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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188*254*30mm
ISBN13 9788968491535
ISBN10 896849153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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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 자 소 개
김춘섭 : 전남대학교 명예교수(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김태성 : 전남대학교 명예교수(공과대학 전기학과)
김화택 : 전남대학교 명예교수(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
노희관 : 전남대학교 명예교수(사범대학 교육학과)
손광은 : 전남대학교 명예교수(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송희성 : 전 조선대학교 교수(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
윤정한 : 전남대학교 명예교수(공과대학 에너지자원공학과)
이정구 : 전남대학교 명예교수(경영대학 경제학부)
전태갑 : 전남대학교 명예교수(농업생명과학대학 농업경제학과)
정환담 : 전남대학교 명예교수(법과대학 법학과)
지경래 : 전남대학교 명예교수(인문대학 일어일문학과)
최영관 : 전남대학교 명예교수(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
최준원 : 전 조선대학교 교수(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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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동방의 두 문명

강의 목표
인류가 모두 같은 시기에 역사생활과 문화창조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신석기 문화를 일찍 끝내고 최초로 한 단계 높은 문화단계에 들어선 곳은 ‘티그리스-유프라테두강과 이집트의 나일(Nile)강 계곡이었다. 이 두 지역의 문명은 후에 서양문명의 기반이 되었다. BC 3000년경의 일이다.
여기가 바로 ‘고대 동방’(Ancient Orient)이라 불리는 곳이며 오늘날의 터키, 시리아, 이라크, 요르단, 이스라엘, 레바논, 이집트 등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이들 고대 동방에서 꽃 피운 두 문명의 실상을 살펴보고 그 후 그리스와 로마 문명에까지 연결되면서 서양문명의 바탕을 이루는 문명사적 배경을 이해하도록 한다.

강의 내용

1. 이집트 문명

(1) 고대 이집트 문명의 환경적 배경
이집트는 상(上)이집트와 하(下)이집트로 나누어져 인종도 다르고 기후 또한 열대와 아열대로 서로 다른 환경이었다. 나일강변을 따라 형성된 양쪽 비옥한 지대를 제외하고는 주위가 황막한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이집트는 외부 세력의 침입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사회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 따라서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전개되었다. 나일 강은 아프리카 적도에서 시작하여 멀리 지중해로 흘러들어가는 세계 최장의 강으로, 이집트 영역 안으로 들어와서는 폭포가 없이 흐르기 때문에 통상과 교통에 매우 편리한 수단이 되었다. 이집트 문명의 특징은 나일 계곡이 제공해주는 안정감이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나일 강의 범람은, 이집트인으로 하여금 자연은 예측 가능한 것이며 자비로운 것이라고 까지 생각하게 해 주었다.

(2) 이집트의 최초 통일국가의 성립과 문자의 발명
기원전 3100년 경에 이집트의 전체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두 가지 업적, 즉 상 하 이집트의 통일과 문자의 발명이 이루어졌다. 전승에 의하면 이집트의 통일은 한 개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집트의 통일이 여러 세대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집트 통일의 주역으로 전승되어오는 그 한 개인은 메네스(Menes) 또는 나르메르(Narmer)라는 인물이다. 어쨌든 ‘제1왕조’ 여러 명의 지배자가 통일을 이룩할 무렵, 이집트 최초의 문자가 발명되었다. 이 상형문자는 ‘신성한 새김’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히에로글리픽’(Hieroglyphic)으로 불리어 오고, 이는 다시 ‘Hieratic’(神官文字)와 ‘Demotic’(민중문자)으로 나뉘어 사용되었다.
2천년 동안의 이집트 역사는 다음에서 보듯이 6왕국의 총 31왕조로 이어지며 진행되었다.

(3) 이집트 역사의 여러 단계 정치 변화
① 고 왕국(BC 3100~2200)
제1~2왕조(BC 3100~2700): 이집트의 통일
제3~6왕조(BC 2700~2200): 피라미드 건조
② 제1중간기 왕국(BC 2200년~2050): 귀족 계층과 이웃나라의 침공에 의한 집권으로 정치적 혼란기.
제7~10왕조(BC 2200~2050): 지방 분권과 정치적 혼란
③ 중 왕국(BC 2050~1800)
제11~12왕조(BC 2050~1800): 국가적 재건과 정치적 안정
④ 제2중간기 왕국(BC1800~1570): 이민족 침입 통치
제13~17왕조(1800~1570): 힉소스(Hycsos) 민족의 침입과 지배
⑤ 신 왕국(BC 1570~1085): 정신적 예술적 성취를 이룩한 번영의 시기
제18~20왕조(1570~1085): 이집트 제국 건설
⑥ 후기 신 왕국(BC 1085~332): 쇠퇴기 및 이민족 피침
제21~31왕조(BC 1085~332)

이후 순수 이집트인의 왕조는 사라지고 이민족의 침략으로 이루어진 페르시아 왕조와 마케도니아 제국 알렉산드로스의 휘하 장군 ‘프톨레이마이오스’ 왕조로 이어져 BC 31년, 고대 이집트 왕국이 끝날 때까지 진행된다.

