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를 담지(膽智)했던 인물들
그들과 함께 더불어 산책하며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난 역사와 인물들의 삶을 피상적으로 보여주기 보다는 그들의 모습을 일상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려내고자 했으며, 그리 어렵지 않게 쓰여져 누구나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국에서 나고 자란 동포 젊은이들에게 생면부지의 선조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리 친숙하게 다가올 리가 없기 때문이리라.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우선 ‘재미’가 있지 않으면 읽히지 않을 것이기에 저자는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술술 읽히도록 서술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할 때 역사 문헌과 참고자료를 정확하게 이해하여 ‘야사’가 아닌 ‘정사’에 기초하고 있다.
이 책은 반평생을 일본에서 지내온 지은이가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조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어 자긍심을 갖게 하자는 목적에서 집필한 인물 중심의 한국사로, 1997년 출간되었던 『중고생을 위한 한국사 명인전』의 개정판이며, 평어체의 문체를 경어체로 바꾸어 보다 친근감 있고 읽기 쉽게 하였다.
집필 동기를 저자에게 직접 듣는다
처음에 이 책을 쓰기 시작하였을 때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학자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써 나가는 동안 우리나라의 역사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한 뛰어난 선조들의 이야기를 덧붙이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우리 역사에 기록된 중요한 인물의 이야기를 써서 전하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여 자료를 최대한 폭넓게 모아 계속 써 나가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이 어느덧 해를 거듭하여 만 6년여에 걸쳐 집필하게 되었고, ‘신채호’로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글의 주제가 되었던 인물만도 92명, 그들을 둘러싼 수백 명의 이야기를 써온 것입니다.
여러 가지 자료를 구하러 다니다 보면 대개의 인물 전기는 그 업적에 대해 칭찬하는 말이 많고, 그의 인간적인 면에 대한 묘사가 충분치 못하여 구체적인 인간상을 파악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쓰는 사람에 따라서 보는 시각이 달라, 같은 인물을 놓고도 여러 가지 엇갈림이 있어서 어떤 자료가 진실한 것인지 눈매가 서로 다른 경우도 많았습니다.
또한 역사에 관한 저서 대부분이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이 많아 역사에 특별한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만큼 역사상의 인물을 정확히 전달하는 일은 전문적인 역사학자가 담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 점을 잘 알면서도 내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우리 조국에도 이처럼 뛰어난 사람들이 있어 조국이 발전하고 역사가 유지될 수 있었고, 훌륭한 문화를 쌓을 수 있었다”는 것을 가르쳐서 민족적인 긍지와 조국애에 눈뜰 것을 호소하고픈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었으면 해서 되도록 어려운 한자어를 피하고 쉬운 문장으로 쓰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쓰고 나서 보니 나도 모르게 문장이 어려워지고, 난해한 용어를 그대로 쓴 곳도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아무리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일지라도 그 인물들도 슬픔과 기쁨과 고통 속에서 산 사람들이므로, 나는 인간적인 모습을 가능한 한 생생하게 묘사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그 사람들이 우리와 서로 피가 통하는 동족이며 선조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나는 여러 가지 자료를 읽으며 맞추어보고, 그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다른 인상을 머릿속에서 하나로 종합된 인간상으로 재구성하고, 내가 그 인물에 품었던 생각을 솔직하게 써내려고 하였습니다.
때로는 생생한 인간상이 도저히 파악되지 않아서 답답한 마음으로 글을 쓴 적도 있었고, 때로는 그 인물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원고를 써 나간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내가 이 책에서 소개한 인물들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이므로 각별히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인물상의 전형들이었습니다. 그 점에서 이 책은 내가 묘사한 우리 민족사이며, 우리 민족사의 다양한 성격을 그려낸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마음에 남는 사람들(이 책의 내용)
이 책은 삼국 시대의 예술가와 문호 몇 명을 소개하면서 시작되는데, 그 시대의 자료와 문헌이 매우 제한적인 것밖에 남아 있지 않아서 지극히 간단한 사실밖에 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치원은 각별히 자세히 써보고 싶은 인물이었습니다.
“열두 살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문재를 떨치고 출세도 한 그는 향수에 사로잡혀 스물아홉 살에 귀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역량과 재능을 제대로 발휘해보지 못한 채 산속의 절에 틀어박혀 멸망해가는 신라 정권의 말로를 바라봅니다.”
