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게 뭐예요?” 인형을 받아 들고 장이는 신기한 듯 이리저리 뜯어보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불가사리란다. 쇠를 먹어 치우면서 나쁜 사람들을 혼내 주는 무서운 짐승이지.” “정말로 이런 짐승이 있어요?” “그럼 있고말고.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지.” “그럼 언제 나타나요?” “세상이 아주 많이 어지러울 때, 못된 벼슬아치나 부자들이 백성들을 너무 괴롭혀서 백성들이 도저히 못 살겠다, 그럴 때 나타나 백성들을 도와주지. 불가사리는 힘이 아주 세고, 칼에 찔려도 화살을 맞아도 끄떡없단다.” “그런데 불가사리는 왜 하필 쇠를 먹어요? 세상에 맛있는 것도 많은데?” “왜냐하면 쇠는 나쁜 거니까. 쇠로 엽전을 만드는데, 벼슬아치들은 그 돈을 더 많이 가지려고 백성들을 쥐어짜거든. 더 나쁜 건 쇠로 무기를 만든다는 거야. 그 무기로 힘없는 백성들을 겁을 주고 괴롭히거든. 그래서 불가사리는 쇠를 먹어 치우는 거야. 엽전도 없고 무기도 없으면 아무리 지독한 벼슬아치라고 해도 더 이상 백성들을 괴롭히지는 못할 테니까.”
고려 시대 양민들이 모여 살던 부곡에서 어렵게 살아가던 장이 가족은 개경의 부잣집 노비로 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부곡을 탈출한다. 그러나 곧 추쇄꾼들의 추격을 받아 아버지는 결국 추쇄꾼들에게 잡혀가고 엄마는 개경으로 가는 길에서 죽게 된다. 장이에게 남은 것은 아버지가 만들어 준 불가사리 인형뿐이었다. 대장장이 부쇠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살아난 장이는 부쇠를 아버지같이 섬기고, 이웃집 덕삼이의 아들 검배와 부쇠의 대장간에서 함께 일을 배우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부쇠는 양부자의 모함으로 역모로 몰리게 되고, 부쇠와 장이는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된다. 장이를 좋아하던 부쇠의 딸 연두는 아버지와 장이를 잃고는 죽으려 하는데, 그때 불가사리 인형이 작은 동물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다. 불가사리가 죽은 장이의 환생일 것이라 생각하며 연두는 불가사리를 보살피며 키운다. 왜구가 개경까지 쳐들어오게 되자 검배와 연두는 왜구들을 우리 손으로 물리치기 위해 의병을 일으키고 불가사리의 힘을 빌려 왜구를 물리친다. 나라가 다시 평안해지게 되자, 조정에서는 불가사리를 위험한 존재로 여겨 죽이려고 한다. 마을의 잔칫날, 관아를 몰래 빠져나와 검배가 미리 잠을 재워 놓은 불가사리를 죽이려고 하는 순간 연두가 나타난다. 검배의 실수로 연두는 독이 묻은 칼날에 베이게 되고, 불가사리마저 검배에게 죽임을 당한다. 연두는 다시 인형이 된 불가사리를 끌어안고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