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불도 동양 삼교의 정신을 아우를 수 있는 표현을 들라면 ‘마음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 p. 30
마음의 다스림이 ‘심학’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불교나 도가에서는 주로 개인의 수양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유가 전통에서는 사유와 실천의 일치를 강조하며 개인의 마음 수양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수양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 나아가 생태계 전체로 확장할 때 그것이 참된 의미를 지닐 수 있고, 마음의 요구에 따라 몸소 실천할 때 자신의 마음인 온전히 실현된다고 여겼다.
--- p. 49
유학에서는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이 즐거움이라고 주장한다. 이 즐거움은 욕망의 발산에서 나오는 쾌락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때 저절로 우러나는 즐거움이다. 이러한 유학의 본령을 드러내어 심리치료에 적용한다면 부정적인 마음이나 정서 등의 제거에 치중하는 기존의 심리치료 이론의 전환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 p. 58
“내가 인을 행하려 하면 인은 실현된다.” ... 이 말은 바로 인간이 실천적 주체임을 명백히 밝힌 것으로 인간이 인간인 까닭은 바로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실천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외침이다. 문제는 참된 마음의 소리를 좇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기만하고 사욕을 좇을 것인가의 선택에 달려 있다. 공자는 “오직 사람다운 사람만이 정말 남을 좋아할 수도 있고, 남을 미워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 p. 88
실천은 반드시 내면적 확신을 통해 기쁨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유가에서의 삶의 의미는 자신의 본성을 자각하고, 관계 속에서 가정에서 작은 동아리로, 사회 전체로 실천하면서 확충하다 보면 최후에는 우주와 일체감을 느끼게 되고 이 일체감에서 존재 의의와 희열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본다.
--- p. 128
(명대의 심학자 나여방은) “마음에 맺힌 것을 내려놓아라. 내려놓은 마음에 또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라는 유언처럼 구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마음치료에 있음을 강조하였다. 최근 ‘인문치료학’이 인문학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노숙자나 재소자 등 소외 계층을 직접 찬아가서 강연함으로써 스스로 문제와 해결책을 찾아 해결하여 건강한 심리상태를 유지하며, 미래에 대한 실천 의지를 다질 수 있도록 해서 과거나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찾도록 길을 열어 주려 애쓴다.
--- p. 169-170
왕수인의 일생도 분석심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자기를 찾고 실현하는 역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왕수인이 청년기에 불교와 도교를 넘나들며 깨달음을 구한 과정이 바로 자기실현의 과정이었다. ...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개인의 자기실현에 멈추어서는 안 되고, 개체는 관계를 통하여 존재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사회 속에서 주체적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자기실현이 완성된다.
--- p. 197
위기지학’이란 자기완성이나 자신의 인격 수양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을 뜻하는데, 단지 자기완성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을 수양한 다음 그것을 남에게로, 사회로, 나아가 우주 전체로 확장하게 된다. 반면 ‘위인지학’은 이해득실의 이분법적 사고를 바탕에 두고, 타인의 요구와 평가에 귀 기울이는 태도이다. 따라서 대인 관계에서 ‘위인지학’을 하는 사람들은 나와 남을 구분하는 배타적 태도를 기반으로 타산적인 대인 관계를 맺게 되는 데 반해, ‘위기지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을 동등한 위치에 두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봐 주는 사심 없는 대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 p. 236
심학에서는 수양 방법을 ‘공부(工夫)’라는 말로 표현한다. 양지는 본체이기 때문에 더하거나 덜 필요 없이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고, 은폐됨이 없이 언제나 드러난다. 따라서 외부의 어떤 법칙이나 권위의 도움도 필요 없이, 내 안에 양지가 있다는 점을 깨닫기만 하며 그것이 바로 공부이고 바로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드러남이다. 심학에서는 최후에 ‘현성양지(現成良知‘)’로 존재와 나의 하나됨을 표현하였다.
--- p. 246
육체적 욕망과 필요에 따라 경계를 나눌 때 꽃과 풀에 대한 좋고 싫음이 교차한다. 좋다든가 싫다든가 등의 감정에서 출발한 선과 악의 구별은 대립과 집착을 낳고 고통을 낳는다. 그러나 가치판단의 경계를 허물고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꽃과 풀은 동등한 생명체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쁘다고 구별할 필요가 없다.
--- p. 268
양명학자 왕간(王艮, 1483-1541)은 “사람의 마음은 저절로 즐거운데, 사욕 때문에 속박된다. 사욕이 싹트기 시작하면 양지가 바로 자각할 수 있다. 자각하기만 하면 그 사욕을 없애니, 마음이 이전의 즐거움에 의거한다. 즐거움이란 이러한 배움의 즐거움이고 배움이란 이러한 즐거움의 배움이다. 즐거움이 아니면 배움이 아니고, 배움이 아니면 즐거움이 아니다. 즐거워야 배우고 배워야 즐겁다. 즐거움이 배움이고 배움이 즐거움이다. 오호! 천하의 어떤 즐거움이 배움에 비길 것이며, 천하의 어떤 배움이 즐거움에 비길 것인가.”라고 노래하였다. 이처럼 (마음의 학문으로서) 자신의 도덕 주체를 자각하고 만물 일체를 완성하는 심학적 사유는 어떤 것도 비길 수 없는 즐거움을 수반한다.
--- p. 272-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