페르시아의 이집트 정복(BC 525년 경)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집트 정복 (BC 332년 경)에서 비롯된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os)왕조 (BC 320년 경~BC 31년)

(4) 이집트의 종교와 그들의 신 이야기
태양신 라(Ra) 또는 르(Re)와 각 지방 신
테배(오늘날의 룩소르)의 신 ‘Amon’과 태양신 ‘Re’: 아몬-르(Amon-Re)
사후를 담당하는 신 ‘오시리스’ Osiris): 대지의 신 ‘게브’(Geb)와 천공의 신 ‘누트’(Nut) 사이의 아들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와 아들 호루스

(5) 이집트의 예술과 문화
피라미드(Pyramid)와 스핑크스 (기제(Gizeh)에 있는 고왕국의 왕 쿠프/카프레/멘카우레 3대의 피라미드)
산재해 있는 대규모 신전과 조각들.
도굴되지 않은 투탕카멘(신왕국)의 무덤으로 본 예술적 부장품들.
파피루스(제지 문명의 시초)

2. 메소포타미아 문명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계곡에서 시작한 또 하나의 고대 동방 문명은 늦어도 기원전 3500년경에는 출발했다. 과거에는 이 문명을 ‘바빌로니아’ 혹은 ‘바빌로니아-아시리아’ 문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근래엔 이 문명이 바빌로니인이나 아시리아인보다 더 이른 시기에 원주민인 ‘수메르’(Sumer)인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문명 전체를 포괄하는 지리적 용어인 ‘메소포타미아’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보는 것이다. 메소포타미 아는 ‘두 강 사이의 땅’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1) 수메르인(Sumerians)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원
기원전 3500년 경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계곡 하류에 정착했던 수메르인의 정확한 발원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중앙아시아의 고원 지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2800년경부터 2300년경에 이르기까지 수메르인이 건설한 수 많은 독립적인 도시 국가들이 메소포타미아의 하류 지역에서 번성하였으며, 그 중 가장 중요한 도시 국가는 우르(Ur), 라가시(Lagash)였다.

(2) 구 바빌로니아의 흥망
BC 2000년경에 셈족의 한 부족인 아모리인(Amorites)이 수메르인들의 도시를 정복하고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새로운 제국을 건설했다. 아모리인은 수도를 유프라테스 강 하류의 도시 ‘바빌론’을 제국의 수도로 정했기 때문에 바빌로니아, 훗날 칼데아인이 세운 신 바빌로니아와 구별하기 위해 ‘구 바빌로니아’라 부른다. 이 구바빌로니아의 흥기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수메르 문명 이후 두 번째 중요한 단계였다. 바빌로니아는 인류 최초의 법전을 만든 ‘함무라비’ 왕 시대(BC 1792~1750) 때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함무라비 이후 구 바빌로니아 제국은 점차 쇠퇴하여 BC 1550년 경에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했다.

(3) 아시리아(Assyria)의 흥망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서 티그리스 강 상류를 중심으로 번성한 아시리아의 명칭은 중심 지역인 아수르(Assur) 고원에서 유래했다. 이들 아시리아인들의 패권 장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달의 세 번째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들 아시리아 제국은 기원전 8~세기, 사르곤 2세 시기에 전성기를 누렸다. 그들은 북부 티그리스 강가에 거대한 신도시 ‘니느베’(Nineveh)를 건설하고 수도로 정했다. 아시리아 제국은 이제 근동 지방 거의 전부를 장악하게 되었다. 그들은 시리아, 페니키아, 이스라엘 왕국, 이집트 등을 차례로 정복해 나갔다.

(4) 신 바빌로니아의 흥망
메소포타미아의 새로운 문명은 칼데아인들이 건설한 신 바빌로니아에 의해 무너졌다. 아시리아인들의 정부 관리 능력은 그들의 정복 능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들에게 정복당한 나라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전제적 압박에 분노했으며, 제국이 내부로부터 분열될 조짐을 보이자 자유르 되찾기로 결심했다. 아시리아아 제국에 치명타를 가한 사람들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남쪽 계곡에 자리 잡고 있던 셈족 계통의 ‘칼데아’인들이었다. 속주 총독 자격으로 아시리아 황제를 섬겼던 ‘나보폴라싸르’의 영도아래 칼데아인들은 조직화했고, 마침내 그들은 기원전 612년에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베’를 함락했다. 이리하여 이들 칼데아인들이 세운 신 바빌로니아를 가장 번성시킨 왕은 ‘네부카드네자르’(Nebuchadnezar)였는데 그는 남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유테인 포로들을 수도 바빌론으로 압송해옴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대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우리 말 구약성서에는 ‘느붓갓네살’로 표기되어 있다. BC 559년 페르시아의 키루스에 멸망했다.

