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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2903231
ISBN10 893290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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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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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김석희
서울대학교 인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국문학과를 중퇴했다.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서 당선된 바 있고, 현재는 소설가이자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창작집 <이상의 날개>와 장편소설 <섬에는 옹달샘>, 역자후기 모음집 <북마니아를 위한 에필로그 60> 등을 발표했다. <화산도>, <털없는 원숭이>, <에코토피아>, <로마인 이야기>(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 수상), <고야>, <프랑스 중위의 여자>, <호비트> 등 100여 권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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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법으로 채프먼은 재능이라는 괴물에 대한 지배권을 얻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파멸시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한순간만이라도 자신을 자신이 소유하는 것이었다. 그것말고는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불구덩이 속을 걸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고통은 그를 현실적인 존재로 만들어주었다.
--- p.251
술집 안은 물고기의 창자 속처럼 어두웠다. 내 눈이 어둠에 적응하는 데에는 몇 분이 걸렸다. 술집 안에서 움직이는 거라고는 주크박스의 물결치듯 깜박이는 주홍색 불빛뿐이었다. 기계에서는 거부와 절망을 노래한 구슬픈 가락이 나오고 있는데, 주크박스의 불빛은 노래와 걸맞지 않게 경쾌한 춤을 추고 있었다. 손님은 대여섯 명뿐이었다.

전화 수리공의 회색 제복을 입은 두 사내는 맥주잔을 덮치듯 구부정한 자세로 카운터에 앉아서 와 <아우디>의 상대적 장점에 대해 입씨름하고 있었다. 나머지 손님은 저마다 나무 탁자에 혼자 앉아서 「뉴어크 스타레저」신문을 읽고 있었다. 하얀 반소매 셔츠에 하얀 앞치마를 두른 바텐더는 한때 미식 축구의 수비수로 활약했지만 과거를 즐겁게 회고하면서 손님들과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뚱보가 되어 버린 것처럼 보였다. /86

그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기억은 두서 없이 닥치는 대로 흘러 나왔다. 과거가 물밀 듯이 밀려오자 그는 세월을 앞뒤로 몇 년씩 건너뛰었다. 다트머스 대학에 들어간 첫날을 이야기하다가 느닷없이 여덟 살 때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선물받은 이야기로 넘어가고, 다시 막내딸이 태어난 날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때마다 그의 아버지는 매번 등장했다. 내가 처음 듣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어떤 의메엇 사람들의 기억은 모두 똑같다. 각자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다를 수 있지만, 우리가 거기에 부여하는 성질은 똑같다. 그 사건들은 우리의 인생이고, 우리는 가장 신성한 것에만 바치는 경의를 가지고 그것을 대한다. 브라이언은 아버지의 관대함과 유머감각, 자식 사랑을 이야기했다.

마치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잔인한 실체를 폭로할지도 모르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진실은 복수의 천사처럼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따라다니고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그 존재를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평생 동안 그 천사와 씨름해야 할 것이다. 그는 너그럽고 자상한 아버지를 가졌다고 자부해 왔다. 지금 그는 그런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장난감집을 해체하듯 부드럽고 끝없이 상냥하게 작별을 고했다. /276
--- p.
그는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린 다음, <가죽 재킷>과 함께 나를 땅바닥으로 잡아당겼다. 자갈이 내 등을 찔러, 마치 칼날이 잔득 박힌 침대 위로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일어나라고 말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내 노력이 충분치 않았던 모양이다. <캐주얼 슈트>가 구둣발로 내 옆구리를 걷어찼고, 덕분에 내 움직임은 더욱 느려졌다. 몇 번의 시도와 몇 번의 발길질이거듭된 뒤에야 나는 마침내 내 발로 일어설 수 있었다. 머리가 볼링공처럼 무거웠다. 내 몸무게의 분포 상태가 달라졌기 때문에 거기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데에는 한참 시간이 걸렸다.

상황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자신감을 되찾고 있었다. 나는 두 시간이나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도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나를 죽이는 게 그들의 임무였다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을 것이다. 콘티니는 나를 살려줄 모양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채프먼 피살 사건 수사가 종결될 때까지 내 발목을 잡아 두는 것이었다. 그 노인네도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 p. 167
'경위님과 내 차이점이 뭔지 아세요? 나는 채프먼이 피살된 이유를 알아내는 데 관심이 있는 반면, 경위님은 채프먼이 어떻게 살해됐는지에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나는 진정한 해답을 원하고 있고, 경위님은 유죄 판결을 원하고 있다는 얘기죠.'

'바로 그게 내가 봉급을 받은 이유라네. 경찰이 하는 일은 결국 그거야.'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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