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게임은 꽤나 폭력적인 게임이다. 왕이 된 사람은 어떤 명령이든 내릴 수 있고, 명령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처음에는 가볍게 술 한 잔이나 이상한 동작 정도이겠지만 게임이 진행될수록 명령은 업그레이드되기 마련이다. 더욱 고통스럽고, 더욱 지저분하고, 더욱 치욕적인 명령으로 상승한다. 이성이 끼어 있다면, 반드시 키스나 포옹 같은 성적 행위들도 포함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지나치게 심해진다 싶으면 적절한 선에서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명령을 내리는 '왕'이 전혀 비이성적인 존재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왕 게임의 노부아키를 비롯한 반 친구들도 처음에는 평범한 정도로 생각했다. 키스를 해라, 발을 핥아라, 가슴을 만져라 등. 그 정도까지는 상식적으로 용인할 수 있고, 누군가가 거부하면 그대로 게임이 끝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 죽는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왕 게임'이 현실의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게임이 아니라 악몽이 된다. 명령을 거부한 친구들이 죽어버린 걸 아는 순간, 아이들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자신들이 이성적인 게임, 약간 과열되면 중단할 수도 있는 게임이 아니라 극한까지 달려가고 목숨이 달린 현실의 악몽에 놓여있는 것을 알게 되자 공포가 시작된다.
우리가 알던 익숙한 것들이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줄 때, 공포가 달려든다. 도시괴담 하나를 생각해보자. 밤늦게 학원에서 돌아온 여고생을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 함께 엘리베이터에 타고 여고생이 말을 건네자, 엄마가 서서히 돌아보며 말한다.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 너무나도 일상적인 풍경의 껍질이 벗겨지는 순간, 상상도 못 했던 다른 얼굴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왕 게임의 아이들도 그렇다. 누군가 장난을 치고 있다. 가벼운 명령 정도는 들어줄 수 있어. 하지만 진짜로 누군가 죽는 순간, 그들이 알고 있던 게임만이 아니라 현실의 얼굴이 송두리째 바뀐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리는 공포물의 소재는 학교다. 주로 공포물을 즐기는 층이 10대와 20대에 많고, 그들은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는 '리얼한' 상황의 공포를 즐긴다. 한국에서도 영화 여고괴담 고사 : 피의 중간고사 등이 성공하며 붐을 일으켰고, 일본에서도 아이돌이 출연하는 공포영화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할리우드에서도 하이틴 호러물은 영원한 흥행 장르다. 왕 게임도 학원을 무대로, 현실에서 일어날 것 같은 평범한 사건으로 시작된다. 반 아이들 31명에게 전체 문자를 보내는 것은 가능하다. 아이들도 기꺼이 동참해준다. 하지만 그 게임이 현실에서 가능한 범위를 뛰어넘는 순간 모든 규칙이 바뀌어버린다.
'왕 게임'에 따르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게임을 멈추려면, 왕이 누군지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왕의 명령을 반드시 따라야만 한다. 왕 게임은 영리하게 가혹한 명령과 그 명을 따르는 아이들의 행동을 통해서 긴장과 공포를 극한까지 몰아간다.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에게 다른 남자와 섹스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수행하고 나면 다음 명령은, 그 남자친구가 자신의 여자친구와 섹스한 남자에게 무엇이든 명령을 내리라는 것이다. 분노한 남자친구의 명령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혹은 두 명을 인기투표해서, 진 사람에게 벌을 내린다. 그러면 두 사람은 자신이 이기기 위해서 어떤 방법이든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살아남기 위해서, 아이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게임에서 도망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도 하고, 기꺼이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 타인을 죽여 버리는 행동은, 평범한 일상에서의 도덕이나 윤리로 판단하기 힘들다. 그리고 왕 게임은 배틀 로얄 못지않은 친구들 간의 살육극으로 잠시 변한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배신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죽이기도 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우정을 지키려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 가슴뭉클한 순간들도 적절하게 담겨 있다.
왕 게임은 학원물로 시작하여 처절한 살육극으로 변하는가 하더니 최종적으로는 초자연적인 공포물로 끝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단체 문자를 보내고, 그들의 행동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는 것까지는 가능해도 명령을 거부하거나 수행하지 못한 사람들을 모두 죽이는 것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가 개입하지 않고는 이 끔찍한 왕 게임을 지속할 방법이 없다. 그 지점으로 들어가면서 왕 게임은 약간 느슨해진다. 하지만 약간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왕 게임은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더욱 맹렬하게 달려간다. 단 13일 동안 31명의 희생자를 만들어내려면 그 정도의 스피드는 반드시 필요하니까. 왕을 찾아내려는 노부아키는 종횡무진 맹렬하게 달려간다.
단순한 게임, 하지만 그 게임이 상식의 선을 넘고 초자연적인 '저주'와 연결될 때 현실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그 순간 당신이라면 무엇을 지킬 것인가. 우정과 사랑 그리고 현실을 지키려는 노부아키의 열정은 왕 게임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왕 게임은 섬뜩한 동시에 감동적인 공포소설로 남는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