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에서 사상이 된 철학서
기호는 사람들끼리 맺은 약속이다. 『주역』도 마찬가지다. 『주역』의 세계는 자연을 모사한 데서 비롯된 것이지만 온전히 자연의 것이라기보다는 인류가 발견한 기호와 상징의 체계로 이해된다. 창작한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이 기호체계를 지키기로 약속하지 않는다면 『주역』의 기호와 문자는 단지 암호로만 남게 되고, 서로 약속을 지켰을 때 비로소 하나의 문자로 역할하게 된다. 『주역』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연구되었다는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해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도 계속해서 여러 주석서가 나왔다. 우리나라는 『주역』에 토를 달아 읽은 것이 특징인데, 이를 통해 『주역』을 우리 것으로 소화해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역』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설명이 이미 나와 있음에도 『주역』은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으며, 이를 해석하는 관점 역시 난무한 상황이다. 이 책은 『주역』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석의 방법론을 중심으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구성과 개념, 역사 등을 설명하고, 원전과 원문도 함께 살펴본다.
『주역』은 어떻게 구성되나
『주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구조와 개념들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주역』은 경과 전 두 부분으로 되어 있고, 괘와 괘효사가 경이며 이외의 것은 모두 전이다. 괘는 모두 64개이고, 한 괘에는 획이 6개씩 있다. 1획에서 6획까지 아래에서부터 위로 위치에 따라 초, 2, 3, 4, 5, 상획으로 불린다. 획은 양획과 음획 두 가지인데 양획은 튼튼하고 성질이 굳센 강획이고 음획은 부드럽고 비어 있으며 성질이 유약하기에 유획이다. 강유의 성질을 갖는 두 획이 각각 6개로 중첩되어 있는 것이 하나의 괘이고, 이것이 64개다. 64괘는 대성괘·중괘라 불리기도 한다. 3획씩 8종으로 되어 있는 괘는 8괘로 이는 소성괘 혹은 단괘라 한다. 괘마다 한두 마디의 글이 달려 있는데 이것을 괘사라 하고, 6개의 효마다 달려 있는 글은 효사라 한다.
예를 들어 건괘의 괘사 “건, 원형이정‘건’이 바로 괘의 이름이다. 건, 곤, 준, 몽 수, 송, (…) 기제, 미제 등 64괘 괘사의 첫 단어가 모두 괘명이다. 괘명은 괘의 전체 상황을 보여주고, 대략적인 의미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건은 하늘, 아버지, 굳셈 등을 뜻하는데 이것이 괘의 의미인 괘의혹은 괘가 가진 성질이라는 뜻에서 괘덕 괘의는 전체적인 뜻과 함께 괘가 처한 상황 곧 시를 알려준다. 64괘 괘명은 괘의와 괘시를 두루 표현한다. 더불어 변화를 지칭하는 효는 효변 한 괘는 여섯 획으로 구성되고 각각의 획이 여섯 곳의 자리에 놓이게 되자마자 효가 된다.
