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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일간의 승마표류기

1000일간의 승마표류기

: 짜릿하고 따뜻했던 말 위의 고군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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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12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374쪽 | 152*220*30mm
ISBN13 9788996222491
ISBN10 8996222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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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가 아닌 나는 작은 것에 큰 의미를 두며 승마를 즐긴다. 예를 들면 말과 함께 재미있게 노는 것이다. 가끔 기승을 하면서 평보로 주변을 돌아보고, 말에게 꽃도 보여주고 나무도 보여준다. 또 당근도 먹이고 솔질도 해준다. 승마가 원하는 대로 잘 안 되는 날일수록 이런 과정으로 마음을 가다듬으면 다음 날 더 좋은 컨디션으로 승마를 즐길 수 있다. ---p.20

그런데 승마가 나를 변화시켰다. 승마는 공유의 스포츠다. 호흡 소리를 공유하고, 한 동작을 위해 둘만의 순서와 규칙을 만들어 지키고, 상대의 컨디션에 영향을 받는 그런 스포츠다. 수많은 변수들을 내 욕심대로, 내 마음대로 조정하려고 하면 탈이 난다. 승마에서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절대로 나 혼자 할 수 없다. 수많은 변수들이 모두 조건에 맞았을 때 이룰 수 있다. ---p.26

아무도 없는 새벽, 조용한 주변, 오직 나의 호흡소리와 말의 발자국 소리, 심장 뛰는 소리만이 들린다. 후우욱 확, 후우욱 확. 어느새 말과 한 몸이 된다. 이런 설렘이 오전 내내 계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운 시련이 닥쳐와도 승마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제대로 중독됐다. ---p.33

‘말을 미소 짓게 한다’는 말은 고삐의 텐션을 의미한다. 미소를 짓게 하려면 고삐를 아주 살짝 팽팽하게 당겨야 한다. 만약 고삐가 느슨하다면 말의 입꼬리는 내려갈 것이고 앞으로 가려고 하는 의지 또한 반감될 것이다. 반대로 과하게 당기면 어떻게 될까? 입꼬리가 너무 올라가서 화난 표정이 만들어진다. 말이 아파서 반항할 것이다. ---p.122

고삐를 느슨하게 잡으면 자세는 잡히지만 말 머리를 컨트롤하기 어렵고 고삐를 짧게 잡으려고 하면 말이 머리를 움직여 손이 왔다 갔다 하니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양팔을 몸통에 붙이고 고삐를 내리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양팔을 편하게 하면 팔이 떨어지거나 고삐를 높이 드는 버릇이 생기니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구나. ---p.141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난 팔자다리다. 걸을 때 양발이 벌어지는, 좋게 말하면 양반다리다. 이것이 승마할 때는 특히 불편하다. 벌어진 다리 때문에 모양새도 안 좋고, 박차가 자연스럽게 배에 닿아 말을 자극하기 쉽다. 이럴 경우 부드러운 출발이 어렵고 말을 놀라게 하면서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p.151

나를 지켜보던 교관님이 다시 말한다. “한 발 한 발 정성스레, 발로 치약을 짜듯이 타세요.” 이 말대로 말을 치약으로 여기고 최대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어느 순간 앞으로 나가는 말 위에서 양 넓적다리와 종아리를 붙이고 누르려고 하니 치약을 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느낌인지 알 것 같다. 거울을 보니 말과 나의 자세가 나쁘지 않다. ---p.152

어제와 오늘을 종합해 보면 나를 배신하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한동안 마방에 방치해 놨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조마삭을 돌려야 하는데 안 돌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 어렵다. 말이 나를 들었다 놨다 한다. ---p.285

“구보를 하든, 속보를 하든 엉덩이 밑에 100억 원짜리 수표가 깔려있는 것처럼 타야한다”는 말은 엉덩이를 최대한 붙이고 앉아야 한다는 의미다. 구보나 속보를 할 때 가방끈이 긴 가방을 메고 달리는 것처럼 엉덩이가 안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몸은 덜렁거린다. 원래는 등에 ‘탁’ 붙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으니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p.314

종이 울린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말을 타기 시작한다. 몇 주간 고생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어느 때보다 섬세하게, 최선을 다해 정성들여 탄다. 고맙다, 크로스파이어. 감사합니다, 교관님.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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