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신이 든 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그래, 표현이 조금 이상하긴 한데, 정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이었다. 그 전까지는 마치 꿈이라도 꾼 것마냥 모든 것이 깊은 수면 속에 가라앉아 있었으니까. 흐릿하지만 끝자락을 겨우 붙든 내 마지막 기억은, 낯선 남자가 예리한 칼로 내 배를 찌르고, 나는 처음 보는 남자의 무자비한 손길에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해 보고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아, 나! 기분 더럽네! 하필 죽어도 묻지 마 살인으로 죽냐. “응아으.” 순간 치민 짜증에 멋대로 입을 벌렸지만 나오는 건 말이 아니었다. 나는 단지 ‘짜증나’라고 말하고 싶었을 뿐인데, 도리어 이도 없는 잇몸이 생으로 부딪히는 느낌에 미간을 찌푸린다. 뭐지, 이 이상한 목소리는? 고민도 잠깐. 그제야 미련하게 다시 깨달았다. 아, 맞아. 이제 나 애새끼였지. 뭔가 참담한 심정이었다. 죽자마자 환생이냐. “어머, 우리 공주님께서 언제 깨셨담.” 그러게. 근데 넌 언제 온 거니? 나를 안아 드는 손길을 느끼며 괜히 하품을 한다. 사실 시야가 거지 같아서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도 잘 구별이 안 갔다. 물론 요 며칠 정신이 들면서 급속도록 좋아지고 있긴 하지만. 그런데 진짜 나 언제 깬 거지? 나도 내가 언제 깬 건지 모르겠네. 원래 애라는 건 이런 종족인지 하루 종일 자고도 졸렸다. 그것도 엄청. 잠을 자는 데도 성이 안 차는 이 기분은 대체 뭐람. 그렇게 잠을 자고도 또 잠을 게걸스레 자야 직성이 풀렸다. 아, 또 졸려. 그래도 애라서 하루 종일 자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서 좋았다. 말 나온 김에 다시 잠이나 잘까?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다시 감는데, 순간 코끝에 향긋한 냄새가 풍긴다. 윽, 이 냄새가 향긋하다니. 끝장이다. 나는 이제 정말 얄짤없이 응애응애 애기였다. 슬며시 눈을 뜨니 역시나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