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social economy
경제학자이자 협동조합 이론 연구자였던 프랑스의 샤를 지드Charles Gide는 1903년 발간한 한 보고서에서 이들 3가지 유형의 조직과 기타 사회적 장치들을 통틀어 ‘사회적경제economie sociale’라고 지칭했다. 그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수반하는 이윤독점과 불평등을 해소하고 견제하는 장치로서 ‘사회적경제’라는 개념을 설정했다.
하지만 사회적경제라는 용어는 그 후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각국에서는 여러 사회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는 복지체계가 확립되었다. 지역공동체 형태로 문제를 해결했던 상호공제회나 결사체들은 전국 차원의 사회보장제도가 수립된 후에는 역할이 없어졌기 때문에 제도 속으로 편입되거나 해체되었다.
사회적경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복지국가가 위기를 맞이하면서부터였다. 1970년대부터 유럽의 자본주의는 저성장의 길을 걸으면서 실업과 빈곤화 문제가 심각해졌다. 재정이 어려워진 각국 정부는 종전과 같이 넉넉하게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되었고, 고용을 창출하는 데도 무력했다. 결국 자율적으로 경제활동을 하면서 사회에 유익한 목적을 추구하는 제3섹터의 역할과 잠재력에 많은 기대가 모아졌다.
--- p.27~28
지역화폐 local currency
지역화폐란 정부에 의해 통용이 강제되고 전국에서 유통하는 법정화폐와 달리 시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운영되며 소규모 지역 내에서 유통하는 국지적 화폐다. 법정화폐의 경우 가치가 국가에 의해 부여되지만, 지역화폐는 그 가치가 회원들 사이의 거래에 의해 부여된다.
지역화폐의 구체적 형태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기본 모델은 1983년 캐나다의 마이클 린턴Michael Linton에 의해 제시되었다. 밴쿠버의 작은 광산촌인 코트니Courtenay는 당시 광산이 폐쇄되면서 실업자가 양산되어 주민들이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린턴은 기업에 고용되지 못해 법정화폐를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경제적 자립을 가능케 할 새로운 교환방식을 모색했는데, 그 핵심이 바로 지역화폐였다. 이때 린턴이 제안한 지역화
폐는 ‘레츠LETS’ 즉 ‘지역교환거래망Local Exchange and Trading System’이라고 알려진 유형으로서, 직장이 없어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소비를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는 화폐경제의 한계를 뛰어넘고, 법정화폐는 아니지만 교환의 매개수단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는 물물교환경제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도였다.
--- p.83~84
사회적 배제와 사회적 포용 social exclusion vs. social inclusion
‘사회적 배제’라는 개념은 1974년 프랑스 시라크 정부의 사회부Social Action 장관이었던 르누아르Rene Lenoir가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는 한 연설에서 프랑스 인구의 10%가 ‘배제된 사람들les exclus’이며, 이들은 사회보험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어서 시민사회로부터 벗어나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Silver, 1994). 그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이 현상에 대한 여러 논의들이 있어왔는데, 대체로 사회적 배제는 “소비활동, 소득활동, 정치활동, 사회적 연대성 등 몇 가지 영역과 관련한 곤궁과 박탈을 포괄하는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영국의 사회적배제국Social Exclusion Unit에서는, 사회적 배제가 사람들이나 지역들이 실업, 차별, 취약한 기술 수준, 낮은 임금, 열악한 주거, 높은 범죄, 좋지 않은 건강 그리고 가정의 붕괴 등과 같은 일련의 문제들로부터 고통을 받을 때 발생하며, 그러한 문제들이 동시에 결합되면 악영향을 미치는 순환을 생성한다고 보았다. 이들은 주로 경제적 배제를 야기하는 여러 양상들에 주목한다.
