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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시아의 꽃 1

프렌시아의 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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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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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년 11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496쪽 | 671g | 148*210*24mm
ISBN13 9791132200932
ISBN10 113220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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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죽이고 살아가는 것에 이 남자는 이미 이골이 난 게 아닐까 하고. 그도 처음에는 죄책감을 느꼈겠지. 지금은 그 죄책감이라는 감정 자체가 닳아 문드러진 걸 것이고.
남자의 표정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무표정하게만 보이던 그 얼굴에 아주 작은 감정이 보였다.
그것은 분노와 고요로만 뒤범벅되어 있었다. 어째서 그런 충동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내 팔이 머리와는 동떨어진 독자적 행동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나는 다만, 남자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다음부턴 조금만 참아 주세요. 난 정말 징역살이 정도로 충분했었거든요.”
팔을 뻗어 남자의 허리를 둘렀다. 남자는 육체까지도 차가웠다. 신장의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대야만 했지만 이것만으로도 괜찮았다.
포옹이라는 것은 그러했다. 누군가 팔을 두르면 상대방도 따라서 팔을 둘러야 했다. 하지만 남자는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으면서 말이다.
나는 조금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남자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표정이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남자는 낯설어하고 있었다. 안아준다는 행동 자체를 어색해하고 있었다. 나는 작게 키득거리고는 그의 몸에서 떨어졌다.
남자가 특유의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따뜻하군.”
그 말에 열이 올랐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 말에 열이 올랐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 기분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었다. 나는 인사말을 건네고 그와 반대편으로 걸어가려 했다. 어쩌다가 왕과 만나기는 했지만 문양을 받아 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회성 테스트는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다짜고짜 그에게 문양을 달라고 하는 것도 별로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사회성을 가르치는 그녀에게 빈 종이를 보여주면 어떻게 반응할까. 연갈색 종이가 있을 옷에 난 작은 주머니를 더듬어보았다.
“어?”
오른쪽 주머니에 이어 왼쪽 주머니도 뒤져보았지만 종이는 없었다.
종이까지 잃어버린 건가. 나도 모르게 어깨가 늘어졌다. 빈손으로 가는 게 제일 최악인데. 나는 나에 대한 한탄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옆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연갈색 종이였다. 나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왕이 연갈색 종이를 들고 있었다.
“문양을 등록할 수 있는 특수 종이군.”
“아, 그게…… 모아 가야 하거든요.”
하나도 모으지는 못했지만. 왕도 충분히 그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손에서 연갈색 종이를 빼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빨랐다.
종이는 내 손에 닿기도 전에 허공으로 떠올랐다. 놀라서 그를 보았을 때는 벌써 그가 눈을 감은 채 의미 모를 단어들을 내뱉고 있었다. 신비로운 어감이었다.
바닥은 남자의 눈동자 색을 닮은 보라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은빛으로 물든 주위에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는 돌연 눈을 떠 정면을 바라보았다. 보랏빛 눈이 번쩍거렸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복도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후였다. 손 위로 종이의 질감이 느껴졌지만 그것은 이제 연갈색이라고 할 수 없었다. 연갈색의 종이는 은빛의 종이가 되어 보라색의 커다란 문양을 담아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문양이었다. 큰 원 안에 커다란 날개 두 개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생동감 넘치게 묘사되어 있었고 주위에는 역시 고급스러운 낙서처럼 보이는 프렌시아어가 그려져 있었다. 날개의 배경에는 눈동자처럼 보이는 그림도 새겨져 있었다. 그 문양을 보자 왠지 모르게 서늘함이 밀려왔다. 남자와 똑 닮은 문양이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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