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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광용 | 명상 | 2000년 08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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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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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0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2321859
ISBN10 897232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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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경상북도 안동 땅은 양반 마을로 유명했다. 이 마을에 마음씨 착한 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과거 보러 갈 여비조차 없었다. 가난한 선비는 동구 밖에 나와 먼발치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그저 한숨만 짓고 있었다. 쓸쓸한 걸음걸이로 귀가하는 길에, 마침 선비는 밥 빌어 먹는 바가지를 두드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거지를 만났다. 선비가 보기에 그 거지의 웃는 얼굴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여보게, 그대는 거지 주제에 뭐가 그리 즐거운가?"

선비가 묻자, 거지는 헤헤헤 웃으며 말했다.

"선비님! 보시다시피 저는 거지올시다. 거지는 밥을 빌어 먹는 게 일인데, 방금 배불리 얻어 먹었으니 오늘 할 일은 다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즐거울 수밖에요."
"허허허! 거지 팔자가 상팔자라더지, 천상 너야말로 거지밖에 못 될 인간이로구나."

선비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마침 어머니와 아네가 머리카락을 잘라 노비를 마련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선비는 차라리 과거 시험을 보러 가지 않겠다고 우겼지만, 어머니와 아내의 정성을 더 이상 뿌리칠 수가 없었다. 마침내 선비가 조그만 괴나리 봇짐을 걸머지고 집을 나서는데, 어디선가 숨어 있던 거지가 톡 튀어나와 인사를 했다.

"선비님도 과거 시험을 보러 가시는 길이군요?"
"그렇다네."

선비는 차마 거지 앞에 눈물을 보일 수가 없어 외면을 하고 말했다. 머리에 흰 수건을 쓴 어머니와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선비는 눈물이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p.11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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