황기와는 천자의 나라인 중국의 대궐에서만 사용하게 되어 있다. 광해군조에 대궐의 지붕을 황기와로 하려고 하자 사관들이 비판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광해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강력하게 영을 내려 황기와를 구우라는 지시를 내렸다.
--- p.212 '대궐의 기와를 황금빛으로 만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