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하나님은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화가 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선하신 아버지가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하나님을 위해 어느 정도 뭔가를 해왔다고 여긴다. 내 편에서는 장부에 쓸 것이 꽤 많은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마치 하나님께 빚을 얹어놓으면서 사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빚을 갚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롬 11:35)는 말씀을 알지 못하거나 무시한다. 그러면서 자기 공로에 대한 보상만을 기대한다. 기도하고, 봉사하고, 성경 읽고, 교회 나오는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자신의 공로로 장부에 기록된다. 이런 계산적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억울함, 섭섭함, 분노와 같은 감정들이 세월과 함께 겹겹이 쌓이게 된다. 감사가 설 자리가 없다. 언제나 밑지는 장사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은혜라기보다 하나님께서 당연히 갚아야 할 빚을 갚은 것일 뿐이다.
당신이 최고로 만족을 얻는 대상은 무엇인가? 혹은 누구인가? 만일 지금 당신 자신이 이루어놓은 성공 안에서 너무나 만족하고 기뻐하고 있다면 ‘성공’이라는 가치는 당신 안에서 최고로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당신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성공’이란 저렇게 영광스러운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만족하고 기뻐하는 대상이, 돈과 같은 물질이거나 화목한 가정이거나 그 무엇이거나 간에 당신은 그 가치들을 너무나 영광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대상이 당신에게는 무엇인가? 이와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도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최고로 만족을 얻고 누리는 것에 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최고로 영광을 받으신다.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유일하고 바른 길이다.
기독교는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을 찾아오셔서 이 무감동한 죄인의 마음을 감동시키실 때까지 그치지 않고 선을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그 일을 실로 이루셨고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런 하나님을 당신은 아는가?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신 줄 알았는가? 만일 당신이 지금까지 이런 선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닫고 살아왔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하나님을 모욕하고 살아온 것일까?
당신이 살아온 과거에서 가장 씁쓸하고 아팠던, 그래서 지워버리고 싶은 사건을 기억해보라. 그 일은 나 자신이 결정하지 않은, 그저 나에게 주어진 환경의 문제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나 자신의 잘못과 실수, 혹은 죄로부터 연유된 문제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보게 될 때 거기서 당신은 하나님의 손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손이 잘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보일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씨름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중요한 믿음의 싸움이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장래에 베풀어주실 은혜를 기대하는 것이 그분을 아는 참된 신앙인의 자세다. 이 신앙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선을 베풀어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다. 이것은 우리 자신에게 실력이 있거나 믿을 구석이 있어서 가지는 거만한 자신감과는 전혀 다른 영적 자신감이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책임지시는 선하신 아버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지게 되는 자신감이다. 선하신 하나님께 대한 이 믿음이 바로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게 하는 동력이다.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하며 살아가지 않을 힘이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우리 삶의 최우선순위로 삼고 살 수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누리는 복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세상의 어느 것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