이는 난세에 태어난 비극적인 문학자의 모습으로, 여러 가지를 느끼게 하는 기록이며 능히 장편 소설의 소재도 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상상은 할 수 있으되 남아 있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서 멋대로 추측해서 쓸 수도 없었습니다. 통속적인 역사 소설을 쓴다면 둘도 없는 주인공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김부식의 이야기를 썼는데, 김부식에 의해 토벌된 승려 묘청과 그 일파의 활동은 다른 주인공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써야만 하였습니다. 과거 봉건 사회의 기록이 한결같이 김부식의 공적을 기리고 묘청 등을 반역자로 취급하였기 때문에 그 활동의 전모가 정확히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묘청 등은 당시 전성기를 맞은 고려의 국력을 배경으로 민족의 오랜 숙원인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여 우리 조국을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서 발전시키려는 장대한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운동을 전개한 방식이 너무 성급한 탓에 평양 천도 계획이 실패하고, 자력에 의한 혁명 정부도 수립하지 못하고 지지 세력을 결집하는 데도 실패하여 무너지고 맙니다. 하지만 묘청 등을 단순한 반역자로 묻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가들도 많습니다.
이어서 고려 시대 피차별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와 개경의 노예 해방 투쟁의 지도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 사건들은 우리 역사에서 민중 해방 운동의 주요한 일면을 말해주는 기록으로, 금후 전문적인 역사가들의 연구가 절실하게 요망되는 중대한 사항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정치적 이유로 인한 피차별 지역이 매우 많았다는 것이 여러 자료에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피차별 계급에 대한 억압도 가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처지에 있던 우리 민중들은 인내하고 복종하기보다는 끊임없이 떨쳐 일어나 싸워왔습니다. 부당한 차별과 압박에 결연히 저항하여 싸웠던 역사적 기록은 감동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존경스러운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길러온 저항 정신의 표현이었습니다. 그 불굴의 의지로 우리 민족은 역사의 전 기간을 통하여 이민족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침략을 받으면서도 민중의 힘을 결집하여 이를 물리치고 민족의 독립을 지키며 민족의 전통 문화를 꽃피워 왔던 것입니다.
이어서 쓴 배중손의 몽고군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저항도 그러한 일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 고려 왕조가 무너진 것은 낡은 봉건 체제의 압박을 깨뜨리려는 민중의 투쟁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고려가 무너지고 이성계에 의해 새로 조선 왕조가 수립된 뒤 고려 시대의 광범한 피차별 지역이 사라지게 된 것에 대하여 앞으로 역사가들은 더욱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세계 사상사에 비추어보았을 때 우리나라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진적인 진보를 이룩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편린이 투쟁하는 민중들의 모습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의도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말살하려고 한 일제 침략자들의 범죄적인 정책이 빚어낸 후유증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 점에서 망이와 만적의 투쟁에 관한 기록은 매우 귀중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음에 소개한 최무선과 문익점도 그에 못지않은 귀중한 기록입니다. 최무선은 과학적 연구를 거듭하여 신무기를 만들어 포악한 일본 해적들을 물리친 애국자이며, 문익점은 중국 오지에서 목숨을 걸고 목화 씨앗을 몰래 들여와 우리나라에 퍼뜨린 공로자입니다. 그들은 그리 높지 않은 지위에 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강렬한 애국심이 그들을 불멸의 애국자로 길이 빛나게 하였습니다.
이어서 ‘고려의 마지막을 장식한 사람들’을 썼는데, 이 글은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수립이라는 역사적인 변동기를 배경으로 다양한 삶을 살아간 전형들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 글은 극적인 요소를 가진 역사 이야기인 만큼, 나는 민중의 혁명적인 요구를 능란하게 명분으로 내걸었던 이성계가 새로운 지배 권력을 장악해가는 과정을 부각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한 원고 매수에 제한이 있어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끝내고 말았습니다. 다만 그 혁명기를 맞이하여 일관되게 소신을 밀고 나가다가 비극적으로 생애를 마친 정도전을 덧붙일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세종 대왕 시대의 공로자들’을 썼는데 세종 대왕은 조선의 4대 왕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명군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입니다. 건국 초기에 혈육들과 동지들의 피비린내 나는 추악한 왕위 쟁탈전이 일단락된 뒤에 왕위에 오른 그의 아버지 태종과 함께 세종 대왕은 많은 우수한 인재를 거느리고 빛나는 업적을 쌓아올렸습니다.
