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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하늘

아홉 번째 하늘

김신형 | 가하 | 2015년 01월 1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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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1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380g | 128*188*18mm
ISBN13 9791129502704
ISBN10 112950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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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리 슬퍼?』

그것은 목소리였다. 낮고 음울하기도, 어찌 들으면 맑고 청아한 소리 같기도 했다.

이곳에서 혼자라 여겼기에 깜짝 놀란 아희가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게 신기할 정도로 새까만 옷을 입은 아희 또래의 사내아이가 눈앞에 서 있었다.

『내가 물었잖아. 무엇이 그리 슬퍼?』

사내아이는 입고 있는 모든 것이 새카맸다. 물살에 흔들리는 검은 머리칼은 주변을 뒤덮고 있는 어둠보다 더 짙었고, 슬쩍 올라간 눈초리는 매섭게만 보였다. 그 눈꼬리를 따라 내려오자 묵빛의 눈동자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서늘했다.

그에 대비해 사람 같지 않은 새하얀 피부. 그곳에서부터 빛이 나고 있었다.

아이는 어둠이었고, 또한 빛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묵빛의 눈동자를 아희는 본 적 있었다. 그것을 깨닫자 소리 없는 비명을 꿀꺽 삼켰다.

아희가 대답하지 않자 사내아이의 그림같이 하얀 이마에 살짝 주름이 졌다. 그렇지 않아도 올라간 눈초리가 가늘게 뜨이자 섬찟 놀라 아희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눈을 채 깜박이기도 전에 사내아이의 얼굴이 아희의 얼굴 바로 앞에 와 있었다.

『무엇이 그리 슬프냐고 물었다.』

꼭 그 대답을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지 고집스럽게 묻고 있었다.

아희가 대답 대신 고개를 젓자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사내아이가 그녀의 턱을 잡고 자신의 얼굴 앞에 고정시켰다.

『버릇없는 인간의 아이야.』

눈앞에 있는 묵빛 눈동자의 어둠이 좀 더 깊어졌다고 생각했다.

『내가 누군지 넌 알고 있지?』

그 목소리는 여전히 어둡고, 또한 맑았다.

아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사내아이가 더욱 바짝 아희의 앞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입술이 맞닿을 듯했다. 물속에서도 여실하게 서로 내뱉는 숨결이 느껴졌다.

그녀의 행동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샅샅이 살피는 듯했다. 흔들림 없는 그 사내아이의 눈동자를 피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이번에는 물러서지 말아야 했다.

『너는 내 이름을 부르게 될 거야.』

그가 확언했다.

『입을 열어. 내 이름을 불러. 그렇지 않으면 넌 이 몽상에서 영원히 깨지 못할 거야.』

그제야 이곳이 꿈속이라는 사실을 아희가 인지했다.

그리고 이 꿈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눈앞의 검은 이무기라는 것 또한.

작은 두 손이 사내아이의 어깨를 꽉 움켜잡았다. 묵빛의 눈동자에 일순간 흔들림과 동시에 아희가 있는 힘껏 그를 뒤로 밀어냈다.

의외로 순순히 뒤로 물러난 사내아이가 두어 발 떨어진 곳에서 말없이 아희를 응시했다.

『감히…….』

잇새로 내뱉은 그 한마디에 담겨 있는 분노는 기어이 아희의 무릎을 바닥에 꿇게 했다.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꼈던 사내아이의 키가 올려다보자 훌쩍 커 보였다. 무릎은 꿇었으되 고개까지 숙이지는 않았다.

『네가 일을 어렵게 만드는구나.』

턱이 덜덜 떨려오자 입을 앙다물었다. 공포에 맞서 싸우면서도 자신에게서 한 치도 눈을 돌리지 않는 인간 계집을 내려다보는 눈동자가 서릿발보다 차가웠다.

천 년을 넘게 자신을 알아봐줄 인간을 기다리며 지내온 시간은 스스로마저 망각 속에 잊을 정도로 길었다. 자신이 잠들었던 자리에 물이 고이고 폭포가 생기고 새싹이었던 느티나무의 긴 가지가 우거질 때조차 눈을 뜨지 않았다.

그가 눈을 뜬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눈을 뜨자 신수가 찾아왔고 때가 가까워져 왔다고 말했다.

드디어 뱀의 허물을 탈피(脫皮)하고 하늘에 오를 날이 가까워져 왔음을 알게 되자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천 년의 시간은 유수와 같이 흘렀지만, 수십 년의 시간은 느리게만 흘러갔다. 어느 누구도 계곡 아래 잠들어 있는 자신을 볼 수 없었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감색 눈동자를 가진 계집애 외에는.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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