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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시아의 꽃 세트

프렌시아의 꽃 세트

[ 전2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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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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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4년 11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1008쪽 | 1300g | 148*210*80mm
ISBN13 9791132200925
ISBN10 113220092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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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죽이고 살아가는 것에 이 남자는 이미 이골이 난 게 아닐까 하고. 그도 처음에는 죄책감을 느꼈겠지. 지금은 그 죄책감이라는 감정 자체가 닳아 문드러진 걸 것이고.
남자의 표정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무표정하게만 보이던 그 얼굴에 아주 작은 감정이 보였다.
그것은 분노와 고요로만 뒤범벅되어 있었다. 어째서 그런 충동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내 팔이 머리와는 동떨어진 독자적 행동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나는 다만, 남자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다음부턴 조금만 참아 주세요. 난 정말 징역살이 정도로 충분했었거든요.”
팔을 뻗어 남자의 허리를 둘렀다. 남자는 육체까지도 차가웠다. 신장의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대야만 했지만 이것만으로도 괜찮았다.
포옹이라는 것은 그러했다. 누군가 팔을 두르면 상대방도 따라서 팔을 둘러야 했다. 하지만 남자는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조금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으면서 말이다.
나는 조금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남자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표정이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남자는 낯설어하고 있었다. 안아준다는 행동 자체를 어색해하고 있었다. 나는 작게 키득거리고는 그의 몸에서 떨어졌다.
남자가 특유의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따뜻하군.”
그 말에 열이 올랐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 말에 열이 올랐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 기분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었다. 나는 인사말을 건네고 그와 반대편으로 걸어가려 했다. 어쩌다가 왕과 만나기는 했지만 문양을 받아 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회성 테스트는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다짜고짜 그에게 문양을 달라고 하는 것도 별로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사회성을 가르치는 그녀에게 빈 종이를 보여주면 어떻게 반응할까. 연갈색 종이가 있을 옷에 난 작은 주머니를 더듬어보았다.
“어?”
오른쪽 주머니에 이어 왼쪽 주머니도 뒤져보았지만 종이는 없었다.
종이까지 잃어버린 건가. 나도 모르게 어깨가 늘어졌다. 빈손으로 가는 게 제일 최악인데. 나는 나에 대한 한탄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옆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연갈색 종이였다. 나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왕이 연갈색 종이를 들고 있었다.
“문양을 등록할 수 있는 특수 종이군.”
“아, 그게…… 모아 가야 하거든요.”
하나도 모으지는 못했지만. 왕도 충분히 그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손에서 연갈색 종이를 빼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빨랐다.
종이는 내 손에 닿기도 전에 허공으로 떠올랐다. 놀라서 그를 보았을 때는 벌써 그가 눈을 감은 채 의미 모를 단어들을 내뱉고 있었다. 신비로운 어감이었다.
바닥은 남자의 눈동자 색을 닮은 보라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은빛으로 물든 주위에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는 돌연 눈을 떠 정면을 바라보았다. 보랏빛 눈이 번쩍거렸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복도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후였다. 손 위로 종이의 질감이 느껴졌지만 그것은 이제 연갈색이라고 할 수 없었다. 연갈색의 종이는 은빛의 종이가 되어 보라색의 커다란 문양을 담아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문양이었다. 큰 원 안에 커다란 날개 두 개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생동감 넘치게 묘사되어 있었고 주위에는 역시 고급스러운 낙서처럼 보이는 프렌시아어가 그려져 있었다. 날개의 배경에는 눈동자처럼 보이는 그림도 새겨져 있었다. 그 문양을 보자 왠지 모르게 서늘함이 밀려왔다. 남자와 똑 닮은 문양이었다. --- 1권 중에서


그 순간이었다. 그로 하여금 거대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온몸에 소름을 돋게 할 만큼 지독한 살의가 담긴 진동에 나는 몸을 움찔하면서 생각했다. 그는 저 울음을 참고 있었던 거구나.
저건 달리기 경주에서의 총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의 진정한 실체화가 시작된 것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나와 닿아있던 입술을 떨어뜨려냈다. 두려울 만큼 커다란 금속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는 자신의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한 채 사지를 움직여 자신을 방해하는 족쇄들을 풀어내려고 안간힘 쓰고 있었다.
나는 저 족쇄가 그로 말미암아 생길 피해들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몸짓이 안타까웠다. 족쇄를 풀어주는 건 미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족쇄로 인해 파랗다 못해 검게 변해가는 그의 손목과 발목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불필요한 움직임으로 인해 상처가 벌어져 비늘과 깃털 사이로 선혈이 후두두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걸 보고만 있어…….”
내면의 내가 바랐던 것인지. 천장으로 들려 있던 그의 팔이 떨어져 내린 것은 금방이었다. 그의 사지를 옥죄고 있던 사슬과 쇳덩어리들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자유가 되자마자 그는 기지개 켜듯 자신의 거대한 날개를 양쪽으로 펴고 내게 달려들었다. 살의가 흉흉한 안광을 빛내며 내게 날아오는 그를 피하지 않았다. 내게 닿으려 하는 그의 송곳니가 단번에 반 뼘의 크기로 커졌다. 물어뜯기는 것일까. 순간 반려자 중 물어뜯겨 죽은 이가 있다고 말했던 제레미가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죽을 수 없다. 혹시라도 그가 이성을 차렸을 때 자괴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할 순 없었다.
나를 지켜주었던 그를 이번에는 내가 지켜주어야 했다.
그가 내 목 언저리에 커다란 송곳니를 처박으려고 하기 직전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얀.”
거짓말처럼 그의 행동이 멈췄다. 이 멈춤은 지극히 본능적인 것이었다. 그것보다 더욱 원초적인 성질을 가진 실체화가 그를 다시 잡아먹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몇 초안에 나는 그를 제정신으로 돌려놓아야 했다.
그는 숙였던 고개를 삐걱거리며 들었다. 동공이 보이지 않을 만큼 검게 물든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는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그의 은발이 내 볼을 스쳤다.
나는 지금이 바로 내가 하려던 그 말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을 직감했다. 당신을 보면서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참 하고 싶었던 말인데 말을 꺼내는 순간 내 감정이 왜곡되어 버릴까 봐 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그의 얼굴을 감싸 올리며 눈물로 그렁그렁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선명해진 시야 속 당신의 얼굴은 참 낯설다. 내게는 익숙지 못한 문신과 검붉은 비늘이 지금 당신의 얼굴을 뒤덮고 있지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여전히 아름답다. 당신이 내가 모르는 완전히 다른 모양새로 바뀌어버린다 해도 나는 똑같이 생각할 거다. 나는, 당신을.
“……정말 많이 좋아하고 있어요.”
그때였다. 나를 보는 그의 눈동자에 놀랍게도 예의 그 보랏빛이 천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의 송곳니가 작아지는 듯싶더니 그의 눈가의 문신도 소용돌이치며 사라졌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내 목덜미를 탐할 듯 단번에 고개를 숙여왔다. 내가 그를 멈추는 것에 실패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허탈감이 든 순간 그가 방향을 틀어 자신의 입술을 내 목이 아닌 내 입술에 맞춰왔을 때 느껴진 것은 찌르르한 어떤 것이었다.
--- 2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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