특히 세종 시대에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역사상 전에 없는 번영을 누렸으며,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런 만큼 위대한 정치가와 학자들이 배출되어 문화, 예술을 비롯하여 의학과 과학 부문에서도 뛰어난 인물들이 활약하였습니다. 이렇게 혜성처럼 빛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써서 전하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거니와 보람 있는 작업이기도 하였습니다.
그에 이어서 ‘훈민정음을 만든 사람들’을 썼습니다. 훈민정음은 세계의 숱한 문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과학적이며 가장 우수한 문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우수한 문자가 치밀한 계획 아래 만들어졌다는 것은 세종 시대의 우리 문화 수준이 매우 높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그 문자를 만드는 작업에 종사한 인물들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업적을 남긴 학자들은 최고의 애국자로 칭송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우수한 학자들은 왕위가 절대적인 권력을 갖는 봉건 사회 속에서 왕위 쟁탈전이라는 추악한 소용돌이에 휩쓸렸고, 어제의 친구와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어 서로 으르렁대고 서로 죽고 죽이는 아수라장을 연출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에 대해 쓴다는 것은 곧 우리 역사의 최대의 불행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며, 우리 민족의 치부를 묘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러한 가혹한 운명 속에서 재능 있는 사람들이 어떠한 행동을 취하며 어떠한 생활을 하였는지를 감히 분명하게 묘사하려 하였습니다.
이어서 쓴 김시습은 평생 권력에 거역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학자이자 철학자로서 우리 민족의 인물상에서 한 전형을 보여준 사람이기도 합니다. 나는 진작부터 그에게 애착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여러 가지 생각을 담아서 글을 써 나갔습니다.
서경덕은 평생을 세속을 초월하여 깨끗이 살아간 철학자입니다. 그에게는 인간적인 훈훈함이 있었던 만큼 그 인간성의 전모를 묘사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신사임당은 우리 여성사에서 한국 여성의 거울로 칭송되어온 사람입니다. 그녀는 뛰어난 시인이며 화가이기도 하였지만, 그녀의 비애를 담은 문장은 깊은 감동이 있습니다.
다음에는 퇴계 이황, 그리고 율곡 이이를 썼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두 학자의 행적을 우리나라의 공자, 맹자에 비유하였는데, 그 훌륭한 삶의 자세에는 그저 머리가 숙여질 따름이었습니다. 특히 나는 ‘이율곡’을 쓰고 있을 때 그 위대한 인간성에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이처럼 훌륭한 인물이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과시하여도 좋을 듯하다고 생각하며 흥분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이어서 쓴 정철, 허준, 임제, 박인로는 모두 뛰어난 학자이며, 또한 문학자로서 우리나라의 문화 발전에 크게 공헌한 사람들입니다.
황진이와 허난설헌은 역사상 드문 여류시인인데, 명기로서 자긍심이 강했던 황진이는 매력적인 인물인 만큼 다각적으로 묘사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자료에 한계가 있어 여의치 않았습니다.
16세기 말 일본의 침략을 격퇴한 뒤 가난한 민중들은 조국을 재건하기 위하여 떨쳐 일어났지만, 양반 계급은 변함없이 권력 투쟁에 몰두하였습니다. 그 가증스러운 지배 세력에 맞서 사회 변혁을 계획하던 사람들의 장렬한 투쟁과 비극적인 말로를 묘사하려고 한 ‘허균과 『홍길동전』’은 그 내용이 한 편의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홍길동전』은 당시 변혁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꿈꾸던 하나의 이상향이었던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용이었습니다.
윤선도, 김만중은 권력에 박해를 받아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뛰어난 문학 작품을 남긴 사람들이었다.
