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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여자
송주희 | 동아 | 2014년 11월 2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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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11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568쪽 | 652g | 147*210*26mm
ISBN13 9791155112687
ISBN10 115511268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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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직접 말해보던지. 왜 그 잘난 신이라는 작자가 일부러 현신까지 해서 너를 안으라고 협박하는 거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여기 널리고 널린 게 남자인데 왜 굳이 완벽한 인간도 아닌 나한테 그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나는 남자의 품을 통해 얻었던 온기를 단번에 잊어버렸다.
“지금, 뭐라고?”
신. 프로메테우스도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었다.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 내가 받은 충격이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신이 나타나서 나를 안으라고 협박했다니? 설마 그 신이라는 작자가 내가 아는 녀석인가? 금발에 붉은 눈을 가진 프로메테우스를 말하는 거야? 나를 에워쌌던 그 우중충한 강줄기가 무색하도록 화려했던?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믿는 도끼……, 아니, 애당초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배신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신이라는 작자가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서 미칠 듯한 분노가 차올랐다.
이건 반칙이다. 명백한 규칙 위반이라고! 나는 이를 갈았다.
남자는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입가에 수상쩍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상체를 기울여 나와 몸을 붙였다. 투명한 금구슬이 바로 앞에 있었다.
“하라면 못할 것도 없지.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뭐?
“저기 잠깐만, 뭔가 오해가…….”
나는 재빨리 항변하려 했지만 남자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그가 제 입술을 내 입술 위에 포갰다.
다급함이 담긴 경종이 울렸다. 나는 이성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다. 숨을 죽이고 입을 굳게 다물며 나름대로 반항을 시도했다.
남자의 입술은 꽃피는 여름날의 진득한 벌꿀이었다. 감미료처럼 달콤하다고 오랫동안 맛보면 판단력이 흐려져 위험했다. 아니, 판단력은 이미 진작에 잃어버린 것 같고 그보다 자꾸 현기증이……. 이러다 실신하면 어떡하지?
순간 내가 꿈을 꾸는 줄 알았다. 차라리 정말 꿈이었으면 좋았을 거다. 그렇다면 마음껏 즐겨도 아무런 뒤탈이 없을 것 아닌가. 나는 눈을 떴다. 매우 당혹스러운 나머지 남자에게 내가 지금 겁먹었단 사실을 드러내고 말았다. 제발 이러지 마. 생긴 것부터가 범죄면서 유혹하지 말란 말이야! 진짜 너무 달콤해서…….
가슴이 마구 뛰었다. 혹시 이 남자는 음식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신이 원망스러웠다. 그 자식을 다시 만나면 절규할 때까지 실컷 두들겨 주리라. 이빨 하나라도 부러뜨리지 않으면 나는 아마 화병이 나서 죽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숨 쉬는 타이밍을 조금도 모르겠다. 코로 숨을 쉬어도 되는 건가? 그럼 내 숨이 남자의 코에 닿을 거 아니야. 숨결이 서로 섞이면 왠지 이 주변이 이산화탄소로 범벅될 것 같은데. 아무리 숨을 들이켜도 산소가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아. 윽, 좋기는 한데 이거 진짜 답답하다. 숨 막혀! 제발 프로메테우스! 안전장치 따윈 바라지도 않을 테니 여기서 좀 구해주면…….
여러 가지 이유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가 호흡을 정지한 지 약 삼십초를 넘겼을 때쯤 미남이 입을 뗐다. 혀끝을 조금 내밀어 벌어진 내 입술을 가볍게 쓸어주고는 지극히 재미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숨 쉬어도 돼.”
나는 그제야 공기를 먹었다. 들숨과 날숨이 불규칙한 속도로 들어왔다 빠져나간다. 산소가 부족했다. 입까지 사용해 숨을 골랐다. 그러나 입가를 닦을 새도 없이 되찾은 자유를 다시 빼앗기고 말았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찾아든 남자의 입술이 벌어진 내 입술 위에 포개졌다. 피부 표면을 누르는 자극 때문에 시야가 흐렸다.
얇고 부드러운 살을 거머쥐듯이 감싸는 느낌이 좋았다. 꽃잎에 내려앉은 새벽이슬처럼 살며시 닿았다가 불꽃으로 돌변해 사나운 열기를 표출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는 입안 점막을 완전히 헤집어놓고 나서야 나를 놓아주었다. 나는 언제 올라가 남자의 목을 휘어 감고 있었는지 모를 두 팔을 황급히 내리며 남자를 밀쳤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래서 욕구불만이 무서운 거구나. 생사가 걸렸는데도 좋다고 맞잡는 꼴이 참 우습다.
“신이 하란다고 정말 할 셈이야? 당신 황제라며! 요!”
목소리가 떨렸다. 사실 목소리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떨렸지만 정신을 가다듬을 시간이 없었다. 내가 비록 역사는 잘 몰라도 황제라는 직위가 대단하다는 건 안다. 그러니까 이 녀석만 구슬리면 어떻게든 되는 거다. 젠장. 그 망할 신만 아니었어도!
“어쩔 수 없잖아. 제아무리 황제라도 신의 피조물인 건 마찬가지인걸?”
남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신을 믿어? 당신한테 나타났던 남자가 정말 신이라고 확신해?”
“그건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설마 이제 와서 모른다고 잡아떼진 않겠지? 네 반응, 정말 뚜렷했거든.”
“어…… 음.”
반박할 말을 잃어버린 나는 입술을 다물고 침묵했다. 녀석이 굳이 모습을 드러내면서까지 남자를 협박한 이유가 어렴풋이 납득이 돼 미칠 노릇이었다. 그 녀석은 애초부터 질 생각이 없었던 거다. 인간한테 지기엔 너무도 지고한 존재라 이런 비열한 수를 쓴 거겠지. 나를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고 적당히 가지고 놀 심산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내 망상인 척했던 것도 그저 장난이었겠지!
프로메테우스의 눈에 내가 얼마나 바보처럼 보였을지 생각만 해도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다. 심지어 나는 그에게 네가 내 연인이 되라는 말도 했었다!
그런데 왜 하필 황제였을까.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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