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끓이는 순간만은 세속의 먼지를 털고 깨끗한 정신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래서 손수 찻사발을 씻는 것이니, 이는 자신의 정화(淨化)를 뜻한다. […] 손수 따라 마시면 현실에 찌들어 잘못되었던 생각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평상의 본심을 찾을 수 있다네. 겉으로는 육신의 찌꺼기 씻어내고, 병마를 몰아내며 정신의 고통까지 덜어내는 차야말로 그것이 상품(上品)이든 차품(次品)이든 무슨 상관이랴. 그러니 차야말로 군자들이 반드시 가까이 해야 할 귀한 것이다. […] 다 끓인 후 한 잔을 마시면 흐렸던 정신이 바로 서고 안목이 제대로 돌아오네. 두 잔을 마시니 세속의 오탁이 씻겨 내리고 선계에 오른 듯 상쾌해지니 […] 세 잔을 마시고 나니 육신의 고통이 사라지고 오직 의롭고 참된 마음이 가득 차네. […] 여섯째 잔을 마시니 광명한 지혜가 나 자신 속에 우주를 담게 하고, 영혼을 다스려 세속의 모든 일은 티끌처럼 여겨진다. […] 일곱째 잔은 다 마시지 않아도 저절로 하늘나라에 이르게 된다. […] 다신(茶神)이 기운을 움직여 묘경(妙境)에 이르면 저절로 무한히 즐거우리. 이 또한 내 마음의 차이거늘 굳이 밖에서 구하겠는가.’ _‘한재 이목’편 중에서
연기조사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에게 차를 공양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감동을 준다. 장엄한 각황전을 지나 국보 35호로 지정된 사사자삼층석탑이 선 효대에 이른다. 네 마리의 사자가 사방에 앉아서 비구니스님이 된 연기조사의 어머니를 지키고 있으며, 머리로는 부처를 상징하는 삼층의 석탑을 떠받들고 있다. 이 석탑 정면에 연기조사가 어머니를 향해 무릎 꿇고 한 손에 찻잔을 들고 있는 모습의 석물이 있다. […] 부모는 자식이 우려준 차를 이 세상에서 최고의 차로 알고 마신다. 부모는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정성을 마시는 것이 분명하다. […] 간절한 마음을 담아 올리는 차가 바로 최고의 차일 터이다. 천 년 전, 연기조사가 어머니에게 효성을 담아 올린 그 차가 바로 명품 중의 명품일 것이다. _‘연기조사’편 중에서
선사가 차 한 잔을 권하는 것은 자신의 법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고, 또한 제자가 스승에게 헌다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 바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_‘나옹선사’편 중에서
포은도 망국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때마다 유가(幽家)에서 차를 마시며 《주역》의 책장을 넘겼다. 차는 잠시나마 세상의 일을 잊게 해주고, 《주역》은 자신의 처지를 위로해주곤 했다. _‘포은 정몽주’편 중에서
그를 문득문득 괴롭히는 내상(內傷)은 유학자로서 절의를 지키지 못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는 영욕이 묻을 수 없는 맑은 차 한 잔을 마시며 눈 속에 매화꽃이 피는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_‘보한재 신숙주’편 중에서
춘원은 봉선사에서 자신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차를 만난다. 그가 묵었던 방은 차와 경전의 향기가 가득한 방이라는 이름의 다경향실(茶經香室)이었다. _‘춘원 이광수’편 중에서
우통수에 이르러 물 한 모금으로 산길을 올라오느라 거칠어진 숨을 고른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안개처럼 모호했던 허균이 차를 달이고 싶어했던 샘물이다. _‘교산 허균’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