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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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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주 저 | 불지사 | 1995년 04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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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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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1995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76380142
ISBN10 897638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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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언덕이 끝없이 펼쳐져있는 금정산 범어사의 전경은 그대로가 장엄한 적멸보궁이었다. 도량을 거닐고 있노라면 마치 파도를 헤치며 떠가는 커다란 배를 탄듯한 느낌이 절로 들어 일찍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 형국이라 했던가!
왼쪽에 솟아있는 계명봉은 흡사 볏가리를 덩그렇게 쌓아올린 부잣집을 깊숙히 들어앉아 쳐다보는듯한 이 절의 노적봉 구실을 하고있다. 오른쪽 봉우리는 원효망대라 하는데, 올라서서 내려다보면 푸른 바다 저 멀리 가물거리는 대마도가 마치 한폭의 그림이며 전설 깃든 망향의 피안 같기만 하다.
장장 70리를 뻗어내린 능선 끝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점선을 이루고, 그 짙은 물안개 속에 부산항이 펼쳐져있다.
산꼭대기에 금정이 있어 범천에서 금어가 내려와 놀았다는 유래로 시작된 금정산 범어사는 1,300년이란 연륜에도 오히려 묵묵할 뿐이다.
여름 결제 마지막 밤, 원응료 선실.
후덥지근한 아랫목에서는 늙은 비구의 코 고는 소리가 차츰 높아져갔다. 장명등이 까무락거리며 희미하게 타고있는 한밤중이었다.
불현듯 잠에서 깬 범주 수좌는 슬며시 일어나 가부좌를 틀었다.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같지 않게 넘쳐흐르는 정기가 별처럼 빛나는 눈빛이었다.
모든것이 깊은 잠에 빠져든 이 밤, 오직 움직이는것이 있다면 시간의 흐름뿐이었다. 똑딱똑딱 금속으로 조립된 단순한 벽시계의 음향이지만 그것은 또한 일체의 심장을 꿰뚫고 있는 우주의 맥박이기도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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