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꿈꾸는 통일한국은 닥쳐오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고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꿈꾸는 통일 사회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이루었던 독일의 경우에는 갑자기 통일이 이루어져 통일 이후 큰 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통일 후유증이 극심해 통일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후유증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물리적 장벽은 무너졌지만 심리적 장벽은 여전히 견고하게 세워져 있고, 이 점이 통일 독일의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12쪽)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많은 국민이 교육을 받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러한 교육 수준을 통해 개인의 삶에서 기회가 확대되었고, 우수한 인적자원을 개발해서 국가발전에 기여했다.
그러나 양적인 기회 확대가 삶의 기회를 확대하고 삶의 질을 제고했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평가가 필요하다. 우수한 인적자원 개발이 국가 경제발전에는 분명 기여했지만, 개인의 삶의 질과 만족도는 여전히 낮고 사회의 질적 발전 역시 더딘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높은 고등교육 이수율은 양질의 고급 인적자원을 풍부하게 소유하게 된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한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매우 고무적인 현상으로 판단되나, 동시에 지나친 고학력화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일어나 대졸자 취업난, 하향 취업 등의 사회적 문제도 일으키고 있다.
--- p.22
과당 경쟁은 사회적·경제적 손실을 불러오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극심한 경쟁 스트레스도 준다. 경쟁 스트레스는 삶의 만족도를 저하시키고, 정신 건강을 손상시킨다. 미국의 AP통신이 2006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81%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응답해서, 조사 대상 10개국 중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한국 학생의 삶의 만족도는 OECD 최하위 수준이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공부와 경쟁에서 생긴 압박감 때문에 스트레스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3년은 지속가능한 교육경쟁력(특히, 우수 인재 개발)에서 아킬레스건이다. 서구 선진국의 경우 고등학교 3년 동안 고차적 사고 능력, 토론 능력, 자기주도 학습 능력을 집중 훈련해서 대학수학능력을 키우고 있다. 한국의 경우 시험지식 교육, 문제풀이 교육, 타인의 도움에 의존하는 교육으로 막대한 능력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고차적 사고능력 개발이 거의 불가능하고, 창의성 개발 및 인성 교육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
--- p.48~49
많은 나라에서 예습을 금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습을 해오면 아이들의 수업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경우 예습을 넘어 한 학기 혹은 몇 년을 앞선 선행교육이 만연하고, 이런 것이 주요한 흐름으로 형성되다 보니 학교교육을 왜곡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때문에 선행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들이 정상적인 학교 수업에서 충실하게 배울 수가 없는 왜곡도 일어나고 있다.
--- p.99
한국을 포함한 일본, 중국, 대만, 북한 등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은 교육을 ‘선발과 배제’의 틀로 보는 전통을 유지해왔다. 즉, 과거제의 전통이 보여주듯, 교육은 일정한 사회적 선발 과정을 통과해 사회적 재화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존재했다. 그러다 보니 교육을 통해 모든 사람이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개발해가는 본래적인 목적은 사라지고, 시험을 통과해서 부와 권력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교육이 왜곡되었다. 이렇게 일정한 교육을 받은 이후에 주어진 선발 과정을 통과하는 것이 중요해지자 이 선발 과정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이 과도하게 강조되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공정성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교육적 타당성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 p.116~117
지금까지 고교평준화의 틀을 깨고 특목고와 자사고를 설립할 때의 명분은 교육과정의 다양화와 자율성이었다. 이 부분은 충분히 명분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특목고나 자사고에 교육과정의 다양화와 특성화만 허용한 것이 아니라 학생 선발 특혜를 함께 준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육과정의 다양화나 특성화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다양한 학교들이 획일적인 입시 교육을 강화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즉, 다양한 교육과정의 운영보다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대입 명문학교를 만드는 일에 집중을 한 것이다.
학벌주의와 대학서열 체제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고, 그 병목 역할을 하고 있는 고등학교의 현실을 생각할 때 고교의 교육과정은 얼마든지 다양화·특성화를 하되 고교 입시에서 성적에 의한 선발 특혜는 막아야 한다. 그래야 중학교 교육이 고교 입시의 영향에서 벗어나 정상화의 길을 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에만 수업의 내용과 방법, 평가에서 외압을 받지 않고 혁신할 수 있다.
--- p.119
(북한에서는) 학생 교육을 위해 학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다. 무상의무교육이라고 하지만 교과서조차 전체 학생에게 제공되지 못하는 현실임을 알 수 있다. 교과서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교과서를 지급받기 위해 교사에게 사적으로 선물이나 현금을 지급하거나, 장마당에서 교과서를 구입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가가 지급하는 학교 예산이 부족해지면서 2002년 이후부터는 교육 부담의 70% 정도를 주민들이 감당해야 했는데 연필, 종이 등 학용품은 물론이고 학교 건축, 학교 건물 관리, 그리고 겨울철 땔감용 나무까지도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부담시켰다고 한다. 2012년 통일연구원의 조사결과에서는 응답자의 82%가 학부모의 비공식적 교육부담 여부와 관련해 부담스럽다고 답했으며(매우 부담 52.9%), 비공식적 교육부담은 기타 학교 외 시설지원, 교원식사 대접, 촌지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 p.178~179
북한의 사교육은 최근 공교육과 함께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과목도 다양해서 무용, 악기, 성악, 스포츠, 미술 등 예체능 과목에서부터 영어, 수학, 컴퓨터 등 주요 과목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에서의 사교육은 남한의 사교육 같이 학원 형태이거나 공교육을 위협할 정도로 보편화된 것은 아니지만 의식의 변화가 보이고 있다. 즉, 집단주의 사회인 북한에서도 가정의 경제력을 배경으로 자기 자녀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 돈을 투자하고 그 결과를 성취해낼 수 있다는 의식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p.184
통일한국의 남북한 통합교육이 실현되는 과정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다. 통일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비롯해서 정치, 경제, 문화, 이념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에서 제안한 통일한국 교육의 청사진이 어느 정도 현실적인 방안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좀 더 정치적·경제적 상황을 보면서 통일 후 교육에 대해서 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각 분야별로 통일한국의 모습을 디자인하고 그 미래상을 향한 준비를 지금부터 해나가야 한다. 통일은 막연히 기다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통일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자들이 앞당길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통일한국의 모습을 비전으로 갖게 될 때 그 비전이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p.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