점서에서 철학서로
『주역』을 떠올리면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점부터 연상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주역』은 원래 점치는 책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점서였다면 철학서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주역』이 육경7의 으뜸을 차지하는 중요한 경전이 된 이유는 그것의 철학적·인문주의적 성격 때문이다. 거북이나 동물 뼈 위에 나타난 성문으로 점치던 귀복점과 수의 연산과 논리를 통해 점을 치는 서점 그리고 『주역』의 역경과 역전으로 점차 발전해온 것이다. 그런데 『주역』에 관한 가장 큰 오해는 역경은 점서이고 역전은 철학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철학은 한순간에 창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역전에서 나타나는 철학적 성격은 모두 역경에 잠재되어 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이렇듯 철학적 해석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 바로 역전이다. 다른 점서들은 철학이 되지 못하거나 역사에서 사라져버렸지만 『주역』은 철학으로 살아남았다. 역전은 64괘를 새롭게 해석하는 지침이 되었고, 역전 없이는 『주역』을 해석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게 되었다. 역전은 공자가 『주역』에 단 최초의 주석으로 십익으로 불린다. 괘효사의 괘사는 문왕이, 효사는 주공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괘사와 효사의 원천이 되는 것이 6획 괘인데, 하나라의 『연산역』, 은나라의 『귀장역』도 주역과 마찬가지로 8괘, 64괘의 형태를 갖춘 것으로 보아 6획 괘가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전설 속 성인인 복희가 이를 만들었다고 믿으며 복희 선천팔괘도로 전해진다. 정리하자면 주역의 작자는 복희·문왕·주공·공자 사성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상징성을 띠는 기호는 또 하나의 문자로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기호는 기호를 어떻게 조합하고 이해하는가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주역』의 기호체제를 해석하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추이 연괘로 확장되어가는 것을 표현하는 용어다. 벽괘는 64괘 중 가장 핵심적인 14개의 괘이며, 이것이 확장되어 50연괘를 만들어낸다. 사계절 가운데 가장 추운 동지에 1양이 처음 생겨나는데 이것이 복괘다. 복괘에서 양이 하나씩 쌓여가면서 임괘, 태괘, 대장괘, 쾌괘, 건괘가 된다. 하지에 1음이 처음 생겨나는데 그 괘가 구괘다. 음이 불어나면서 돈괘, 비괘, 관괘, 박괘, 곤괘가 된다. 복괘는 자월(11월)로, 이를 시작으로 12월, 1월 순서가 된다. 이렇게 열두 달을 상징하는 사시의 괘가 결정되고, 윤달을 상징하기 위해서 여기에 재윤8J의 괘로서 소과괘와 중부괘를 포함하여 이를 벽괘라고 한다.
『주역』의 신비화와 신성화
『주역』은 가장 오래된 책인 동시에 난해하고 신성하며 신비한 글로 인식되어왔다. 공자도 『주역』을 연구하느라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이야기는 이 책이 얼마나 난해하고 난독성이 대단한 책이었는지를 증명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난독성이 책을 신비롭고 신성하게 만들었다. 『한서』「예문지」에서 반고는 『주역』을 “세 성인을 거치고 고대의 세 시기에 걸쳐 이루어졌다”고 평가하는데, 이는 중국의 전통적 복고주의에 따른 최초의 신성화다. 세 사람의 성인을 걸치고 오랜 세월에 걸쳐 이뤄졌다는 사실은 역을 신성하게 만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주역』은 정말로 신비로 가득한 미지의 영역에 속할까? 사실 『주역』에는 숨겨진 그 어떤 것도 없으며 신기한 내용이나 사람들을 속이는 것도 없다. 『주역』은 성인이 사람들로 하여금 지식을 얻고 깨우칠 수 있도록 가르치려는 의도로 만든 것이지, 쉽게 이해할 수 없게 구성하여 신비화한 것이 아니다. 『주역』이 신비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역전의 해설서 「설괘」가 반드시 필요하다. 「설괘」는 8괘에 대한 일종의 암호해독서다. 「설괘」에는 8괘에 해당되는 상들 양, 소, 말 돼지와 하늘, 임금, 아비, 보옥 등의 의상 자세하게 제시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야지만 비로소 『주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64괘의 기본, 음과 양의 대립과 협력관계
『주역』의 가장 기본은 음과 양이다. 『주역』에 사용된 모든 상징 기호는 음획과 양획에서 시작한다. 이것이 소성 8괘로, 그리고 마침내 64괘로 완성되는 것이다. 「계사전」에는 음양에 대해 “음양이 갈마듦을 도라고 하는데, 그것을 이어받으면 선이고 그것을 이루면 성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일음일양’은 한 번은 음이 되고 한 번은 양이 되면서 두 기운이 서로 갈마듦을 말한다. “양괘에는 음이 많고 음괘에는 양이 많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는 음과 양이 반드시 대립적인 관계만은 아님을 뜻한다. 소성 8괘 중 건과 곤을 제외한 여섯 괘에서 진괘, 감괘, 간괘는 양이 하나이고 음이 두 개인 괘인데도 이를 음괘라 하지 않고 양괘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음양은 여성과 남성, 약함과 강함, 땅과 하늘, 마이너스와 플러스처럼 서로 대립되는 요소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요소 속에 상반된 요소가 잠재되어 있다. 이렇듯 음과 양은 서로 협력하고 대립하면서 끊임없이 이어진다. 『주역』이 철학이 될 수 있는 이유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