(5) 페르시아(Persia) 제국의 등장과 동방세계의 통일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는 당시 또 하나의 강대한 제국이었던 ‘메디아’(Media)왕국의 속국인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에서 발원했다. ‘페르시아’는 오늘날의 이란 남서부 해안 지역의 사람을 지칭하는 파르스(Fars)인을 라틴어화한 명칭이다. 기원전 50년에 페르세폴리스의 ‘키루스’(Cyrus)라는 지방군주가 나타나 메디아 왕국의 지배를 뒤엎고 이어서 주변 지역까지 정복에 나섰다. 이제 그는 ‘키루스 대왕’이라 불리면 서 가장 경이로운 정복자의 한 사람으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이후 20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그는 과거 어느 제국보다도 큰,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것이다.

① 키루스(Cyrus)의 정복활동
메디아, 신 바빌로니아, 시리아, 이스라엘, 소아시아의 리디아 왕국 등
② 키루스 이후의 왕들
캄비세스 2세, 크세르크세스, 다리우스 1세와 다리우스 3세 등 10명의 군주
③ 종교: 조로아스터(짜라투스트라)교
④ BC 330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멸망
⑤ 아케메네스(Achaemenes)조 페르시아(BC 550~330)
사산(Sasan)조 페르시아(AD 226~651)


고대 그리스의 사회와 문화
- 역사와 신화의 인문학적 변용과 ‘비극’의 탄생

강의 목표
고대 동방문명(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페르시아에 의해 정치적으로 원숙기에 도달할 즈음, 에게(Aege)해 연안 반도에서는 새로운 문명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그것은 BC 1200년 경 선착 ‘미케네(Mycenae)’ 문명이 사라지고 4백여 년의 암흑시대가 지나간 뒤, BC 600년대에 이르러 가장 창의적인 단계로 접어든 그리스 문명이었다. 그리스 사회는 고대 동방의 신정적(神政的)이며 전제 사회와는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사회 조직은 소단위이며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폴리스(Polis)로 구성되었다. 대표적인 도시 국가인 아테네(Athene)에서는 일찍이 왕정이 사라지고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정이 실현되었다. 개인의 개성 발휘가 전혀 제약받지 않은 이 사회에서는 창의성이 매우 높은 문화가 형성되어 갔다는 인문적 바탕을 이해하도록 한다.
중세 이후 ‘서구적’인 모든 것은 이와 같은 고대 그리스의 문화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서양문명의 독특한 철학과 역사학과 문학(시와 연극)은 물론 건축과 조각, 그리고 자유로운 정치제도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리스 시대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강의 내용

1. 폴리스의 기원과 발전

BC 1200~1100년 경, 미케네 세계가 파괴되고 사라진 이후 약 4백년간은 그리스 역사에서 ‘암흑시대’로 불린다. 이 암흑시대가 끝나는 BC 8백년 경부터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에게 해 연안 일대의 민족들이 각기 살아갈 터전을 향해 대규모 이주가 이루어졌다. 일찍이 아티카(Attika) 지방에 정착한 이오니아(Ionia)인이 다시 소아시아 연안으로 이주 정착하여 이곳은 ‘이오니아’라 불리게 되었다. 아카이아(Achaea)인은 남서쪽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미케네를 정복하고 다시 소아시아 북동쪽의 트로이(Troy)까지 이동하였다.
그리스인은 대체로 이 무렵 씨족 공동체와 같은 혈연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사회적 단위는 씨족(genos)→문족(phratria)→부족(phyle)이었다. 토지의 사회화가 시작되면서 종래의 혈연사회가 지연사회(地緣社會)로 바뀌었고 마침내 BC 9-8세기 경에는 국가 체제의 폴리스(Polis-Poleis)가 성립하였다. 폴리스를 ‘도시국가’로 번역해 사용하지만 정확한 역어는 아닌 것 같다. 도시국가 안에도 ‘농촌’이 존재했고, 도시가 국가를 통치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폴리스에는 수호신이 있는 신전이나 제단, 그리고 공공 기념물이 있는 ‘아크로폴리스’가 중앙 언덕 위에 있고 공공 광장이나 정치적인 집회 장소, 또는 시장 역할을 하는 ‘아고라(Agora)’를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폴리스는 그리스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 산재해 있었다. 즉 그리스 본토(아테네가 있는 ‘아티카’ 지방)에는 아테네, 테배(Thebes), 메가라(Megara)등의 도시국가가 있었고 펠레폰네소스 반도에는 스파르타와 코린토스(Corinthos)가 있었다. 소아시아 해안에는 밀레토스(Miletos)가 있었으며, 에게 해의 섬 지방에도 사모스(Samos)와 레스보스(Lesbos), 로도스(Rodos) 등 여러 폴리스가 존재했다. 이들 많은 폴리스 중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도시국가는 스파르타(Sparta)와 아테네(Athene)였으며, 특히 아테네야말로 고대 그리스 역사의 실상이었다.

