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80년대의 '노동의 새벽'을 역사적인 대상이나 지난날의 기억으로 돌리는 일과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인간 정신의 재생을 찾는 일 가운데서 후자의 사명을 택하지 않으면 안된다.(중략) 그가 확신했던 변혁의 이념들이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단정하는 즉흥성도 그것을 언제까지나 담보하려는 고착성과 함께 다같이 지적되어 마땅한 자리에 박노해의 새로운 기회가 예약되어 있는 것이다.
--- p.173-175
상쾌한 아침을 맞아
즐겁게 땀 흘려 노동하고
뉘엿한 석양녘
동료들과 웃음 터뜨리며 공장문을 나서
조촐한 밥상을 마주하는
평온한 저녁을 가질 수는 없는가
--- p.97, --- '평온한 저녁을 위하여' 중에서
사랑은
슬픔, 가슴 미어지는 비애
사랑은 분노, 철저한 증오
사랑은 통곡, 피투성이의 몸부림
사랑은 갈라섬.
일치를 위한 확연한 갈라섬
사랑은 고통, 참혹한 고통
사랑은 실천, 구체적인 실천
사랑은 노동, 지루하고 괴로운 노동자의 길
사랑은 자기를 해체하는 것.
우리가 되어 역사 속에 녹아 들어 소생하는 것
사랑은 잔인한 것. 냉혹한 결단
사랑은 투쟁, 무자비한 투쟁
사랑은 회오리,
온 바다와 산과 들과 하늘이 들고 일어서
폭풍치고 번개치며 포효하여 핏빛으로 새로이 나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사랑은
고요의 빛나는 바다
햇살 쏟아지는 파아란 하늘
이슬 머금은 푸른 대지 위에
생명 있는 모든 것들 하나이 되어
춤추며 노래하는 눈부신 새날의
위대한 잉태
--- pp. 111-112
<지문을 부른다>
진눈깨비 속을
웅크려 헤쳐 나가며 작업시간에
가끔 이렇게 일보러 나오면
참말 좋겠다고 웃음 나누며
우리는 동회로 들어선다
초라한 스물아홉 사내의
사진 껍질을 벗기며
가리봉동 공단에 묻힌 지가
어언 육년, 세월은 밤낮으로 흘러
뜻도 없이 죽음처럼 노동 속에 흘러
한번쯤은 똑같은 국민임을 확인하며
주민등록 경신을 한다
평생토록 죄진 적 없이
이 손으로 우리 식구 먹여살리고
수출품을 생산해 온
검고 투박한 자랑스런 손을 들어
지문을 찍는다
<삼청교육대Ⅰ>
서릿발 허옇게 곤두선/어둔 서울을 빠져 북방으로/완호로 씌운 군용트럭은 달리고 달려/공포에 질린 눈 숨죽인 호흡으로/앙상히 드러누운/아 3.8교!/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중략)그렁그렁 탱크이빨에 씹히는 꿈에 소스라치면/흥건한 식은땀에 헛소리 신음소리/흐느끼는 소리 이를 앙가는 저주소리/그 속에서도 아직은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고자/우리는 밤마다 조심스레 가슴을 연다//김형은 체불임금 요구하며 농성중에/사장놈 멱살 흔들다 고발되어 잡혀오고/열 다섯난 송군은 노가다 일나간/어머니 마중길에 불량배로 몰려 끌려오고(중 략)/민주노조를 몸부림치다/개처럼 끌려온 불순분자 이군은/퉁퉁 부은 다리를 절뚝이며/아버지뻘의 노약한 문노인을 돌봐 주다/야전삽에 찍혀 나가 떨어지고/너무한다며 대들던 제강공장 김형도/개머리판에 작살나 앰블런스에 실려 나간다(중략)/동상에 잘려나간 발가락의 허전함보다/철야 한 번 하고나면 온통 쥐어뜯는/폐차 직전의 내 육신보다 더 뼈저린 지난 세월 속에/진실로 진실로/순화되어야 할 자들은 우리가 아닌 바로 저들임을,/푸르게/퍼렇게/시퍼런 원한으로/(중략)/80년 그 겨울/삼청교육대.
--- p.
<지문을 부른다>
진눈깨비 속을
웅크려 헤쳐 나가며 작업시간에
가끔 이렇게 일보러 나오면
참말 좋겠다고 웃음 나누며
우리는 동회로 들어선다
초라한 스물아홉 사내의
사진 껍질을 벗기며
가리봉동 공단에 묻힌 지가
어언 육년, 세월은 밤낮으로 흘러
뜻도 없이 죽음처럼 노동 속에 흘러
한번쯤은 똑같은 국민임을 확인하며
주민등록 경신을 한다
평생토록 죄진 적 없이
이 손으로 우리 식구 먹여살리고
수출품을 생산해 온
검고 투박한 자랑스런 손을 들어
지문을 찍는다
<삼청교육대Ⅰ>
서릿발 허옇게 곤두선/어둔 서울을 빠져 북방으로/완호로 씌운 군용트럭은 달리고 달려/공포에 질린 눈 숨죽인 호흡으로/앙상히 드러누운/아 3.8교!/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중략)그렁그렁 탱크이빨에 씹히는 꿈에 소스라치면/흥건한 식은땀에 헛소리 신음소리/흐느끼는 소리 이를 앙가는 저주소리/그 속에서도 아직은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고자/우리는 밤마다 조심스레 가슴을 연다//김형은 체불임금 요구하며 농성중에/사장놈 멱살 흔들다 고발되어 잡혀오고/열 다섯난 송군은 노가다 일나간/어머니 마중길에 불량배로 몰려 끌려오고(중 략)/민주노조를 몸부림치다/개처럼 끌려온 불순분자 이군은/퉁퉁 부은 다리를 절뚝이며/아버지뻘의 노약한 문노인을 돌봐 주다/야전삽에 찍혀 나가 떨어지고/너무한다며 대들던 제강공장 김형도/개머리판에 작살나 앰블런스에 실려 나간다(중략)/동상에 잘려나간 발가락의 허전함보다/철야 한 번 하고나면 온통 쥐어뜯는/폐차 직전의 내 육신보다 더 뼈저린 지난 세월 속에/진실로 진실로/순화되어야 할 자들은 우리가 아닌 바로 저들임을,/푸르게/퍼렇게/시퍼런 원한으로/(중략)/80년 그 겨울/삼청교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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