다음에는 애국적인 실학 운동을 일으켜 크게 발전시킨 학자들의 공적을 소개하고 이어서 ‘18세기 후반에 활약한 학자들’을 썼는데, 이러한 학자들의 업적, 사상, 삶의 자세에서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이어서 ‘박지원과 그의 문학’을 썼는데, 실학자였던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비롯하여 주옥같은 문학 작품을 남긴 인물입니다. 그 전부를 서술할 수는 없었지만, 처음 읽는 주위 사람들은 자못 감동을 받았는지 여러 사람한테 소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뛰어난 화가를 몇 명 소개하였는데, 이 이야기에는 역시 전문적인 화가들이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그 감상을 말해주었습니다. 필자는 그림에 대해서는 그들만큼 잘 알지는 못하므로 송구스러운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튼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정약용의 이야기도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내용이었습니다. 가혹한 권력의 박해 속에서도 정의감으로 일관한 이 위대한 학자의 애국적인 삶은 아무리 칭송해도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소개한 애국적인 학자들은 학문이란 민중의 행복과 풍요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고결한 삶을 통하여 가르쳐주었습니다.
다음에 쓴 ‘혁명아 홍경래와 그의 투쟁’은 19세기 초에 우리나라를 휩쓴 대사건이었습니다. 이 혁명이 성공하였다면 우리나라는 동양에서 가장 선진적인 길을 걸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애석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만큼 점차 역사 문학의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이어서 특이한 문학자로서 김삿갓을 소개하였습니다. 평생 전국을 방랑하던 이 시인은 방방곡곡에 일화를 남겼는데, 그의 풍자시는 매우 통렬하여 뭇사람의 절찬을 받아왔습니다.
다음에는 19세기의 대표적인 극작가 신재효의 이야기를 썼는데, 그는 우리 대중에게 절대적인 인기를 모았던 ‘판소리’의 명창을 길러내고 민중들의 깊은 사랑을 받아온 많은 고전 소설을 판소리 대본으로 써냈습니다. ‘춘향’을 우리 민족의 연인으로, ‘심청’을 민중의 효녀로, ‘흥부’를 민중의 벗으로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자의 침략에 맞서 싸운 애국지사들에 대하여 썼습니다.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갑신정변의 실패와 김옥균의 고난에 찬 일본 망명 생활, 그리고 그의 비극적인 최후는 꽤 알려져 있는데, 그런 만큼 많은 분들이 흥미를 갖고 읽어준 듯합니다.
다음에는 갑오 농민 전쟁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독립을 지키려는 농민군과 일본 침략군의 ‘공주 대회전’은 사실상 조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장렬한 싸움이었습니다. 이 싸움을 지도한 전봉준의 영웅적인 활동과 그 비극적인 최후는 멸망해가는 조국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전봉준의 이름은 식민지 시대에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는 모든 민중들의 가슴속에 김옥균과 함께 뿌리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애국심에 불타는 작가들은 그의 이야기를 은밀하게 소설화하여 그의 이름을 청소년들에게 보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어서 ‘구국을 위한 투쟁에서 산화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여 최후까지 싸우다 죽어간 애국자들을 서술하였는데, 그 중에는 정치가도 있고 보수적인 학자도 있으며 용맹한 의병대장도 있고 정열적인 혁명가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투쟁은 모두 장렬하였으며, 특히 이준은 북한에서 영화 「돌아오지 못한 밀사」로 제작되어 일본에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며, 안중근 또한 영화를 통하여 많은 관객들을 감동시킨 이야기입니다. 그런 만큼 쓰기 어려운 면도 있었지만, 이러한 인간상을 정확히 묘사해내고 싶은 의욕에 힘이 솟기도 하였습니다.
다음에 쓴 홍범도는 거의 전설적인 의병 대장으로서 일본 정규군의 대부대를 섬멸한 용장입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록이 적어 그 활동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일찍이 소련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삶을 마친 사람이지만 소련에서의 활동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 점은 여전히 마음에 걸립니다.
주시경은 교육자의 귀감이라 하여도 좋을 사람입니다. 이 위대한 선생의 삶을 써 나가면서 이러한 애국적인 선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가혹한 역경 속에서도 싸울 수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역사학자 신채호에 대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 분이 저술한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는 과거 사가들이 봉건 사회를 물들이던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또는 우리 민족사를 말살하려던 침략 세력의 정책을 극복하지 못하여 크게 왜곡하였던 우리 고대사를 5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생기 넘치는 원형 그대로 복원해주었습니다. 나는 해방 후, 그것도 30년 가까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그때의 감동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습니다.
광활한 대륙을 누빈 우리 선조의 위대함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 이 책이 청소년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또 이렇게 뛰어난 역사가가 업적에 비해 너무 과소평가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크게 유감으로 생각한 만큼, 마지막 장에서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두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