2. 아테네의 정치와 문화, 그 승리와 비극
(1) 아테네인의 이상과 문화
“우리는 아름다움을 사랑하지만 사치하지 않으며, 지혜를 사랑하지만 나약한 의지에는 빠지지 않는다. 우리는 부를 개인적 과시의 수단이 아니라 공공의 봉사를 위한 도구로 생각한다. 우리는 가난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으며, 다만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을 수치로 생각한다. 우리는 사람이 개인적인 일 뿐만 아니라 공적인 일에도 관여해야 한다고 믿거니와, 이는 우리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무관심한 자로서만 아니라 쓸모없는 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위의 글은 아테네를 통치하던 ‘10인 군사위원회’의 위원장직을 30년간이나 지내면서 아테네 민주주의 정치 환경을 완성시킨 페리클레스(Pericles)장군 연설문 중의 한 부분이다. ‘아테네인의 이상’에 관한 최고 통치자로서의 견해를 피력한 연설문이었다. BC 3세기 경 아테네의 전성기 당시 아테네 시민의 긍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대 세계의 모든 문화들 중에서 서양 사회의 정신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준 것이 아마도 이러한 그리스인의 이상적 성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그리스 인 만큼 ‘자유’를 위해 헌신적이었던, 그리고 인간 업적의 고귀함에 대한 믿음을 그토록 굳건히 지켰던 민족은 없었다. 우주 만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서 인간을 찬양했다. 권력자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거부했으며, 심지어 자신들이 믿는 신 앞에 굴복하는 것마저도 거부했다. 그들은 자유로운 탐구의 정신을 찬양하였으며, 지식을 신앙보다 우월하게 생각했다. 이러한 인간관은 앞으로 살펴보게 될 신화와 ‘비극’의 내면에도 면면히 스며들어 있다.

(2) 왕정에서 귀족 과두정(寡頭政)으로
BC 7세기 중엽까지 아테네는 그리스의 다른 폴리스와 마찬가지로 왕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후 ‘귀족회의’가 점차 왕의 권력을 박탈하고 귀족의 ‘과두체제’로 이행해 갔다. 귀족과두제 시대에는 대규모 해외 식민이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무역과 산업은 크게 발전되었다. 그러나 체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소 농민들은 경제적으로 너무 피폐해져만 갔다. 부가 귀족들에게 편중되어갔기 때문이다.

(3) 혁명의 위협과 ‘솔론’(Solon)의 개혁
이제 농민들의 절규가 하늘에 사무쳤다. 도시 중간계급은 농민을 지지하면서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BC 594년에 모든 당파는 귀족 출신인 ‘솔론’을 집정관으로 임명하는 데에 합의하고 그에게 개혁을 수행할 절대권을 부여했다.

(4) 참주정(僭主政)의 등장
솔론의 개혁은 중대한 의의를 가진 것이었지만 아테네 시민의 불만을 무마하지는 못했다. 귀족들 또한 그들의 특권 중 일부가 상실된 데 대해 불만을 품었다. 이어지는 혼란과 환멸 가운데 기원전 560년에 아테네 최초의 참주인 ‘페이시스트라토스’(Peisistratos)가 집권하게 되었다. 그는 자애로운 군주로서 문화를 후원하고 귀족의 권한을 축소시켰으며, 시민의 생활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그를 계승한 아들 ‘히피아스’의 무자비한 전횡으로 귀족들에 의해 전복되었다.

(5) 클레이스테네스(Kleisthenes)의 등장과 민주정의 정착
참주정이 전복된 후 귀족 출신의 지적인 인물 ‘클레이스테네스’(Kleisthenes)가 민중의 지지를 얻어 통치를 위임 받아 급격한 개혁 작업을 단행했다. 이리하여 그후 그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① 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
② 오백인회, 민회의 권한 확대(법안 채택 결정권, 예산 편성권, 전쟁 선포권)
③ 도편(陶片)추방제도 제도(BC 487)

(6) 페리클레스(Pericles)와 아테네 민주주의의 완성
아테네 민주주의는 ‘페리클레스’ 시대에 완성되었다. 이 시기에 ‘10인 군사위원회’가 최고 통치기구였는데 군사위원회 장군들은 1년 임기로 민회에서 선출되었고, 무제한 제선이 가능했다. 페리클레스는 최고 군사 위원, 또는 군사위원장의 지위를 30년이 이상이나 유지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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