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글 중에서
여러분 가운데에도 호소카와의 친구들처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런 친구들 안에도 호소카와처럼 크고 유쾌하게 “캬하하하!” 웃을 수 있는 ‘행복 바이러스’와 ‘용기 바이러스’가 가득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이어트 - 호소카와 이토코 중에서
배가 고프면 화가 난다. 괜스레 짜증이 나고, 온통 먹을 것 생각뿐이다.
아, 카레라이스, 라면, 돈가스 덮밥! 머릿속에 줄줄이 떠오른다. 이건 완전히 금단 증상이다.
먹고 싶어. 아, 먹고 싶어.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뚱뚱해서 누구에게 피해 주는 일이 있어? 아무에게도 피해 주지 않잖아. 뚱뚱한 게 그렇게 잘못이야? 내가 죄인이냐 고? 이렇게 살을 빼는 게 무슨 소용이 있지?
나는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답은 내 상황에 맞게 되돌아왔다.
그렇다, 다이어트 따위 관두면 된다. 한마디만 하면 된다, 관뒀다고.
책상에 엎드려 있다가 머리를 들었다. 마치다 료코와 눈이 딱 마주쳤다. 마치다는 싸늘한 눈으로 나를 째려보듯 하고 는 곧바로 교과서로 눈을 돌렸다.
출발 - 마치다 료코 중에서
늘 보고 있었단다. 호소카와 이토코는 언제나 내 뒤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이 애 눈에는 뛰는 내 모습이 어떻게 비쳤을까.
호소카와 이토코란 애.
누구와도 당당하게 맞선다. 상대를 똑바로 보고, 생각한 것을 솔직히 말한다. 그 모습은 무모하게도, 거칠게도, 무신경하게도 보인다.
아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무신경하고 거칠다. 그래서 상처받는 일도 있을 거다. 수두룩하게.
하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도 정확히 알고 있을 거다. 자신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나도 겁내지 않고 사람들과 맞부딪칠 수 있을까.
당당하게 마음을 드러낼 수 있을까.
엄마와도.
내가 엄마를 똑바로 보면, 엄마도 나를 똑바로 봐 줄까?
소녀 - 다카미네 리코 중에서
“아, 부럽다.”
얏코 언니는 내 말 따위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멍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뭐, 뭐가 부러워. 어차피 나 같은 건.”
“나 같은 건, 뭐?”
말하지 않아도 알잖아. 왜 그렇게 심술궂게 물어?
그래도 얏코 언니는 내 얼굴을 빤히 본다. 내가 무슨 말이든 하지 않으면 계속 이대로 있을 것 같은 분위기.
“……. 그게, 나는 뚱뚱하고, 남자애들보다 더 크고, 여자답지 않으니까. 게다가 예쁘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고. 나 같은 건 어차피…….”
풋. 얏코 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친구 - 사카마키 마미 중에서
사 버렸어, 사 버렸어, 결국 사 버렸어!
사과 사탕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빨간 에나멜 필통. 마치다와 똑같은 필통이 갖고 싶어서 4개월 동안 과일 지우개도 잡지도 사지 않고, 젤리도 사 먹지 않고 용돈을 모았다.
1,800엔(약 18,000원. 100엔은 약 1,000원)이면 비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정말로. 에나멜 필통에 마치다의 얼굴이 겹쳐져서 나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마치다 료코……. 예쁘고, 머리 좋고, 운동도 잘하고, 우리 반에서 가장 멋진 내 자랑스러운 친구.
3학년 때 같은 반이 된 뒤로 화장실에 갈 때도, 쉬는 시간에도, 소풍 갈 때 모둠도 우리는 늘 같이했다.
마치다는 별로 말수가 많은 애는 아니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나 몸짓만으로도 마치다가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하다. 나는 마치다의 가장 친한 친구니까.
키티 필통에서 연필이랑 형광펜을 모두 꺼내 에나멜 필통에 집어넣고 마지막으로 500엔짜리 동전 크기만 한 작은 거울을 넣었다.
수업이 지겨워지면 필통 안에 거울을 세워 놓고 앞머리를 매만진다.
마치다가 그렇게 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는 것도, 갖고 다니는 것도 마치다는 하나같이 어른스럽고 멋지다. 틀림없이 방도 세련되게 꾸몄을 거다.
사람과 사람이 다툰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싫다. 아빠와 엄마가 서로 욕하고, 상처 주던 모습이 지금까지도 내 안에 딱 들러붙어 있다.
그런 모습은, 더는 보고 싶지 않다.
다툼의 뿌리에 있는 것은 자존심이다. 그래서 나는 자존심을 버렸다. 농담을 하고, 바보같이 군다. 부끄럽다든가 창피하다든가 하는 감정은 모두 내던졌다.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어떻게 볼까,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다. 그렇게 생각하자 몸이 가벼워졌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잘될까 안 될까. 결과를 생각하는 일도, 겁내는 일도 없어졌다. 자존심 따위, 지키고 싶은 것 따위, 집착 따위, 자랑 따위 필요 없다.
적당히.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어쩔 수 없어.’ 그렇게 생각한다.
매달리지 않고 너울너울 살아가면 힘든 일 따위 아무것도 없다.
너울너울 너울너울, 그렇게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뻔한 나를 꽉 잡아 준 것이 호소카와 이토코다.
‘내 안에 있는 소중한 것을 쉽게 버리면 안 돼. 괴로워도 눈을 돌리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살이 찌든 빠지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그런 문제에 죽자 살자 매달리는 호소카와를 보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름 내내 뛰고, 헤엄치고, 포장마차 앞에서 침이라도 흘릴 것 같은 얼굴로 고민하는 호소카와를 봤을 때, 나는 가슴이 쿵했다. 그 애가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마치다도 함께 온다.”
호소카와는 별안간 크게 소리치고 일어나 페트병을 흔들었다. 주위에 반짝반짝 눈보라가 일어난다.
예쁘다. 엄마한테도 보여 주고 싶다.
---미소 - 다키시마 게이스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