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회사에게 지역독점을 인정해 주는 대신에 정부는 요금을 규제하지만, 요금규제 방식은 총괄원가 방식, 즉 사업에 드는 비용에 일정 보수율(報酬率)을 곱한 금액을 자동적으로 소비자에게 받아내는 구조였다.
전력 비즈니스의 실제 구조를 모르는 정부는 사업에 드는 비용 자체를 매우 허술하게 조사했고, 비용을 쓰면 쓸수록 보수가 증가하므로 전력회사 입장에서는 더 많은 비용을 쓰려는 동기가 생겼다. 따라서 전력회사가 발주하는 자재 조달, 연료 구입, 공사 발주, 검침·수금 업무 위탁, 시설 정비나 청소 업무 등은 일반 상장회사와 비교해 20퍼센트 정도 높았다.
협력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20퍼센트 높은 단가로 일을 주는 전력회사는 매우 고마운 존재이고, 이익률이 조금 줄어든다고 해도 반드시 거래를 유지해야 하는 고객이다.
고지마는 거래처에 초과이윤 20퍼센트 중 5퍼센트를 전력회사를 중심으로 한 거래처의 번영 유지를 위한 예탁금으로 내줄 것을 제안했다. 거래처 중에서 마음이 맞는 친밀한 기업을 ‘도에이카이’라는 이름으로 조직화하여 각 사의 수주액 중 4퍼센트 정도를 도에이카이에 예탁하는 방식이었다.
연료 구입비를 제외하더라도 간토전력의 외부 발주 금액은 연간 2조 엔 정도로 약 800억 엔이 형식적으로는 수주 회사가 도에이카이에 예탁하는 돈, 즉 실질적으로는 간토전력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돈이 된다. _63~64P
현재 대중은 원시인보다 거칠고 멍청하며 단순하다.
태양열이나 풍력과 같은 에너지가 싸고 풍부하게 공급된다면 물론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환경운동가들은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석유나 석탄과 같은 화석에너지를 온실가스의 원인이라며 혐오했다.
태양열이나 풍력은 날씨에 좌우되고 바람에 맡겨야 한다는 사실이 명백하고, 안정적인 주 전기 공급원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전기세는 세 배로 뛴다.
원자력 가격에는 폐로 비용이나 사고 대응에 필요한 비용, 방사성 폐기물의 처분 비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이 비용은 먼 훗날에 발생할 것이다. 미래에 비용이 아무리 발생한다고 해도 이를 현재 가치로 되돌리면 그리 큰 차이가 없다.
--- p.77~78
니자키현지사 이즈타는 언제나 합리적인 주장을 펼친다. 게다가 매우 명쾌하다. 지역 지지율도 80퍼센트로 전국 1위이며 절대적 인 지지를 얻고 있다. 측근들도 모두 정직하고 청렴결백하다.
겨우 정권이 바뀌고 네지레국회가 해소되어 원전 재가동을 향한 반격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원전 마피아는 벌써부터 공이 내리막길을 굴러가듯 재가동은 문제없을 거라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제 남은 문제는 니자키현지사뿐이다. 이 사람을 어떻게 하면 끌어내릴 수 있을까?
--- p.110
전체적으로 보면 고지마가 참의원 선거 당일 밤에 썼던 ‘앞으로의 과제’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재가동, 전력 시스템 개혁의 적정화, 여론대책. 적어도 고지마가 조종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거의 최고의 시나리오로 전개되고 있었다.
군량이 바닥나기 전에 정치가나 언론을 꼼짝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원자력규제청의 자잘한 공무원의 정보 누설 따위로 여론을 이전으로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간토전력은 하루라도 빨리 니자키원전을 재가동해야 한다.
--- p.194
차갑다. 책을 다 읽고 난 첫 느낌이다. 소설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한 이 책은 원자력발전이라는 몬스터 시스템, 그리고 그 시스템 내에서 눈먼(시야 상실= 화이트아웃) 사람들에 대한 ‘차가운’ 보고서다. 왜냐하면 이 책은 성선설 따윈 접어두라고 외치기 때문이다. 책에서 일어나는 원전 사고의 원인인 ‘테러’는, 테러의 가능성을 배제한 채 자연재해에 대해서만 대비한, 즉 ‘성선설’에 입각한 원자력발전 시스템의 취약점을 파고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성선설에 입각한 시스템은, 원자력발전은 견고한 이익공동체의 밑천일 뿐 사고의 위험과 피해는 상관하지 않는 원전 마피아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성선설은 원전을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적용 가능할까? 다시 말해 '성선설'에 입각해 원전을 반대하는 시민들을 더욱 많이 만들어내면 탈원전은 자연스럽게 실현될까? 이 책은 결코 그럴 수 없는 차가운 현실도 보여준다. 몬스터 시스템은 상상 이상으로 견고하다. 간담을 더 서늘하게 만드는 것은 소설의 마지막 메시지다. 원자력발전소는 원전 마피아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든 장악하지 못하든 언제나 위험하며, 사고는 지독히도 낮은 확률의 모든 우연이 만나 일어나고야 만다. 그리고 일단 사고가 일어나면 모두 알고 있었겠지만 당장 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오류들이 한꺼번에 터져 참사를 향해 전력 질주한다. 돌이켜 보면 참사는 늘 그렇게 왔다. 원전에 관심 없는 사람, 원전을 없애고 싶은 사람 그리고 ‘원전 마피아’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보아 (녹색당 탈핵특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