--- p.90~91
결사체와 사업체 association vs. enterprise
협동조합은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의 정의에서도 언급하듯이 결사체association면서 동사에 사업체enterprise라는 이중성격을 지닌다. 어소시에이션은 기본적으로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함께 모이는 사람들의 조직이다. 역사적으로는 결사, 협회, 단체, 연합, 비영리협동조직, 노동조합 등 다양한 결사체를 가리킨다. …
결사체의 특징은 자립한 개인이 자발적으로 참가하며, 스스로 운영하고, 구성원이 각기 평등한 권리와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 원천은 결사체에 참가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의지다. 이러한 결사의 자유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이자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이기도 하다. 협동조합은 설립 발기인들이 설립 목적에 맞는 자치 법규(정관)를 만들고 설립 취지와 목적, 정관에 동의하는 조합원을 모집한다. 결사체이기에 조합원은 강제나 의무 가입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권리와 의무는 평등하고, 조합원들 사이는 대등하다. 단위 협동조합에서 조합원은 누구나 조합원총회(또는 대의원총회)에서 1인 1표의 평등한 의결권을 지니고 총회에서 결정된 협동조합의 방침에 대해 책임을 공유한다. 이런 인적 결사체로서 협동조합의 특징은 주권재민 원칙과 평등한 투표권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원리와도 공통된다.
반면 사업체인 엔터프라이즈는 경제활동을 도모하는 기업 또는 조직을 일컫는다. … 기업으로서 협동조합은 조합원 공통의 필요와 욕구,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사업을 펼친다. 예를 들어 소비자협동조합은 안전한 식품 구입, 안심할 수 있는 육아와 복지 서비스, 적정 가격의 주택과 교육문화 서비스, 불입금이 부담스럽지 않고 절차가 단순한 공제 상품 등을, 노동자협동조합은 안정적이고 존중받는 일자리 창출 등을, 생산자협동조합은 공동출하와 판로 확보, 공동물류 등을 실현할 목적으로 사업활동을 한다. 2012년 세계협동조합의 해를 기념하여 국제협동조합연맹이 “협동조합은 탐욕greeds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needs에 봉사한다”라고 슬로건을 내세운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 p.119~122
민주적 통제 democratic control
협동조합의 민주적 운영원칙은 조합의 주요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에서 주식회사와 달리 자본의 기여나 거래량과 관계없이 모든 조합원이 1인 1표를 보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서 채택한 협동조합의 두 번째 원칙인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통제’에서도 이를 명시하고 있고, 연합회에서 회원조합에 부가의결권을 부여하는 경우에도 민주성의 원리를 견지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
그러나 협동조합의 민주적 운영원칙은 실천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는데, 이는 크게 3가지로 대별된다. 첫째, 민주적 운영원칙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집단적 의사결정비용costs of collective decision making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단점이 있다. 집단적 의사결정비용은 조합의 가격정책, 투자정책, 잉여의 배분정책을 둘러싸고 조합원 사이에 합의점을 찾지 못해 발생하는 갈등비용, 합의점을 찾아가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되어 발생하는 비용과 적절한 사업 집행 시점을 놓치는 데서 발생하는 비용, 그리고 타협을 통해 결정된 방안이 효율적이지 못할 경우에 발생하는 비용 등이다. …
둘째, 노동자협동조합에서는 피고용인이 조합원이기 때문에 업무집행 과정의 수직적 위계구조와 직원조합원 사이의 민주적 의사결정구조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업무집행과 관련된 의사결정 영역과 조합원총회에서 결정할 사항에 관한 명확한 구분, 노동자협동조합의 이중적 성격에 대한 조합원의 이해 등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시장 및 기술 환경에 의해 불가피하게 협동조합의 규모가 커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과두지배체제 및 경영자대리인 문제가 있다. 협동조합의 규모가 커지면 조합원의 직접 참여민주주의가 용이하지 않게 되어 대의원회, 이사회 등 대의제 민주주의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또한 모든 형태의 기업과 마찬가지로 경영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여 전문경영인에게 일상적인 경영을 위임하게 된다. 이때 대의원, 이사, 경영자 들이 조합원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행동하게 될 경우 대리인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권력구조로 인해 조합원들이 조합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사실상 박탈되어, 무관심한 조합원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농업협동조합의 경우 대부분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는 모든 협동조합 연구자와 실천가의 오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 p.287~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